실행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취임하자마자 미국의 새 대통령은 세계를 충격과 경악에 빠뜨렸다. 1월27일 반이민 행정명령에 이어 2월1일에는 ‘책임성 있는 이민법을 통한 납세자 보호 행정명령’이란 제목의 행정명령 초안이 발표됐다. 반이민 행정명령이 이슬람권 7개국 출신자의 입국을 한시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라면, 이번 것은 이민자 장벽을 전체적으로 높이는 조치다.
도널드 트럼프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한 한편,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미국 시민이나 멕시코 시민들은 물론 유엔과 교황청까지 나서서 트럼프를 만류하지만 이 사내, 막무가내다. 트럼프의 브레이크 없는 폭주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트럼프가 인종주의자, 성차별주의자, 거짓말쟁이라는 건 사실이다. 이런 판단이 그의 행동을 멈추게 하거나 대통령 자리에서 쫓아낼 직접적 수단은 되기 어렵다. 그는 막강한 권한을 거머쥐었고 당분간 광폭 행보를 계속할 것이다. 다만 그가 가져온 혼돈이 대충돌로 점화될 가능성도 점점 커졌다.
특히 캘리포니아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미국 내 이민자들, 리버럴들의 세가 강한 이 지역에서는 반트럼프 봉화가 일찌감치 피어올랐다. 로스앤젤레스 연방법원은 반이민 행정명령이 집행되지 못하도록 잠정 금지했다. 트럼프는 행정명령에 따르지 않는 지역의 연방재정지원금을 끊겠다고 협박했다. 인터넷에서는 캘렉시트(Calexit) 해시태그가 번져나간다. 캘렉시트는 ‘캘리포니아’(California)와 ‘탈퇴’(Exit)를 합친 말로 캘리포니아의 연방 분리 독립을 가리킨다.
한국으로 치면 경상도가 분리 독립하겠다는 것인데, 비좁은 중앙집권 국가에 사는 한국인에겐 ‘상상 밖’의 사태다. 하지만 연방주의 전통이 강하고 각 주의 자치권이 존중되는 미국에서 이런 주장이 나오면 우리와는 느낌이 달라진다.
캘리포니아의 지역총생산은 세계 6위 규모다. 구글·인텔·애플 등 글로벌 정보통신 기업뿐 아니라 록히드마틴·보잉 같은 거대 군산복합 기업 역시 캘리포니아에 있다. 캘리포니아주 하나가 어지간한 선진국보다 경제 규모가 크다. 한국에선 ‘말도 안 되는 일’로 일축되겠지만 미국에선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잖아?’ 정도 된다.
흔히 트럼프의 득세를 가리켜 금융산업에 밀착한 미국 동부 엘리트 주류 집단에 대한 반발로 해석하는데 틀린 건 아니지만 정확하다고 하기도 어렵다. 전후 미국의 가치를 만들고 지탱해온 주류는 동부만이 아니라 서부도 포괄하기 때문이다. 동부의 와스프(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가 미국의 기원을 표상한다면, 캘리포니아와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서부는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이다. 거칠게 말해 전후 미국 사회의 합의는 두 세력, 즉 동부 엘리트와 서부 이민자-리버럴의 연합에 기반한다. 그러나 신경제 시기를 통과해 2008년 대위기에 이르러 명확해진 것은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만 빼고 다 망했다는 사실이다.
집권에 성공한 극우 정치가의 핵심적 공통점이 있다. 계급적 불만을 국가주의 언어로 바꿔치기하는 데 천재적이라는 점이다. ‘캘리포니아적 가치’를 반트럼프의 기치로 내세우는 것은 캘리포니아 사람 입장에선 후련할지 모르겠으나 싸움의 구도에서는 그리 좋지 못한 전략이다.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캘리포니아적 가치’는 자신을 호명하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가 말하는 ‘아메리카 퍼스트’는 (거기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직접적으로 자신을 호명하는 말이다. 이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그렇다고 트럼프의 상황이 좋은 건 아니다. 특유의 뚝심과 배짱으로 밀어붙이지만 (외교적) 고립주의와 (통상정책적) 보호주의가 다른 나라로부터 강한 반발과 보복 조치를 불러올 것은 명약관화하다. 대통령 취임 직전 트럼프 지지율은 50% 아래에서 출발했다. 이는 미 대통령 당선자치고 이례적으로 낮은 수치였다. 대중적 인기에 의존하는 대통령인 만큼 지지율이 한계선 이하로 빠지면 급격히 흔들릴 가능성도 높다. 트럼프와 함께 ‘초불확실성’의 2017년이 시작했다. 미국인만이 아니라 전 지구인에게 험난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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