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삐용처럼 사는 게 좋을까, 아니면 드가처럼 사는 게 좋을까.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의 영화 은 주인공 빠삐용과 그의 감방 동료인 드가를 통해 인간 삶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대비시킨다. 살인 누명을 쓴 빠삐용이 탈출 불가능한 ‘악마의 섬’에 갇혔다. 빠삐용은 자유를 찾아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한다. 반면 드가는 돼지를 키우고 채소도 심으면서 척박한 섬을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바꿔나간다. 두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했을까.
어디서든 한 우물을 꾸준히 파다보면파라과이 동남부 도시 시우다드델에스테에서 화장품 판매 사업을 하고 있는 명세봉(53) 테라노바 사장은 빠삐용보다는 드가의 삶에 더 깊이 공감하는 인물이다. 17살 때부터 가가호호 방문해 옷을 파는 ‘벤데’ 행상을 시작한 명 사장은 이후 식당과 식료품점, 옷가게, 액세서리점 등 여러 사업을 전전한 끝에 파라과이 유일의 미용제품 전문 쇼핑센터인 ‘테라노바’를 일궈냈다. 테라노바는 화장품과 액세서리, 샴푸, 비누, 세제, 주방용품 등 500여 개 품목을 취급하면서 연간 700여만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명 사장은 세계한인무역협회(OKTA)의 시우다드델에스테 지회장을 맡아 한국인 사업가들 사이의 협력과 친목 도모에도 앞장서고 있다. 40년 가까운 파라과이 이민 생활의 소회를 정리한 에세이집 를 한글과 스페인어로 출간할 만큼 집필 활동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저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드가의 모습에서 동병상련의 연민을 느꼈습니다. 남미로 이민을 온 많은 한국인들에게 파라과이는 잠시 들렀다가 떠나는 정거장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다 사람 사는 땅입니다. 어디에 있든 한 우물을 꾸준히 파다보면 좋은 날이 오게 마련입니다.”
빛이 뚫고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빽빽한 숲이 까마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장엄한 물줄기가 푸른 밀림 한가운데를 가르며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총너비 4.5km에 70여m의 절벽 위로 275개의 폭포가 주렁주렁 걸려 있다. 두툼한 녹색 겉옷을 입은 밀림이 새하얀 속옷 자락을 펄렁펄렁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명 사장과 함께 이구아수 국립공원을 둘러보면서 그의 파란만장한 파라과이 이민사를 들었다. 이구아수폭포는 그가 사는 시우다드델에스테에서 차로 20여 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원래 이구아수폭포 일대는 파라과이 땅이었어요. 그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빼앗긴 거지요. 150년 전 파라과이가 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 세 나라를 상대로 무려 7년 동안 전쟁을 했답니다. 전쟁에서 패하는 바람에 보석 같은 이구아수폭포를 두 나라에 빼앗겼지요. 이구아수폭포는 브라질 쪽의 포스두이구아수와 아르헨티나 쪽의 푸에르토이구아수에 속해 있습니다.”
이구아수폭포 관광을 마친 뒤 명 사장과 함께 시우다드델에스테로 향했다. 브라질의 포스두이구아수에서 파라과이 시우다드델에스테 사이에는 파라나강이 흐른다. 총연장 3299km에 달하는 이 강은 브라질 고원의 서부에서 발원해 남동쪽으로 흐르다가 이구아수강과 합류하면서 파라과이와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가르는 국경선 역할을 한다. 다리를 건너 시우다드델에스테로 들어서자 현란한 쇼핑센터 간판들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시우다드델에스테는 쇼핑 천국입니다. 인구 30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에 대형 쇼핑센터가 300여 개나 밀집해 있습니다. 쇼핑객은 90% 이상이 브라질 사람이에요. 이구아수폭포를 찾는 사람들은 포스두이구아수와 푸에르토이구아수에서 관광을 한 뒤 쇼핑은 시우다드델에스테에서 하지요. 파라과이 물가가 워낙 싸거든요. 시우다드델에스테는 국경무역으로 번창하는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동포도 1천여 명이 살고 있는데 주로 옷장사와 잡화, 전자제품 무역을 하고 있습니다.”
진열대에 가득한 한국산 제품들파라과이 경제는 이웃의 큰 나라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수도인 아순시온과 엥카르나시온, 시우다드델에스테 등 주요 도시가 모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국경 부근에 들어선 이유이기도 하다. 국경무역은 굴곡이 심하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기가 나쁘면 시우다드델에스테를 찾는 쇼핑객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두 나라와 정치적 갈등이 불거질 때도 쇼핑객의 발길이 뚝 떨어진다.
북적거리는 시장 골목을 살짝 벗어난 곳에 호텔 건물처럼 아름다운 외관을 한 테라노바 본사 빌딩이 서 있었다. 대지 650㎡에 연건평 6천㎡ 규모의 10층 빌딩이다. 낯익은 우리나라 톱스타 모델의 샴푸 광고가 빌딩의 한쪽 벽면을 덮고 있었다. 테라노바의 주력상품 중 하나인 한국산 샴푸 광고였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짙은 감색 정장 차림의 여직원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한다. 명 사장과 함께 매장을 둘러봤다. 1층 매장은 화장품과 액세서리 코너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리나라 애경 제품을 비롯해 로레알·크리스티앙디오르·지방시·캘빈클라인 등 유명 브랜드의 화장품이 진열돼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된 2층과 3층에서는 각각 미용제품과 주방용품을 팔고 있었다. 애경 케라시스와 락앤락 등 한국산 제품이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해당 제품의 브랜드를 중심으로 물건을 팔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테라노바’라는 우리 브랜드를 앞세운 마케팅을 늘려가고 있어요. 유명 브랜드 회사들의 파워에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 사업을 하려면 자체 브랜드 파워를 길러야 합니다. 고객에게 테라노바 점포에서 사는 제품은 믿어도 된다는 신뢰를 쌓아가기 시작했어요.”
