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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국가와 민족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이 인용되는 말 중 하나가 베네딕트 앤더슨(1936~ 2015)의 ‘상상의 공동체’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3년 출간된 앤더슨의 대표작 에서였다. 이후 이것은 앤더슨 저작의 핵심 개념이 되었는데, 쉽게 말해 민족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유토피아적 공동체라는 것이다.
보통 ‘민족’은 고대로부터 실재해온 원초적 공동체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책에서 앤더슨은 민족(국민·nation) 개념이 근대 자본주의 발전 과정의 역사적·문화적 구성물이며 사실상 ‘상상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작은 국가라 하더라도 구성원들이 모두 서로의 얼굴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앤더슨에 따르면 이것은 언어와 책, 신문 등 근대 인쇄술의 발전 때문에 가능했다. 그것으로 서로가 국민이나 민족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주장은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민족주의에 대한 근대적 해석의 장을 열었다.
차라리 인도네시아인이었던 사람국민국가와 민족주의 담론의 고전으로 꼽히는 로 잘 알려진 석학 베네딕트 앤더슨 미국 코넬대학 명예교수가 지난 12월13일(현지시각)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한 호텔에서 별세했다. 그는 잠든 사이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으로 전해졌다. 향년 79.
인도네시아 전문가로도 꼽히는 그는 근작 의 인도네시아판 출간을 기념해 현지를 방문하던 중이었다. 지난 12월10일 인도네시아대학에서의 출간기념 강연이 마지막 공식 일정이었다. 앤더슨의 양아들 와휴 유디스티라는 인도네시아 일간 에 그가 매년 겨울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방문해 강연과 여행을 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4월 광주에서 열린 ‘2015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비전포럼’ 참석차 한국에 오기도 했다.
그의 죽음에 대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관심은 영미권과 유럽권에 못지않았다. 인도네시아와 타이, 필리핀 등의 매체들은 그의 죽음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자국이 그의 저작에 진 빚에 대해 언급했다. 는 12월15일 사설을 통해 “이른바 ‘인도네시아 전문가’들 중에서도, 앤더슨은 인도네시아인들에게 널리 퍼져 있는 피해의식을 비롯해 우리 자신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게 해준 사람이었다”고 밝혔다.
앤더슨은 많은 민족주의 연구자들이 그렇듯, 다양한 국가와 민족이 혼합된 배경을 갖고 있었다. 그는 1936년 중국 쿤밍에서 영국계 아일랜드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당시 제국의 세금 징수기관인 중국 해관(海關)에서 일했다. 앤더슨 가족은 1941년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했고, 1945년 아일랜드로 돌아왔다.
1956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을 서양고전학 전공으로 졸업한 뒤, 앤더슨은 ‘수에즈 위기’ 항의 시위에 참여했다. 영국 식민지였던 이집트가 수에즈운하의 국영화를 추진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이집트 공습에 나선 것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그는 후일 이것이 자신의 첫 정치적 행위였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반제국주의·반식민주의 학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는 1967년 미국으로 건너가 코넬대학에서 인도네시아 역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0년대 초부터 코넬대학에서 정치학과 동남아시아학을 가르치며 죽기 전까지 거의 미국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를 미국인이나 아일랜드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웠다. 미국 종합시사지 의 필자 지트 히어는 최근 ‘나라 없는 사람, 베네딕트 앤더슨’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앤더슨은 인생의 많은 시간을 미국에서 보냈지만, 그가 ‘미국인’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았다. 사실 앤더슨에게 국가가 있다면, 그것은 인도네시아였다”고 말했다.
박사 논문으로 인도네시아 독립혁명사를 다룬 그는 인도네시아로 현지 조사를 떠났다. 이때의 경험은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965년 인도네시아는 반혁명적 폭력에 휩싸여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쿠데타를 수하르토 장군 세력이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100만 명가량이 학살됐다. 이후 1967년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수하르토의 독재가 시작됐다.
