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 흑인 청년의 죽음이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2살 청년 칼리프 브라우더. 그는 2015년 6월6일 오후 자신의 집에서 목숨을 끊었다. 악명 높은 라이커스 아일랜드 교도소에서 석방돼 자유를 찾은 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2010년 봄, 16살 칼리프는 뉴욕 브롱크스에서 배낭을 훔쳤다는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친구와 함께 파티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경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재판조차 받지 않은 채 라이커스 아일랜드 교도소로 이송돼 수감됐다. 그의 가족은 보석금 3천달러를 낼 경제적 여유가 없었으며,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고 싶었던 칼리프는 경찰이 제시한 ‘유죄 협상’(플리바게닝)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칼리프는 끝없이 연기되는 재판을 기다리며 교도소에서 3년의 시간을 보냈다.
망가진 사법체계 상징하는 ‘칼리프 사건’칼리프 사건이 2013년 6월 공소 기각될 때까지, 교도소의 기록은 그가 최소 여섯 차례 자살을 시도했으며, 1110일 동안 교도소에 머물렀고, 그중 800일 이상 독방에 감금됐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의 재판일은 서른 차례 이상 연기됐다. 단 한 번도 재판을 받지 못했다. 그는 교도관과 다른 재소자들의 상시적인 폭력과 학대, 굶주림으로 고통받았고 그러는 동안 그가 마땅히 누려야 했을 평범한 학창 시절은 완전히 파괴됐다. 3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으나,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심상한 소년이 아니었다. 교도소에서 얻은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다 결국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칼리프가 수감된 3년 동안 백방으로 그의 석방을 위해 싸운 이가 있었다. 어머니, 베니다 브라우더(Venida Browder)다. 그녀는 막내아들 칼리프가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고장난 사회를 향한 어머니의 발언은 계속됐다. 그녀의 목소리는 소년범 독방 수감, 재판 지연과 신속 재판법, 라이커스 교도소의 처우 개선 등에 관한 논쟁에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실제 ‘칼리프 법안’을 통과시켜 뉴욕시 형사사법제도 개혁을 이끌어냈다. 베니다는 “나처럼 고통 속에 종신형을 살아야 하는 엄마가 나오기를 원치 않는다”(<npr>)고 말했다.
미국의 ‘망가진 사법체계’의 상징이 된 칼리프 브라우더의 어머니, 평범한 주부에서 열정적 인권운동가로 투신한 베니다 브라우더가 10월14일 미국 뉴욕 브롱크스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3. 아들이 자신의 집 2층 창에 목맨 마지막 모습을 목격하고 1년 남짓 지난 때였다. 브라우더의 변호사 폴 프레샤는 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녀가 문자 그대로 ‘심장이 부서져’(broken heart) 죽음을 맞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베니다에겐 7명의 자식이 있었다. 칼리프는 그중 막내였다. 베니다는 칼리프가 수감된 3년 동안 매주 라이커스 아일랜드로 면회를 갔고, 결국 열리지 않은 31차례의 공판 기일마다 매번 법원에 모습을 나타냈다.
칼리프는 2013년 출소했지만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처음 얼마간은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그는 열심히 공부해 고졸 학력 인증서를 받았고, 브롱크스커뮤니티칼리지에 진학해 평점 3.5점의 학점을 받기도 했다. 그는 2014년 11월 <abc>와의 인터뷰에서 끝내 유죄 협상을 하지 않고 “라이커스라는 지옥”을 견뎌낸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독방 수감으로 얻은 피해망상과 불안증은 그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같은 인터뷰 영상에서 그는 텅 빈 눈으로 “내 어린 시절을, 행복을 잃어버렸다”며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엉망이다. 내가 마흔 살쯤으로 늙어버린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베니다는 최선을 다해 아들의 회복을 도왔지만, 칼리프는 수차례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거듭 자살을 시도했다. 베니다는 2015년 6월 아들의 죽음 뒤 <abc>와의 인터뷰에서 “칼리프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라이커스 교도소의 유령이 그와 함께 왔다”고 말했다.
교도소 내 청소년 처우 개선 운동 앞장서
칼리프의 이야기가 처음 널리 알려진 것은 석방된 이듬해인 2014년 10월 가 그에 관한 기사를 게재하면서다. 칼리프를 인터뷰해 작성한 ‘법 앞에서’(Before The Law)라는 제목의 긴 기사였다. 이와 함께 웹사이트에는 두 건의 충격적인 영상이 공개됐다. 라이커스 교도소 내에서 칼리프가 겪은 폭력 현장을 생생히 담은 감시카메라 영상은, 칼리프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고 많은 이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언론 보도 뒤 칼리프의 대학 등록금을 후원하겠다는 이가 나타났고, 그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보통의 대학 생활을 이어가기도 했다. 칼리프 사건은 전국적인 뉴스로 확산됐다. 소년범 교도소 내 폭력과 불합리한 형사사법 체계에 분노하고 공감하는 이가 많아졌다. 칼리프는 소년범 교도소와 뉴욕시 형사사법제도 개혁의 방아쇠를 당긴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 되었고, 평범했던 어머니 베니다는 열정적인 인권운동가가 되었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은 16~17살 청소년 재소자의 독방 수감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한 교도행정 개혁에 나섰으며, 긴 사전심리 기간으로 부당한 구금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 법원의 밀린 재판 업무들을 바로잡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법무부도 라이커스 교도소의 대대적 개혁을 지원했다.
2015년 6월6일, 칼리프는 결국 제 집에서 침대 시트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그즈음 칼리프는 “나를 지켜보고 있다”며 새로 산 TV를 던져버리거나, 경찰이 자신을 쫓아다닌다고 말하는 등 극심한 피해망상에 시달렸다. 자살하기 전날 밤 칼리프는 베니다에게 “엄마, 나 더 이상 견딜 수 없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더블라지오 시장은 칼리프의 사망 이틀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라이커스 아일랜드 교도소에 대해 우리가 현재 만들어가는 변화는 칼리프 브라우더 사건의 결과다. 그를 잃지 않았다면, 하고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베니다는 칼리프가 죽음으로 남긴 유언을 실천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더욱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그녀는 2015년 7월 워싱턴DC에서 열린 교도소의 청소년 처우 개선을 위한 ‘칼리프법’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해 목소리를 높였고, ‘청소년 독방 수감 금지’(Stop Solitary for Kids) 기구의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지난 1월에는 미국 사법 정상회의에도 참석했다.
“아들을 죽인 건 시스템 전체… 죗값 치렀으면”
유명 래퍼이자 사업가인 제이지는 10월 초 칼리프의 삶을 담은 라는 제목의 6회분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고 발표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내년 1월 미국 를 통해 방송될 예정이다. 불과 일주일 전 베니다는 이 시리즈의 제작발표회에 제이지와 함께 참석했다. 올해 초 그녀는 형사사법제도 관련 비영리언론 ‘마셜프로젝트’에서 제작한 라는 제목의 비디오 프로젝트에도 출연했다. 10월17일 공개된 이 영상에서 베니다는 특유의 단단하고 의연한 눈빛으로 진심을 전달하고 있다.
“칼리프는 그들 때문에 3년을 지옥 속에서 보냈고, 나는 죽는 날까지 지옥 속에서 살 것이다. 나는 아들이 목맨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 만약 당신의 아이가 살해됐다면, 당신은 살인자에 대해 즉각적인 분노를 갖고 그 사람을 찾아내 복수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것이 단지 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내 아들을 죽인 것은 시스템 전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죗값을 치렀으면 한다.”(<abc> 2015년 6월17일)
이로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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