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문제 해결하려 기밀 유출?

지난해 일본 국회 통과한 특정비밀보호법안, 방위성 내 정보관리만 정비하면 될 것을…

탁기형

지난해 말 일본 국회에서 특정비밀보호법안이 통과됐다. 앞으로 1년 이내에 시행될 예정이다. 이 법은 일본의 안전 보장과 관련한 정보 중 비밀 지정이 필요한 내용을 ‘특정비밀’로 지정해 취급자의 적성 평가 및 정보 유출시의 처벌 내용을 정한 것이다.

그런데 비밀 지정 범위가 애매한 탓에 어떤 정보이든 ‘특정비밀’로 취급할 수 있는 위험성이 크다. 또 비밀 유출만이 아니라 비밀을 입수하려 한 경우도 처벌 대상이 돼 언론의 취재나 학자들의 연구를 가로막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언론을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자민당은 지난 15년간 일어난 중대한 비밀 유출 사건을 예로 들며 이런 사건을 방지하려면 비밀보호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건 발생 건수란 게 고작 15년간 5건이다. 거기다 사건의 경위를 살펴보면 과연 이런 요란한 법이 꼭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

일본 정부가 비밀보호법에 해당하는 예로 든 2008년 에 실린 중국의 잠수함 화재 사진 유출 사건을 보자. 이 사진은 미군이 찍어서 일본 방위성에 제공한 것이었다. 사진이 에 유출된 경위는 이렇다.

의 기자가 유부남임을 숨기고 어느 여성과 교제를 했다. 그런데 그녀가 사실을 알게 되자 기자와 연락이 끊겼다. 그녀는 친구인 자위대원한테 상담을 했다. 자위대원은 “좋은 정보가 있으니 만나자”는 미끼로 기자를 유인하는 데 성공했다. 대화 자리에 나타난 기자는 계속 “정보가 뭐냐. 빨리 보이라”며 독촉했다. 이대로면 대화를 못하겠다고 생각한 자위대원은 휴대전화에 저장해놓은 잠수함 사진을 기자한테 넘겼다.

5건 중 또 하나는 이지스함 시스템의 정보 유출 문제다. 이 또한 사정이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마사지 가게에서 일하는 중국 여성이 출입국법 위반으로 체포됐다. 그가 살던 집에서 압수된 컴퓨터에는 이지스함 관련 데이터가 들어 있었다. 이 사건은 ‘중국 미인계 사건’으로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그런데 수사 결과 중국인 여성은 공작원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중국인 여성은 푸젠성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에 밀입국했다. 다리 마사지점에서 숙식을 하면서 돈을 벌어 밀입국 알선 브로커에게 진 빚을 갚으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그녀는 중국집 사장의 소개로 자위대원을 만났다. 자위대원이 여자를 소개해달라고 하자 중국집 사장이 고객 중 중국인 여성을 소개한 것이다. 함정 안에서만 생활하다 여자를 만날 일이 없던 자위대원은 그녀를 보자마자 동거를 시작했고 여자는 곧 임신을 했다.

이지스함 데이터는 왜 그 집에 있었는가. 이지스함 관련 데이터는 동거 중이던 자위대원의 컴퓨터에서 나왔다. 자위대원들은 특별한 오락도 없이 늘 함정 안에서 생활하기에 야동을 즐겨 본다고 한다. 대원들끼리 야동 데이터를 자주 교환하는데 그 과정에서 이지스함 정보를 관리하는 고위 자위대원의 데이터가 복사된 것이다.

사건이 터지자 중국인 여성은 바로 중국으로 강제 송환됐다. 그녀가 낳은 아이는 일본의 한 시설에서 자라고 있다. 중국인 여성은 학교를 거의 다니지 못해 영어는커녕 중국 표준어인 베이징어도 몰랐다. 이지스함 데이터를 이해할 수 있었을지 의문스럽다.

두 사건은 방위성 내 정보관리를 정비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문제들이다. 실제 두 사건 이후 방위성의 정보관리 체계가 바뀌었다. 지금은 휴대전화를 작업장에 들고 가는 것도 금지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특정비밀보호법안은 국가 정보의 투명성을 가로막기 위한 아베신조 정부의 구실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도쿄=김향청 재일동포 3세·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