사장실은 맨 꼭대기 10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통유리창을 통해 시우다드델에스테 쇼핑거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오기까지 명 사장은 얼마나 많은 곡절을 겪었을까. 화장품과 액세서리 등 미용용품 사업을 하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푹신한 가죽 소파에 앉아 명 사장의 사업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한평생 동안 자신의 운명을 바꿀 기회를 세 번 만난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기회는 준비된 사람과 깨어 있는 사람의 손에만 잡힌다. 꿈과 열정,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손안에 기회가 들어왔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그냥 손가락 사이로 흘려버린다.
“저에게 주어진 첫 번째 기회는 아내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제가 시우다드델에스테로 오기 전 수도 아순시온에서 옷가게를 할 때였어요. 가게 앞으로 묘령의 한국 아가씨가 지나가더라고요. 가게를 보다 말고 쫓아갈 정도로 한눈에 반했어요. 연애하는 데 정신이 팔려 수표 막는 날짜를 깜박하는 바람에 거래은행에서 부도났다는 연락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하늘의 도움과 아내의 내조5살 연하인 아내 송선영씨는 사랑과 재물을 함께 물고 들어온 복덩어리였다. 결혼과 함께 현재 테라노바의 사업 기반을 다지는 액세서리 사업을 시작하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송 여사네 가족은 1986년 파라과이로 이민을 왔다. 송 여사 친정의 가장 역할을 하던 남동생 역시 명 사장처럼 메르카도쿠아트로에서 옷장사를 시작했다.
“처남의 옷장사는 신통치 않았어요. 1988년 처남의 옷가게를 정리했습니다. 처갓집은 딸을 저에게 맡기고 시우다드델에스테로 이사했어요. 그러고는 장모님이 그곳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내게 됐지요. 그때 막 액세서리 붐이 일기 시작했어요. 액세서리 사업은 금방 점포를 두 개로 늘릴 만큼 장사가 잘됐어요. 처남이 저에게 시우다드델에스테로 와서 함께 액세서리 사업을 하는 게 어떠냐고 하더라고요. 1990년 5월 아순시온의 옷가게를 정리하고 시우다드델에스테로 이사했습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님을 따라 이민 온 지 13년 만에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삶의 터전을 옮긴 것이었지요. 장모님께서 점포 두 개 중 하나를 제게 맡기면서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까사 정’이라는 이름의 가게였습니다.”
큰 부자는 하늘이 내고, 작은 부자는 아내가 만든다고 했던가. 명 사장의 액세서리 사업은 하늘의 도움과 아내의 내조를 한꺼번에 받는 복을 누리게 된다. 하늘의 도움이란 명 사장이 시우다드델에스테로 오던 1990년부터 남미 최대의 시장인 브라질 시장이 활짝 열린 일이었다. 또한 섬세한 미적 안목을 지닌 아내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 만한 액세서리 품목을 귀신처럼 선별해 들여온 것도 경쟁업자들을 제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89년 12월 브라질 대선에서 승리한 첫 민선 대통령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대통령은 29년간의 군정 종식과 함께 개방화 및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콜로르 대통령은 부정축재 혐의로 1992년 12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하지만 그의 뒤를 이은 이타마르 프랑쿠 대통령은 콜로르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1995년 취임한 페르난두 엔히크 카르도주 대통령은 남미공동시장(Mercosur)과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출범시키면서 개방화 및 민영화를 더욱 가속화한다. 파라과이와 브라질 국경이 열리면서 브라질 쇼핑객이 시우다드델에스테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제가 가게를 맡은 첫날 매상이 1만달러가 넘었어요. 장모님이 하루 1천~2천달러의 매상을 올리던 곳이라면서 놀라시더라고요. 액세서리 장사를 시작하자마자 잭팟을 터트린 셈이지요. 2년 만에 장모님으로부터 가게를 인수받았습니다.”
인생에서 세 번 온다는 기회 중 두 번째가 바로 시우다드델에스테로 삶의 무대를 옮긴 일이라는 사실이 점점 확실해졌다. 쓰레기를 들여다놓아도 팔린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시우다드델에스테의 경기는 호황을 이어갔다. 1993년 명 사장은 지금의 주력상품인 화장품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동생인 세용씨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액세서리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동생이 옆집 화장품 가게에서 구한 립스틱과 마스카라 등의 샘플을 보내왔다. 조다나·아리엘라 등 중저가 브랜드 제품이었다. 조금씩 들여놓았더니 불티나게 팔렸다. 1998년 한 해 동안 조다나 화장품으로 올린 매출만 따져도 70만달러였다. 그러자 아랍 상인 등 경쟁업자들이 너도나도 중저가 화장품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경쟁업자들을 따돌릴 새로운 차별화 전략이 필요했다. 명 사장은 품질경쟁력과 가격경쟁력을 두루 갖춘 한국산 화장품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동화 주인공보다 더 동화 같은 삶“한국산 화장품은 유럽의 명품 브랜드 못지않은 품질을 갖추고 있습니다. 좋은 품질에 비해 가격은 착한 편이지요. 단점이 있다면 이곳 파라과이와 브라질,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한국 브랜드가 알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단점을 테라노바의 신용과 보증으로 커버할 수 있었어요.”
멋모르는 17살 나이에 부모님 손에 이끌려 파라과이로 이민을 온 명 사장은 스스로의 힘으로 사랑과 행복, 부를 두루 일구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 ‘삶의 페달’을 성실하게 밟다보니 어느 순간 많은 것을 누리게 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명 사장은 어쩌면 시우다드델에스테에서 동화 속 주인공보다 더 동화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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