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우거진 숲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땅이 있었다. 풍성한 물줄기가 굽이굽이 비옥한 땅을 적시며 흐르는 곳이었다. 동쪽으로는 브라질에서 발원한 총 2550km 길이의 파라과이강이 흘러든다. 서쪽으로는 볼리비아에서 시작된 총 2500km 길이의 필코마요강이 흘러든다. 1537년 8월15일 스페인 탐험가 후안 데 살라사르 이 에스피노사가 두 강이 합류하는 유역에 도착해서는 그 비경에 홀딱 반한 나머지 그곳에 정착지를 건설했다. 남미대륙 식민도시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이다.
기껏해야 7~10층짜리 건물이 이어지는 아순시온의 잔잔한 스카이라인이 가파르게 치솟기 시작하는 곳이 있었다. 서울 강남에 해당하는 아비아도레스델차코 지역이다. 아침 8시 아비아도레스델차코에 있는 아순시온 최대 쇼핑센터 ‘쇼핑델솔’(Shopping del Sol) 입구의 노천카페. 초로의 한국인 부부가 간단한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40년 가까이 파라과이 이민 생활을 하고 있는 박광욱(58) 콰라흐S.A(KUARAHY는 ‘태양’이라는 과라니어, S.A는 ‘주식회사’라는 뜻의 스페인어 약자) 회장과 오현숙(56) 으보트포라S.A (YVOTY PORA는 ‘아름다운 옷’이라는 뜻의 과라니어) 사장 부부였다.
지구 한 바퀴를 두르고도 남을
박 회장은 원단 무역업체인 콰라흐S.A를 통해 연간 1천만~13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박 회장이 지난 4~5년 동안 판매한 원단을 한데 이으면 지구 둘레를 한 바퀴 두르고도 남을 정도다. 또한 콰라흐S.A의 아르헨티나 자회사인 블루드래곤을 통해서도 연간 500만~700만달러의 매출을 거둔다. 여기에 오 사장은 청바지 봉제회사와 세탁공장을 함께 하는 으보트포라S.A를 통해 연간 200여만달러의 매출을 올린다.
박 회장 부부의 시선이 자꾸 쇼핑센터 길 건너편으로 향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한창 건설 중인 육중한 고층 빌딩 4개 동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오르고 있었다. 정사각형으로 나란히 자리를 잡은 네쌍둥이 빌딩은 어림짐작으로 20층 가까이 올라간 상태였다. 공사장 앞에는 건축 중인 빌딩의 내역을 알리는 대형 알림판이 세워져 있었다. ‘WORLD TRADE CENTER ASUNCION’. 박 회장 부부가 아순시온 월드트레이드센터에 자꾸 눈길을 주는 이유는 뭘까. 박 회장이 그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월드트레이드센터 전체 지분의 30% 정도를 우리가 사들였습니다. 3천만달러를 투자했지요. 도로변에 접한 B동은 통째로 사들였어요. 뒤쪽 C동과 D동 빌딩의 4층과 5층도 저희가 매입했습니다.”
박 회장 부부의 원단회사인 콰라흐와 봉제공장인 으보트포라는 아순시온 동부 외곽의 산타루시아 지역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적한 주택가를 가로지르는 작은 개천가에 공장건물과 물류창고가 나란히 마주한 채 서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왼편에서는 대형 세탁기들이 윙윙 돌아가고, 오른편에서는 청바지 다림질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2층 공간은 사무실과 재단실. 사무실 안쪽에 있는 박 회장의 방에는 청바지와 원단 견본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곳에서 박 회장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 회장: “초창기 남미로 이민을 온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지만 우리 부부도 맨손으로 시작했어요. 스페인어 한마디를 못하는 사람들이 불모지나 다름없는 파라과이에서 처음 시작한 일이 ‘벤데’라고 부르는 행상이었습니다. 이 동네 저 동네 돌면서 손짓발짓으로 물건을 팔았어요. 그전에는 없었던 ‘벤데’라는 새로운 직업을 한국 사람들이 만들어낸 거지요.”
‘벤데’는 스페인어로 ‘팔다’라는 의미의 동사인 ‘Vender’에서 나온 말이다. 초창기엔 물건을 어깨에 메거나 등에 지고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팔았는데, 이상한 모습의 행상을 처음 보고는 현지인들이 ‘라쿠카라차’라고 불렀단다. 우리가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웠던 멕시코 민요에도 나오는 라쿠카라차는 스페인 말로 ‘바퀴벌레’라는 뜻이다. 키도 작달막한 동양 사람들이 등짐을 지고 물건을 팔러 다니는 모습이 이곳 사람들 눈에는 바퀴벌레처럼 보였을 게다.
