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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를 두고 의사는 떠났다

시리아 북동부 도시 알레포에 남아 어린 생명들을 지킨 소아과 의사, 무함마드 와셈 마즈
등록 2016-05-11 17:31 수정 2020-05-03 04:28
시리아 캠페인 제공

시리아 캠페인 제공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은 처음부터 아득했다. 칙칙한 색감이 현실감을 덜어냈다. 어둑한 복도로 느릿하게 들것이 들어왔다. 복도 끝은 중환자실이었다. 병실에서 나온 그는 초록색 수술복 차림이었다. 몇 차례 복도를 오가던 그가 이내 화면에서 사라졌다. 야간 당직근무를 위해 응급병동으로 향한 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때는 4월28일 밤, 장소는 시리아 북동부 알레포의 알쿠즈 병원이다. 섬광은 찰나였다. 그리고 암흑이 덮쳐왔다. 빛이 어둠으로 바뀌어, 사위를 무작스레 집어삼켰다. 멀쩡하던 병원이 콘크리트 더미가 돼 맥없이 무너져내렸다. 비명과 울부짖음이 뿌연 연기 속에 메아리쳤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결혼을 포기한 소아과 전문의</font></font>

“친애하는 여러분, 저는 알레포 어린이병원장 하템 박사입니다. 어젯밤, 알쿠즈 병원을 겨냥한 공습으로 의료진과 환자 2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 친구이자 알레포에 남아 있던 최고의 소아과 전문의인 무함마드 와셈 마즈(Muhammad Waseem Maaz)도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그간 마즈는 어린이병원에서 주간근무를 마친 뒤,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야간에는 알쿠즈 병원에서 일해왔습니다. 우린 하루 6시간 정도 함께 일했습니다. 한없이 다감하고 상냥했던 그는 의료진 모두와 자주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일했습니다. 마즈는 우리 병원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동료였습니다.”

