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부의 절반가량을 인류의 1%가 소유하고 있다. 지구촌 소득 상위 1%의 자산 총액은 약 110조달러, 소득 하위 50%가 보유한 자산 총액의 65배 규모다. 소득 하위 50%의 자산 총액은 지구촌에서 가장 부유한 85명이 보유한 자산 총액과 엇비슷하고….”(크레디스위스, 중에서)
인류가 세계적 규모로 치른 두 번째 전쟁은 1945년 끝났다. 총성이 멈춘 자리에서, 잿더미를 딛고 재건·복구가 시작됐다. 일한 만큼 임금을 받을 수 있게 된 사람들은 빠르게 활력을 되찾았다. 돈을 번 사람들은, 그 돈을 썼다. 쓴 돈이 돌고 돌아 다시 공장을 돌렸다. 그렇게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상위 1%의 소득이, 전체 인구 소득의 5~6%에 그쳤던 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가 활황이던 1960년대, 인류는 역사상 가장 평등했다. 세계 자본주의는 ‘선순환’하고 있었다.
18세기 유럽, 혁명의 열기에 달뜬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한 찰스 디킨스의 역작을 떠올려보자. 말이다. 부와 빈곤, 탐욕과 굶주림, 욕망과 회한, 빛과 그늘이 공존한 그 시기를 디킨스는 이렇게 묘사했다.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였다. 무엇이든 가능해 보였지만, 실제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혼란과 무질서,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시대였고….”
1973년 중동발 ‘오일쇼크’가 세계경제를 덮쳤다. 영국을 비롯한 일부 유럽 나라에선 제한 송전 탓에 양초가 동이 났을 정도다. 전후 활황기는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자본주의의 ‘선순환’도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사악한 자본주의’가 천천히 복귀를 준비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크게 걸어라”… 도박판으로 변한 월가</font></font>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위기 징후도 뚜렷해졌다. 위기는, 누군가에겐 기회였다. 세계 자본의 심장부, 미국 뉴욕에서 새로운 형태의 ‘돈놀이’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미국인 피셔 블랙과 캐나다인 마이런 숄스가 그리로 가는 문을 열었다.
수리경제학자 출신 금융인인 두 사람은 1973년 에 ‘선물옵션 가격 결정과 기업의 책임’이란 제목의 논문을 실었다. 이 논문에 처음 등장한 게 이른바 ‘블랙-숄스 방정식’이다. 복잡한 설명을 덜어내면, ‘블랙-숄스 방정식’은 미래의 주식 가치를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는 공식이다. 미래 특정 시점의 주식 가치를 예측해, 해당 시점에 주식을 팔 수도(풋옵션), 살 수도(콜옵션) 있다. 이 논문으로 숄스는 199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1995년 사망한 블랙은 상을 받지 못했다. 노벨상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블랙-숄스 방정식’의 등장으로 국제 금융시장은 ‘체계적인 도박판’으로 바뀌었다. 규칙은 뻔했다. “크게 따려면, 크게 걸어라.” 미래의 ‘불확실성’과 ‘위험’을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됐다. 정밀한 예측으로 떨쳐내면 그만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 이제 ‘위험’은 되레 기회다. 월가의 규칙도 그에 맞춰 바뀌었다. “위험을 적극 끌어안아라. 위험이 클수록, 더 많이 얻으리니….”
‘기적의 방정식’에 힘입어, 선물거래를 포함한 국제 파생금융상품(디리버티브)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 월가의 주식 중개인들도 온통 그 시장만 바라봤다. 가장 매력적인 건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이었다. 확실한 담보가 있는데다, 매달 따박따박 원리금을 거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미 주류 정치권에서 유행하던 구호가 있다. “1가구 1주택, 모든 미국인은 자기 집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 너나없이 경쟁적으로 주택 구입에 나서던 때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 투자사인 살로먼브러더스가 새로운 금융상품을 선보였다. 이른바 ‘주택저당증권’(MBS)이다. 쉽게 풀어보자.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을 해주면 은행은 채권을 갖게 된다. 그 채권을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주식화’한 게 MBS다. 누구 생각일까? 살로먼의 모기지 투자 전문가인 로버트 프레드 달이다. 그는 지난 1월 영국 <bbc>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MBS 시장이 그렇게 빨리 성장할 줄 예상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당 같은 데서 사람들이 내게 다가와 ‘좋은 아이디어를 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기 시작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미 증시 ‘거품’ 터지고 부동산 시장 침체기</font></font>
로버트 달은 1934년 8월23일 뉴욕 퀸스의 애스토리아 지역에서 태어났다. 뉴욕 동부 호프스트라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1955년 뉴욕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석사과정을 마친 뒤, 1957년부터 시중은행에서 일했다. 6년 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로 자리를 옮긴 그는 1960년대 말 살로먼브러더스에 자리를 잡았다.
