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미국에서 가정잡지로 출발했다. 한때 ‘문예잡지’를 표방하기도 했으나, 1960년대 말부터 ‘여성지’로 거듭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언론재벌 ‘허스트’가 발행하는 이 월간지는 ‘인간관계, 성, 건강, 경력, 자기계발, 연예인, 패션, 미용’ 등을 주로 다룬단다. 2011년 6월 기준 미국 발행부수공사(ABC)의 자료를 보면, 미국에서만 월평균 300만 부 이상 팔려나간다. 64개국에서 35개 언어로 발행되는 이 잡지는 (이하 )이다.
“저녁밥 짓는 거나 똑같다. 미리 뭘 할지 계획하고, 필요한 재료를 준비한다. 그리고 요리를 하면 된다.”
1967년 4월호, 이 잡지 52쪽에 실린 기사의 일부다. 새롭게 떠오르는 직업에 대한 심층 취재, ‘컴퓨터 걸스’가 제목으로 달렸다. “초보자도 연봉 8천달러, 경력을 인정받으면 2만달러 이상”을 번단다. 그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은 156.08달러였다. ‘여성에게 꼭 맞는다’고 소개된 이 직업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다. 의 보도 덕분일까? 가 2011년 8월26일 전한 내용을 보면, 1960년대 말 미국 대학에서 컴퓨터공학 전공자의 11%가 여성이었다. 그 수치는 1970년대 말엔 25%로, 1984년엔 사상 최고치인 37%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2006년 조사에선 다시 20%까지 떨어졌다. 세월이, 참으로 무상하다.
‘컴퓨터 걸’을 보고 자란 소녀
가 ‘컴퓨터 걸스’를 특집으로 다룰 무렵 생겨난 용어가 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용하고, 사후 관리까지 하는 일련의 공정을 일컫는 말이다. 그 집적체가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추진한 유인 우주비행 탐사계획, 곧 ‘아폴로 계획’이었다.
1969년 7월21일, 협정 표준시(UTC·한국시각은 9시간 빠름) 02시56분15초로 기록돼 있다. ‘아폴로 11호’ 선장 닐 암스트롱의 왼발이 달 표면에 닿았다. 흐릿한 흑백 영상과 함께, 이내 ‘준비된 멘트’가 멀리 지구로 날아들었다. “오늘 이 걸음은 한 사람의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의 위대한 도약이기도 하다.”
‘새턴 5호’ 로켓에 실려 대기권을 빠져나간 아폴로 11호는 본선인 컬럼비아호와 달 착륙선인 이글호로 구성됐다. 암스트롱을 태운 이글호가 ‘고요의 바다’에 착륙한 것은 전날인 7월20일 20시17분40초(UTC)다. 궤도를 돌고 있는 본선에서 달 표면까지 내려오는 동안, 상공 1800m 지점에서 항해유도장치(AGC)가 오작동을 일으켰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왜? 한꺼번에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입력된 탓이다. 문제는 곧 해결됐다. 컴퓨터가 스스로 쓸데없는 정보를 삭제하기 시작한 게다. 어떻게? 소프트웨어 설계 단계에서, 이런 ‘과부하’를 염두에 뒀기에 가능했다. 누가? 마거릿 해밀턴(당시 32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이란 말을 처음 만든 ‘컴퓨터 걸’이다.
당시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팀의 일원이던 해밀턴은 아폴로 11호의 비행제어 시스템 제작을 주도했다. 정보처리 과정에서 컴퓨터가 ‘우선순위’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었다. 그는 지난 7월20일 과 한 인터뷰에서 “달 착륙에 성공한 것보다,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작동한 게 더 기뻤다”고 말했다. 그 무렵 MIT의 기혼 여학생은 남편의 동의서를 받아와야 대출이 가능했다. 그런 세월이었다.