병원 동료들의 말을 종합하면, 마즈는 올해 36살이었다. 그는 알레포를 지키는 유일한 소아과 전문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알쿠즈 병원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인 압둘 아지즈(가명)는 4월29일 캐나다 방송 <cbc>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료들이 ‘잠깐이라도 쉬라’고 할 때마다, 마즈는 웃으며 ‘난 괜찮다’고 말했다.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미혼인 그에게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어떻게 결혼할 수 있겠나? 결혼하면 내 가족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어질 텐데. 그럼 매일같이 울고 있는 저 아기들을 돌보는 일을 할 수 없게 될 거야’라고.”
기원전 5천 년께부터 알레포는 인간의 삶터였다. 저 멀리 중국에서 시작된 ‘실크로드’의 기나긴 여정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 유서 깊은 곳이기도 했다. 수많은 유물을 품고 있는 도시는 그 자체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을 정도다. 시리아 경제활동의 중심이던 알레포는 수도 다마스쿠스보다 인구가 많은 최대도시였다. 마지막 인구조사가 실시된 2004년을 기준으로 알레포의 인구는 213만2100여 명에 이른다. 지난 2월27일 시리아 내전이 부분적으로 정전에 들어갔을 때, 알레포에 남은 인구는 채 30만 명이 되지 않았다.
“저는 지금 터키에 와 있습니다. 제가 알레포로 돌아가면, 마즈도 가족을 만나기 위해 터키로 올 예정이었습니다. 벌써 넉 달째 (터키로 피란을 떠나온) 가족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즈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가 돼버린 알레포에 홀로 남기로 한 것은, 도움이 필요한 어린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정부군도, 러시아군도 그간 병원을 공습 목표물로 삼고는 했습니다. 마즈가 숨지기 며칠 전에도 병원에서 단 200m가량 떨어진 곳에 폭탄이 날아들었고….”
<font size="4"><font color="#008ABD">다 떠나면 누가 돌볼 것인가</font></font>
알레포는, 그나마 정전 지역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도시를 양분한 정부군과 반군은 쉴 틈 없이 서로를 향해 포탄을 쏘고, 총질을 해댔다. 지난 4월22일 이후, 상황은 더욱 불을 뿜었다. 알쿠즈 병원 공습 다음날에도 시내 지브알카바 의료원으로 폭탄이 날아들었다. 이튿날인 4월30일에는 알마르자 의료원과 부스탄알카스르 메디컬센터에 각각 공습이 가해졌다. 5월3일엔 도시 반대편 다비트 병원으로 포격이 날아들었다.
어디 알레포뿐일까? 올해 들어서만 다국적 의료지원단체 ‘국경없는의사회’(MSF)가 지원하는 시리아 내부 병원 150곳 가운데 7곳이 공습을 당했다. 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의료진만 적어도 16명에 이른다. 유엔 자료를 보면, 내전 발발 이후 지금까지 시리아 내 병원시설의 절반가량이 파괴됐다.
“어젯밤 병원이 공습을 당한 뒤 부근에 또 한 차례 공습이 퍼부어졌다. 오늘만 해도 알레포 전역에서 18차례나 공습이 벌어졌다. 어제와 오늘 새 숨진 이들만 60명을 넘어선다. 참혹하고, 공포스러운 상황이다.” 마즈와 함께 알쿠즈 병원에서 일해온 압둘 아지즈는 4월29일 캐나다 방송 <cbc>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알쿠즈 병원은 ‘국경없는 의사회’와 ‘국제적십자·적신월사’(ICRC)의 지원을 받아왔다. 마즈와 절친한 사이였다는 아지즈는 이렇게 덧붙였다.
“알레포에 갇힌 의료진은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의료진 수가 줄고 있다. 이미 위기에 내몰린 상태다. 우리는 난민으로 떠돌 생각이 없다. 우리는 조국을 사랑한다. 조국에 머물고 싶다. 마즈는 생전에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다 떠나면, 시리아의 아이들은 누가 돌볼 것이냐’고. 세계는 대체 뭘 기다리는 것인가?”
교전이 격화한 지난 4월22일부터 2주 만에, 알레포에서만 줄잡아 250명이 숨지고 1500여 명이 다쳤다. 스테판 데 미스투라 유엔 시리아 특사가 지난 5월3일 “알레포와 그 일대에 즉각 정전이 선포되지 않으면 재난적 상황이 닥쳐올 것이다. 40만 명가량의 시리아 난민이 한꺼번에 국경으로 몰려드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는 이날 인터넷판 기사에서 “이제 알레포에 남아 활동하는 의료진은 고작 25명에 그친다”고 전했다.
‘5월5일 새벽 1시를 기해 알레포 일대에서 48시간 동안 교전 행위를 중단한다.’ 시리아 정부는 5월4일 현지 방송 를 통해 성명을 발표했다. 구체적인 정전 조건은 밝히지 않았다. 이날 오후 알레포에서 30km 떨어진 이들리브주 북서부 사르마다에서 익숙한 굉음이 귀를 찢었다. 터키와 국경을 맞댄 그곳에는 난민 2천여 명이 간이 캠프를 이루고 있었다. 등 외신들은 “난민캠프를 겨냥한 폭격으로 적어도 30여 명이 숨지고 80여 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전쟁의 악귀는 좀체 힘을 잃지 않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5년 1개월 3주</font></font>
“공습이 심해질 때면, 저희 의료진은 인큐베이터 속에 있던 아기들을 끌어안고 지하실로 대피하곤 했습니다. 다른 수많은 이들처럼 마즈 역시 생명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오늘 저희들은 마즈의 인도주의와 용맹함을 기억합니다. 제발 이 이야기를 주변 다른 분들과 나눠주십시오. 알레포와 시리아 전역에서 의료진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상황이 급박합니다. 알레포는 조만간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채 고립될 수도 있습니다. 전세계가 지켜봐주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 한켠에, 잊지 않고 늘 우리를 놓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템 드림.”
하템 병원장이 시리아 의료지원단체 연대체인 ‘시리아 캠페인’의 페이스북 계정에 마즈를 추모하는 글을 올린 것은 지난 4월29일 새벽이다. 이 글은 5월6일 오후 현재 9만5천여 차례나 ‘공유’됐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3월15일 시작됐다. 2016년 5월6일 현재, 전쟁은 5년 1개월 3주째로 접어들었다.
정인환 영상센터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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