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전세계가 충격에 빠졌을 때, 또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언론에 오르내렸다. 이탈리아의 극작가 다리오 포. 극작가인 동시에 희극배우, 연출가, 신랄한 풍자의 장인이자 정치선동가였던 그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7년 밥 딜런만큼이나 의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다. 그는 공교롭게도 밥 딜런이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10월13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
포가 노벨상을 받았을 때, 일부 문학평론가들은 그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며 경악했다. 바티칸 공식 신문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품의 작가에게 상을 수여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비난했고, 이탈리아의 극우 네오파시스트 정당인 국민연합도 강력히 항의했다.
무엇보다 가장 놀란 것은 포 자신인 듯했다. 그는 기존 관습과 동떨어진 예술가였다. 이탈리아 정부, 정치인, 종교계 등 권력자들의 부패와 위선을 드러내는 급진적인 풍자로 수많은 적을 만들며 살아왔다. 그는 수차례 체포됐고, 이탈리아 국영TV 방송 출연을 금지당했으며, 이탈리아 공산당과의 관련성을 이유로 미국 입국이 금지됐다. 에 따르면 그는 노벨상 수상 소식이 발표된 뒤 오히려 당시의 소란함을 즐기듯 이렇게 말했다.
“노벨상을 받는 것은 나쁜 일이 전혀 아니군요. 이렇게 많은 늙은 화석들의 분노를 폭발시킬 수 있으니까요.”
‘부르주아의 광대’를 거부한다포는 80편 이상의 희곡을 썼다. 대부분의 작품이 공공연히 정치적·풍자적 주제를 내세웠고 대체로 포 자신과 아내 프랑카 라메가 배우로 출연했다. 그중에서도 (1970), (1969) 등은 포에게 국제적 명성을 가져다준 대표작이다. 풍자적 희극들은 전세계 각국에서 지역 현실에 맞게 각색됐다.
포의 예술을 설명하는 영미권 기사들은 주로 중세 유럽을 방랑하며 즉흥풍자극을 하던 떠돌이 광대와 음유시인에게서 그 유래를 가져온다. 스웨덴 한림원 역시 그에게 노벨상을 수여하면서 “(그는) 권력자에게 괴로움을 주고 억압받는 자들의 위엄을 지키는 중세의 광대를 표방한다”고 말했다.
포는 노벨상 수락 연설에서 자신이 17세기 프랑스의 극작가 몰리에르와 16세기 이탈리아에서 발흥한 즉흥희극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의 아버지 안젤로 베올코(일명 ‘루찬테’)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들은 셰익스피어 전까지,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극작가였다. 둘 다 배우이자 극작가였고 당대 문인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사소한 일상, 보통 사람들의 기쁨과 절망, 힘있는 자들의 오만과 위선을 무대 위로 가져왔다는 이유로 멸시받았다.”
포와 아내 라메는 “부르주아의 광대” 역할을 하는 것에 질렸다고 선언하며 중산층을 주요 관객으로 삼은 기존 연극에 반기를 들고 전통적 극장을 떠나 파업 노동자들이 점령한 공장, 대학 연좌농성장, 공원, 감옥 등에서 대중을 위한 연극을 했다.