달의 주 업무는 주택담보대출 채권에 대한 정부 보증기관인 ‘지니메이’와의 채권 거래였다. 그는 베이비붐 세대의 사회 진출과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부동산 시장의 미래를 낙관했다.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민간 투자자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그는 1986년 11월19일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고, 이후 일은 저절로 굴러갔다.” 살로먼은 1977년 뱅크오브아메리카와 공동으로 1억달러 규모의 MBS를 출시했다. 사상 최초였다.
달의 예상은 적중했다. 1980년 초반, 살로먼은 수익의 절반을 MBS를 통해 벌어들이게 됐다. 그 공을 달의 후임자가 가로챘다. 임원 승진이 좌절된 그는 1984년 살로먼에서 퇴사했다. 첫 번째 은퇴는 일주일 만에 끝났다. 그는 거대 투자사 모건스탠리로 자리를 옮겨 14개월을 일했다. 두 번째 은퇴는 9개월 만에 끝났다. 달은 한때 미국 제5위 투자은행으로 꼽힌 드렉셀 번햄 램버트의 수석 부사장으로 월가에 복귀했다. 52살 때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얌전히 앉아 있는 건 내 취향이 아니란 점을 깨달았다. 앞으로 10년 동안은 은퇴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정크본드의 왕자’로 불렸던 드렉셀은 1990년 2월 대규모 부당거래 추문에 휩싸이면서 도산했다. 이후 달은 살로먼 시절 동료들과 부동산 투자 전문업체를 창업했다. 달의 부침과 달리 파생금융상품 시장은 끝 모르고 팽창을 거듭했다. 금융시장 전문매체 는 2010년 6월9일 “국제 파생금융상품 시장의 명목가치가 1200조 달러에 이른다”고 전했다. 한 해 전세계 각국의 국내총생산(GDP)의 총합은 약 50조~60조달러에 이른다. 명목가치로만 따져, 파생금융상품 시장 규모가 전세계 총생산의 20배를 넘는다는 뜻이다.
집을 사려 빚을 졌다. 그 빚을 사고팔아 이득을 취했다. 세상은 잘 돌아가는 듯 보였지만, 끝까지 그럴 순 없었다. 번영은 허상이었다. 1990년대 미 증시의 ‘비이성적 과열’을 부추겼던 ‘정보기술(IT) 거품’은 새천년을 앞두고 터졌다. 초저금리 정책이 한동안 이어졌다. 싼 이자로 집을 사려는 이들이 몰렸다. 부동산 값이 폭등했다. 집값 상승률은 이자율을 쉽게 넘어섰다. 너나없이 집을 샀다. 초저금리 기조는 2004년 깨졌다. 그해 6월부터 11월 새, 기준금리가 1%에서 2%로 뛰었다.
빚을 갚지 못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갑자기 매물이 몰렸다. 집값이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렸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로 돌아섰다. 더 많은 매물이 쏟아졌다. 시장은 더욱 얼어붙었다. 이미 MBS 시장은 상환 능력이 있는 우량 채권과 상환 능력이 없는 불량 채권이 뒤섞인 채였다. 세계 금융시장을 온통 뒤흔든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금융시장 붕괴시킨 토대 만들었다”</font></font>
“당신이 만든 논리에 따라 MBS 시장이 형성됐다. 그 끝이 서브프라임 사태로, 국제 금융시장 붕괴로 이어졌다. 직접 금융시장을 붕괴시킨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체제를 만든 건 당신이다.” <bbc>가 지난 1월 내보낸 2부작 다큐멘터리 ‘슈퍼 부자와 우리들’을 보면, 달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는 잠시 눈을 껌벅이더니, 깊은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 말…, 맞는 얘기다. 그렇다는 점을 오늘 처음으로 인정한다.” 로버트 달은 지난 11월15일 뉴욕 맨해튼의 자택에서 폐렴 합병증으로 조용히 숨을 거뒀다. 향년 81.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bbc></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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