자바어, 타이어, 타갈로그어앤더슨은 충격적인 폭력 앞에서 수하르토 정권에 반대하는 활동에 몰두했다. 1966년 코넬대학에서 앤더슨과 그의 동료들은 1965년 인도네시아 쿠데타에 대한 분석 보고서 ‘코넬 페이퍼’를 펴냈다. 이것은 훗날 쿠데타에 대한 인도네시아 정부의 공식 설명이 틀렸음을 드러내는 주요한 문서가 되었다. 이 때문에 1972년 앤더슨은 인도네시아로부터 입국을 금지당했고, 수하르토 정권이 무너진 1998년이 되어서야 입국이 허용됐다. 는 12월15일치 사설을 통해 “앤더슨은 1965년 9월30일 쿠데타를 둘러싼 사건들에 대한 단 하나의 설명과 뒤따른 거대한 침묵에 의문을 제기한 (흔치 않은)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앤더슨의 대표작 는 이러한 구체적인 현장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지트 히어는 앞의 기사에서 “인도네시아처럼 다양한 언어와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들이 어떻게 단결할 수 있나? 무엇이 거대한 국가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죽이지 않도록 하나? 어째서 민족적 결합은 때때로 실패하나? 이러한 질문들은 인도네시아 역사에 대한 생생한 몰입으로부터 탄생한 것이었다”고 썼다. 뿐 아니라 등 앤더슨의 저작은 언제나 동남아시아 국가에서의 현지 연구에 바탕을 두었으며, 민족주의를 제3세계에서의 반식민주의·민족해방운동과 연관해서 보았다.
이외에도 앤더슨은 인도네시아·필리핀·타이의 언어, 문학, 권력 등에 대한 다양한 저작을 펴냈다. 그는 인도네시아어, 자바어, 타이어, 필리핀 공용어인 타갈로그어 등이 유창했다.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 크레이그 레이놀즈 교수는 “의 독자는 동남아시아 언어들에 대한 지식이 그에게 인도네시아, 타이, 필리핀의 정치·문화와 역사에 관한 통찰력을 주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고 'AP'에 말했다.
한국에서 앤더슨은 주로 ‘민족은 허구’라는 식의, 민족주의를 부정하는 논지에 소환되곤 한다. 그러나 그는 민족주의를 적대하지 않았다. 앤더슨은 2005년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민족주의의 유토피아적 요소들을 좋아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민족주의가 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민족주의를 연구하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어니스트 겔너나 에릭 홉스봄 등 연구자들의 경우, 민족주의에 상당히 적대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그러나) 나는 민족주의가 매력적인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람들은 한 국가의 일원으로서, 법을 지키는 등 더 좋은 행동을 한다”며 “민족주의는 좋은 행위를 북돋워 더 나은 사회에 공헌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앤더슨은 21세기 민족주의의 새로운 형태에 관심을 가졌다. 노르웨이에서 스리랑카를 위해 투쟁하는 타밀족, 캐나다에 자리잡은 시크교도 민족주의자, 아르헨티나의 웹사이트 망명 등 ‘장거리 민족주의’ ‘인터넷/모바일 민족주의’가 그것이다. 현대의 다국적주의와 유동적 정체성에 대한 온갖 담론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는 건재하다는 것이었다.
경계 없는 세계를 살았던 사람그가 말하는 민족주의는 아나키즘(무정부주의)과 만나, 세계 역사와 정치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2009년작 에서 그는 19세기 후반 식민 치하에서 필리핀 민족주의자 3명의 사례를 통해 아나키즘이 민족주의 항쟁에서 발휘했던 중력의 힘을 그려 보인다. 신세계에서의 마지막 민족주의 항쟁(1895년 쿠바)과 아시아의 첫 번째 민족주의 항쟁(1896년 필리핀)이 동시에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거다. 당시 민족주의에 대한 어떤 편견도 없이 열려 있던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벨기에 등 세계의 아나키스트들이, 식민지 필리핀과 쿠바의 반제국주의 투쟁에 가장 믿을 만한 동맹이 되어주었다. 그 때문에 세계사에서 처음으로 지구를 가로지르는 공동행동이 가능했다고, 그는 쓰고 있다.
지금 우리는 코즈모폴리턴(세계인)인가?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과거에 비해 코즈모폴리턴에 그다지 더 가까워지지 않았다. 앤더슨에 따르면 오히려 20세기 이전의 어떤 시기에는 여권도 없었고, 독일과 프랑스 의회에 외국인이 많았으며, 이주민에 대해 지금처럼 편집증적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가 영어 번역의 마무리 작업을 진행 중이던 회고록 (A Life Beyond Boundaries)은 내년 7월 미국 출간 예정이다.
이로사 객원기자 goorra@daum.net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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