바야흐로 ‘우주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해밀턴의 소프트웨어 덕에 암스트롱이 ‘위대한 도약’을 하는 모습을 꿈 많은 10살 소녀도 눈여겨보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사는 클라우디아 알렉산더다. 1959년 5월30일 캐나다 서부 밴쿠버에서 태어난 알렉산더는 어려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어머니는 사서였고, 아버지는 복지사로 일했다. 고교 시절 나사에서 인턴 경험을 쌓기도 했지만, 알렉산더의 꿈은 과학에서 조금 비껴가 있었다. 는 지난 7월21일치에서 그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원래는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싶었다. 그런데 부모님이 ‘뭔가 쓸모가 있는 공부를 해야 학비를 대주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공학도의 길로 들어섰다.”
백인 남성 위주의 나사에서 탁월했던 여성토목공학을 권했던 부모의 뜻과 달리 알렉산더는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 교정에서 지구물리학을 전공했다. 그는 “파이프를 타고 흐르는 하수보다 강물이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천체물리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직후인 1986년 나사 우주탐사의 중추인 제트추진연구소(JPL)에서 일하기 시작한 그는, 1993년 미시간대학에서 같은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백인 남성이 절대다수인 공간이다. 아프리카계 여성인 알렉산더는, 말하자면 1960년대 ‘컴퓨터 걸’만큼이나 ‘눈에 띄는 존재’였다. 그리고, 탁월했다. 1989년 10월18일 지구를 박차고 나간 ‘갈릴레오호’는 14년여의 우주 유영을 마감하고 2003년 9월21일 ‘영면’했다. 목성의 대기권으로 초속 48km로 하강시키는 갈릴레이호 ‘최후의 미션’을 책임진 것은 알렉산더였다.
‘수-금-지-화-목’ 다음은 토성이었다. 1997년 10월15일 지구를 떠난 나사의 우주선은 2004년 7월1일 목적지 궤도에 도착했다. 알렉산더는 토성 탐사 프로젝트 ‘카시니 계획’의 핵심이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지구의 ‘원형질’을 탐구하기 위해 유럽과 미국이 뭉쳤다. 이른바 ‘로제타 미션’이다. 2004년 3월2일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출발한 우주선은 2014년 8월6일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에 가닿았다. 사상 최초의 혜성 착륙이다. 알렉산더는 미국 쪽 책임자로 활약했다. 그는 2011년 2월3일 ‘여성행성과학자협회’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석사 과정을 마친 직후부터 우주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관리 책임을 맡은 이후엔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90시간을 넘어섰다. 더 할 말도 없다. 정신없는 나날이다. …과학계에선 방정식이 평등을 만든다. 인종과 성별은 상관없다. 누가 문제를 풀었느냐가 중요하다.”
과학동화 작가로 마법 같은 모험 창조하기도‘로제타’와 ‘카시니’가 랑데부를 하던 무렵, ‘뜻밖의 손님’이 찾아들었다. 유방암이었다. 쫓고 내몰기를 10년여, 그의 육신이 천천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 세월 동안에도 그는 어린이용 과학 동화를 짓고, 승마를 즐겼으며, 우주를 바라봤다. 인터넷서점 아마존의 저자 소개란에는 “과학자, 작가, 독립출판인. 낮에는 행성을 공부하고, 우주선을 쏘아올린다. 밤이 되면 우주를 상상하며, 새로운 세계와 마법 같은 모험을 창조해낸다”고 적혀 있다.
2006년 1월20일 04시 정각에 지구를 떠난 ‘뉴호라이즌스호’는 9년 반 만인 지난 7월14일 11시49분57초에 목적지인 명왕성에 도착했다. 비행거리는 약 50억㎞에 이른다. 클라우디아 알렉산더는 이를 지켜볼 수 없었다. 사흘 전인 7월11일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어케이디아의 감리교병원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생화학과 생물물리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라는 누리꾼 스테파니 페이지(@ThePurplePage)는 트위터에서 이렇게 추모했다. “모든 흑인 여성 과학자는 개척자다. 원해서 그런 게 아니다. 현실이 그렇게 만든다. 클라우디아 알렉산더는 개척자들의 개척자였다.” 향년 56.
정인환 영상센터 기자 inhwa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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