오 사장: “한인 동포들이 벤데를 하면서 팔기 시작한 물건은 옷이었어요.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하니까 한국에서 입으려고 가져온 옷들을 내다 팔기 시작한 거지요. 예나 지금이나 파라과이 사람들은 착하고 순진합니다. 대개는 친절하게 집 안으로 맞아들이더라고요. ‘테레레’라고 하는 시원한 약초차를 내오는 집도 많았어요. 물건이 워낙 귀한 나라여서 들고 간 옷들도 잘 팔렸고요.”
“이 사람의 인간미에 푹 빠진 거죠”박 회장은 1954년 3월 대구 대명동에서 태어났다. 영남대 경영학과(74학번)에 입학한 박 회장은 1학년 한 학기를 마친 뒤 군에 입대하게 된다. 군 복무를 마칠 무렵 온 가족이 파라과이로 이민을 간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먼저 남미 이민을 떠난 박 회장의 큰형님이 아순시온에서 작은 호텔을 경영하면서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에게 의지하는 것을 싫어했던 박 회장은 아순시온에 도착한 뒤 홀로 독립해서 벤데 사업을 시작했다.
오 사장은 1956년 9월 대구 신암동에서 태어났다. 신명여고를 졸업할 때까지 대구를 벗어나 산 적이 없었다. 오 사장의 꿈은 간호사가 되는 것이었다. 간호대학 준비를 하던 중 우연히 세무 공무원 채용시험 공고를 보고는 실력 점검을 해본다는 생각으로 응시했는데 덜컥 합격하고 말았다. 1976년 가을부터 서대구 세무서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보수적이었던 부모님은 오 사장이 공무원 생활을 계속하는 것보다는 빨리 좋은 남편을 만나 현모양처로 살기를 원했다.
오 사장: “여기저기 선을 보러 다녔어요. 하루는 이웃 아주머니가 괜찮은 미국 동포가 있는데 만나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말을 포함해서 영어와 스페인어, 일본어 등 4개 국어를 능통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막상 선 자리에 나가보니까 미국이 아니라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파라과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사람이 아주 진솔해 보였어요. 어떻게 살면 저런 얼굴을 가지게 될까 궁금할 정도였어요. 이 사람의 인간미에 푹 빠진 거지요.”
결혼 뒤 파라과이로 먼저 온 새신랑의 마음은 늘 한국에 있는 아리따운 신부에게 가 있었다. 그러나 벤데를 하고 있는 형편에 신부를 무작정 불러들일 수도 없었다. 답답한 속사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는 둘째누님밖에 없었다. 누님에게 자신의 심정을 절절히 토로하는 편지를 썼다. 둘째누님은 올케를 자기 집으로 조용히 불렀다. 그러고는 편지를 보여주면서 박 회장의 상황을 솔직하게 전했다. 동생이 행상을 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으며, 비행기표 살 돈을 마련하지 못해 아내를 부르지 못한다는 사실도 그대로 전했다.
오 사장: “처음 편지를 읽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더라고요. 제 남편이 등짐장수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죽으나 사나 남편한테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날로 결혼 예물로 받은 다이아 반지와 시계, 목걸이 등을 다 처분해 시누이에게 드렸어요. 큰시누이와 둘째시누이 두 분이 그 돈을 가지고 대구 서문시장에 가서는 브래지어와 팬티, 블라우스 등 여성 속옷을 산더미처럼 사오셨더라고요. 그걸로 한땀 한땀 누벼서 이불속을 만드셨어요. 그 위에 소청과 인조견으로 이불 겉감을 두르니 감쪽같이 이불 두 채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냥 들고 가면 세금을 물어야 하니까 이민 가는 사람의 이불 짐으로 꾸민 겁니다. 신랑을 찾아가는 저에게 벤데에서 팔 물건을 들려 보내기로 한 거지요.”
그러나 어디를 가든 다 적응하면서 살게 마련이다. 집에서만 갇혀 지내던 오 사장은 얼마 뒤 신랑의 벤데 행상을 따라나서기 시작했다. 하루이틀 따라다녀보니 나름 재미가 있었다. 벤데는 기본적으로 배를 남기는 장사였다. 차츰 파라과이 물정에 눈이 뜨였다. 어느 날 부부는 문득 자신이 직접 봉제공장을 차려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1600장, 3천 장, 6천 장…박 회장: “우리가 물건을 받아오던 봉제공장의 주인을 만났습니다. 다짜고짜 공장을 차리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했지요. 나이 지긋한 노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동안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라고요. 그러더니 한번 해보라며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파라과이 법무장관과 노동장관을 지낸 사울 곤살레스라는 분이었어요. 당시 현직 장관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만난 거지요. 훗날 그분의 아들인 루이스 곤살레스는 상원의장을 거쳐 대통령까지 지냈지요. 당시 사울 장관이 아순시온 버스터미널 근처에 별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 별장의 마구간 한쪽을 비워주며 공장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재봉사 6명과 재봉틀 20대도 함께 보내주더라고요.”
