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일본 경제는 침체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거의 매년 새 얼굴로 바뀌는 일본 총리들은 늘 경제 회복을 외치지만 그다지 가망이 없어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가 지난해 7월 경제 회복을 위해 일본 정부에 충고한 게 있다. “여성 취업률을 끌어올려라.” 그는 일본이 주요 7개국(G7) 수준까지 여성 취업률을 높이면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25%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성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선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있다. 어린이집, 일본에서 부르는 말로 보육원(保育園) 부족 문제다. 한국에서도 어린이집 부족이 최근 현안으로 떠올랐지만 일본에선 10년 넘게 만성화돼 있는 골칫거리다.
2011년 발생한 원전사고 이후 원전 반대 운동이 활발했는데, 전후 일본에서 엄마들이 시위하느라 거리에 나온 건 처음이란다. 그런데 올해 일본 엄마들이 다시 거리에 나섰다. 바로 보육원 문제 때문이다. 정부에서 인가한 보육원에 들어가지 못하는 ‘대기 아동’만 현재 4만6천 명이 넘는다.
2월 중순 도쿄도 스기나미구에서 보육원 입원을 신청했다가 실패한 엄마들이 시위를 벌였고, 이 시위는 전국 뉴스로 보도됐다. 스기나미구는 원래 보육원 경쟁률이 2배 정도였는데 올해는 3배나 되었다. 스기나미구는 아이들을 키우는 환경이 좋은 주택지가 많고 또 아동복지가 충실한 곳인데다 ‘대기 아동’이 의외로 적은 구역으로 알려져 유입 인구가 많은 곳이다.
나도 스기나미구에 사는데 지난해 9월에 낳은 쌍둥이의 입원 신청을 했다. 올 4월에 입원하려면 지난해 11월 초까지 심사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신청 내용이 복잡했다. 심사는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 점수로 합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8시간 풀타임으로 맞벌이하는 부부는 40점을 받는데, 점수가 이에 못 미치면 아예 인가 보육원 자리는 포기해야 한다. 또 40점이라도 하늘의 뜻에 맡길 수밖에 없다.
서류에 보육원이 다르더라도 입원시키겠는가 묻는 난이 있었다. 날마다 두 명의 애를 다른 보육원에 통원시켜야 한다는 말인데, 어쩔 수 없이 ‘예’라고 했다. 급한 대로 아이들을 따로 보냈다가 나중에 보육원을 바꿔달라는 신청을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청 담당 직원 말이, 도중에 보육원을 바꾸는 일은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면 대체 어떻게 하라고. 한 명을 인가 보육원에 보내고 또 한 명은 비인가 보육원 등에 보냈다가 계속 인가 보육원에 신청을 하란다. 비인가 보육원에 들어가면 다음 심사 때 유리하단다. 인가 보육원 심사에 떨어졌다고 아이를 집에서 기르면 인가 보육원 입원은 단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절망적이게도, 직장 동료나 친구들 중에 아이가 바로 인가 보육원에 들어간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들 6개월 정도 비인가 보육원이나 탁아소에 보내며 인가 보육원에서 자리를 구한 뒤 옮겨갔다.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는 비인가 보육원은 비용만 한 달에 8만엔 정도 드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국회에서도 여러 차례 보육원 부족 문제가 언급됐지만 해결까지는 요원해 보인다. 아베 신조 총리의 측근 의원들이 보육원 확충에 소극적인 탓이다. 지난 3월 말 자민당의 인구감소사회대책특별위원회의 회의에서 중의원 의원인 하기우다 고이치 총재특별보좌가 “0살 아기(한국 나이로 1살 아기)는 어머니가 집에서 키우는 게 바람직하다. 육아휴가 등을 이용하면 된다”고 말했을 정도다.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내면서까지 일을 해야 할 절박한 상황에 있는 사람 중에는 육아휴가가 보장되지 않는 비정규직이 많은데도 이런 한가한 말씀이나 하고 있다니. 지난해 10월 세계경제포럼 ‘성격차지수’에 따르면 일본의 여성 취업률은 조사 대상 135개국 중 101위, 선진국 중에서는 최하위다.
참, 우리 집 쌍둥이들은 어떻게 됐냐고요? 4월부터 둘 다 같은 인가 보육원에 다니게 됐다. ‘대운’을 안게 되어 몇 년 동안은 복권을 사도 소용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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