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암벽등반가이자 극한 스포츠 전문가 딘 포터(42)가 5월16일 숨을 거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국립공원 내 해발 2286m 높이의 절벽 태프트포인트에서 딘 포터와 동료 등반가 그레이엄 헌트(29)가 ‘베이스점프’를 하려고 뛰어내렸다가 추락사했다고 는 보도했다. 베이스점프는 날다람쥐 모양의 옷인 윙슈트 등 장비를 메고 높은 다리 또는 절벽 위에서 뛰어내리는 극한 스포츠다.
맨손 등반, 절벽 줄타기
요세미티공원 쪽은 16일 밤 포터 일행과 연락이 끊겼다는 신고를 받아 수색 작업을 벌였고, 다음날 아침 요세미티밸리 인근에서 이들의 주검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윙슈트용 낙하산이 모두 펼쳐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공원 관계자는 말했다.
딘 포터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모험가였다. 맨손 암벽등반은 물론 베이스점프, 절벽 사이 줄타기 등의 명수였다. 키 191cm, 몸무게 82kg, 짙은 갈색 머리의 딘 포터는 어릴 때부터 등산을 좋아했다. 1972년 미국 캔자스 레벤워스육군병원에서 태어났다. 뉴햄프셔고등학생 시절부터 등산을 좋아했다. 뉴햄프셔대학에 진학해 등산팀을 꾸렸지만, 이내 암벽등반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대학을 자퇴했다. 이후 20년간 산에 올랐다.
포터는 항상 맨몸으로 등반했다. 로프와 같은 안전도구 없이 산을 오르는 프리솔로(Free Solo)의 1인자로 통했다. 2001년, 맨손의 딘 포터는 요세미티를 대표하는 수직 절벽인 엘캐피턴을 당시 최단 기록 3시간24분 만에 등정했다. 2008년에는 스위스의 해발 3970m 아이거를 맨몸으로 등반해 유명세를 탔다. 2009년 은 ‘올해의 모험가’로 그를 선정했다. “딘 포터는 지난 20년간 세계의 암벽등반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나는 그가 산을 오르는 것을 보고 자라났다”고 등산가 알렉스 호널드(23)는 에 전했다.
그의 등산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2006년 미국 유타주 아치스국립공원의 델리키트아치 등반 논쟁이 대표적이다. 국립공원 쪽은 대부분 사암으로 구성된 이곳의 등반을 금지했다. 그러나 그는 “내가 등반하지 않을 법적 이유가 없다”며 강행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후원자인 아웃도어 의류업체와 결별했다.
애완견과 산책하고 정원을 가꾸고베이스점프도 마찬가지다. 비행기 위에서 뛰어내려 충분한 고도에서 낙하산을 펼칠 수 있는 스카이다이빙과 달리 베이스점퍼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고도에서 뛰어내린다. 적어도 25명 이상의 베이스점퍼가 지난해 사망했다고 영국 일간 은 전했다. 이 때문에 미국은 국립공원 내 베이스점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딘 포터 등 베이스점퍼들은 이런 규정을 무시해왔다. 베이스점퍼 크리스 맥나마라는 “두 날개로 나는 베이스점프가 마법에 가장 가까운 스포츠라는 것을 딘 포터는 알고 있었다”고 AP에 말했다.
그의 끝없는 도전은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를 타고 세계로 알려졌다. 푸른 새벽녘 붉은 절벽 사이를 줄타기하거나, 애완견 위스퍼와 함께 베이스점프를 하는 등의 동영상이 특히 유명하다. 지나치게 위험하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단 한 번의 도전에만 집중한다”고 암벽등반가들의 잡지 인터뷰에서 말했다. 지난해 에너지바 제조업체는 베이스점프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후원 계약을 종료했다.
두려움 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는 힘은 어린 시절에 생겨났다.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이스라엘에 살았는데, 아몬드를 주우려고 돌집을 오르다가 머리를 다쳐 정신을 잃었다. 당시 동네 베두인족 여자들이 내 이마에 흐르는 피에 소금을 뿌리며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죽다 살아난 그 이후로 나는 위기 상황에서도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지 않게 됐다.” 지난 1월 와 한 생전 마지막 인터뷰 내용이다.
대부분의 극한 스포츠 선수와 달리 그는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으며, 마리화나도 하지 않았다. 설탕과 탄수화물도 먹지 않았다. “수많은 극한 선수들이 술과 약물에 의존하다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것을 봐왔다. 나는 극한 스포츠 운동도 하지만, 애완견과 산책을 하며 정원을 가꾸는 보수적인 사람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에게 극한 스포츠는 예술이었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것은 인류 모두의 꿈이다. 나는 그 불가능한 꿈을 좇고 있다”고 그는 2008년 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영혼과 열정을 쏟아부은 곳에서 마침표생의 마침표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곳에서 찍었다. “그는 자신의 영혼과 열정을 모두 요세미티공원에 쏟아부었다. 요세미티의 아름다움이야말로 그를 세상에서 가장 멋진 등반가로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그의 오랜 여자친구 젠 래프의 말이다. 암벽등반가이자 전 부인인 스테프 데이비스 역시 “요세미티야말로 그가 관습과 규칙의 한계를 깨고 싶어 한 곳”이라고 말했다.
김승미 여행자 ·전 기자 *위의 글은 , 위키디피아 등을 참조했습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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