1984년 10월1일 마침내 청바지 봉제공장 문을 열었다. 사울이 보내준 직원 6명에 추가로 6명의 직원을 더 뽑아 12명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공장 가동 첫 달에 한 달 내내 만든 청바지가 1600장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직원들의 기술이 숙련되면서 2개월째엔 3천 장, 3개월째엔 6천 장으로 늘어났다. 박 회장은 금전 여유가 생기는 대로 직원을 뽑고 재봉틀 수를 늘렸다. 불과 1년 만에 직원 190명에 재봉틀 200여 대를 갖추게 되었다. 한 달에 5만 장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였다. 매달 1500만과라니 정도의 순수익이 떨어졌다. 당시 아순시온 시내의 괜찮은 집 한 채 가격이 500만과라니 정도 할 때였다.
세계경제의 큰손은 유대인들이다. 남미시장에도 ‘유대 자본’이 깊숙이 손길을 뻗치고 있다. 처음 파라과이 원단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도 유대인이었다. 유대인 상인은 ‘갑’이었고, 봉제공장 사장은 ‘을’이었다. 유대인은 국제 무대에서 독종으로 통한다. 박 회장은 다른 사람들이 감히 거스르지 못하는 유대인 원단 공급업자와의 정면 승부를 택한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다.
“유대인 상인들은 클레임을 제기해도 묵살해버리는 일이 많았어요. 한번은 비에 젖어 구불구불해진 원단을 보내왔더라고요. 곧바로 클레임을 제기했지요. 그런데 두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가 없는 거예요. 자꾸 따졌더니 브라질 공장에 가서 직접 따지라고 하더군요. 하는 수 없이 브라질에 있는 ‘알파르가타’(Alpargata)라는 큰 원단회사까지 찾아갔어요. 알파르가타 직원들이 우리 공장까지 와서 현장 조사를 한 결과 자기 회사의 잘못을 인정하더라고요. 당시 1만달러 정도의 손해배상금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슬쩍 제안을 하더라고요. 중간의 유대인 업자를 통하지 않고 직거래를 하자는 거였어요. 유대인 상인들의 보복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박 회장은 이후 파라과이 원단시장을 놓고 유대인 업자를 상대로 본격적인 승부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유대인 업자보다 모든 일에서 한발 앞섰다. 알파르가타가 선불을 주는 박 회장에게 우선적으로 양질의 물건을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승부는 5년 만에 끝을 내게 된다. 알파르가타에서 유대인 업자를 정리해버린 것이다. 1992년 박 회장은 마침내 유대인 업자를 제치고 알파르가타의 공식 판매권을 손에 쥐게 된다. 1997년에는 알파르가타의 경쟁사인 비쿠냐(Vicunha)그룹의 원단 판매권까지 확보하게 된다. 파라과이에 있는 100여 개 봉제공장에 원단을 공급하는 큰손으로 부상하는 순간이었다.
“파라과이 봉제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물량의 절반은 제 손을 거쳐 나갔습니다. 연간 60만~70만m의 원단을 팔았습니다. 한때 원단으로만 연간 2500만달러 정도의 매출을 올렸지요. 10여 년 동안 브라질에서 원단을 수입하다가 2000년대 중반부터는 중국에서 물건을 들여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삶의 경지를 새로 개척할까인간의 욕망은 진화한다. 생존과 번식의 문제를 안정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생리적 욕망에서부터 존경 욕망, 자아실현 욕망 등 보다 고차원적인 단계로 나아간다. 박 회장 부부는 이민 초기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짐장수 ‘벤데’로 나서야 했다. 이후 동물적 감각의 사업수완과 불굴의 집념으로 봉제공장과 세탁공장, 원단사업 등을 연달아 성공시킨 뒤 마침내 아순시온 월드트레이드센터 빌딩주의 자리에 오르는 눈부신 진화를 거듭했다. 앞으로 두 사람은 월드트레이드 센터에 또 어떤 삶의 경지를 개척할까. 박 회장 부부는 이제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새로운 삶을 구상하느라 가슴 부푼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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