포의 웃음은 체제 전복적이었다. 그는 1960~70년대 이탈리아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힘있는 자들에게 ‘기피 대상’이었다. 그의 풍자의 칼날은 이탈리아의 정치, 종교계 기득권층 등 동시대 권력의 심장부를 겨누었다. 자본주의 자체와 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중의 컬트적 지지를 얻었지만, 동시에 그 웃음의 칼끝이 가리키는 기득권층에게선 갖은 불이익과 폭력을 당해야 했다. 아내 라메는 1973년 밀라노에서 극단주의 우익단체에 납치돼 고문과 성폭행을 당한 뒤 피 흘린 채 거리에 버려졌고, 후일 여기에 경찰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몇몇 작품만 살펴봐도 포가 얼마나 거침없는 풍자를 했는지 알 수 있다. 1950년대 초기작 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시스트 동조자가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던 이탈리아 정치계를 대담하게 풍자한 극이다. 1962년 TV쇼에선 정육공장을 방문한 비만 여성이 등장하는 풍자 촌극을 상연했다. 이 여성은 어쩌다 분쇄기로 떨어지는데, 공장의 생산 일정을 중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계는 멈추지 않는다. 여성은 결국 150캔의 저민 고기가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이 연극이 방송된 뒤 포와 라메는 15년간 이탈리아 TV에서 퇴출됐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이다. 힘없는 자들이 등장해 성경 속 이야기를 제멋대로 묘사하는 짧은 장면들의 모음집이다. 포 홀로 무대에 등장하는 일인극인데 그는 주로 의성어와 방언, 외래어, 의미 없는 말을 마임과 함께 혼합한 ‘그람멜롯’(grammelot)이라는 희극 언어를 사용해 나자로의 부활이나 가나의 혼인잔치 등 종교적 장면을 기괴하게 해석한다. 1977년 포가 다시 이탈리아 TV에 출연할 수 있게 되어 이 연극의 녹화본을 방송했을 때, 바티칸은 “텔레비전 역사상 가장 신성모독적인 쇼”라고 비판했다.
포의 작품은 1970년대 들어 한층 더 급진성을 띠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주요작 은 당시 밀라노에서 일어난 폭탄테러 사건의 용의자 지우세페 피넬리가 경찰서에서 조사받던 중 4층 창문에서 떨어져 죽은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 포는 이 작품에서 경찰의 은폐를 폭로한 인물을 연기했다.
평생의 ‘예술적 동지’ 라메를 먼저 보내고1974년작 는 일종의 ‘시민 불복종’을 소재로 다룬다. 아내 라메가 물가 상승에 화가 나 슈퍼마켓을 터는 주부로 나오는데, 이 사건으로 밀라노가 ‘정지상태’(standstill)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다리오 포는 1926년 3월24일 이탈리아 북부 마조레호수 근처 산지아노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철도역장이자 아마추어 배우였다. 어릴 적 포는 마차를 타고 지방을 돌며 채소 행상을 하는 할아버지를 따라다녔다. 할아버지는 손님을 끌기 위해 우스운 이야기를 했고, 현지의 가십을 양념처럼 곁들이곤 했다. 는 “포는 후일 무대 위에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하게 된다”고 썼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뒤 자원입대를 했으나, 얼마 후 탈영해 레지스탕스에 합류했다. 그의 부모는 이탈리아의 유대인 과학자를 숨겨주거나 영국 전쟁포로들이 기차를 이용해 이탈리아를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전후, 포는 밀라노에서 미술과 건축을 공부했고 1950년대 초 극단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무대 디자이너였다가 나중에 극작과 배우를 했다. 극단에서 그는 유서 깊은 연극 집안 출신의 여배우 라메를 만났다. 그들은 1954년 결혼해, 2013년 라메가 먼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결혼생활을 했다. 라메는 포와 함께 극단을 만들고 작품을 공동 집필하며 1천 회 이상 함께 무대에 오른 평생의 예술적 동지였다.
포는 죽기 직전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과 현실 참여를 이어갔다. 2002년 자신의 회고록을, 2009년 아내에 대한 전기를 썼으며, 2015년에는 첫 소설 을 선보였다.
1997년 포의 노벨상 수락 연설 ‘광대에 대한 중상과 모욕’은 연설문치고 상당히 재미있다. 제목은 독일의 중세 공국 슈바벤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공표한 법령에서 가져온 것으로, 당시에는 법의 허용하에 시민들이 광대를 공격하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스웨덴 한림원의 용기 있는 결정을 칭송하며 연설을 다음과 같이 끝맺었다.
‘가르치는’ 대신 동시대 이야기 ‘보여줘야’“우리의 일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지성인으로서, 강단이나 무대에 오르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젊은이들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임무는 단지 그들에게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 그들에게 우리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줘야 한다. 동시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연극, 문학, 예술은 얼토당토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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