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총선 선거운동이 막 시작된 지난 3월29일 영국에서는 한 지역구의 하원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잉글랜드 북부 웨스트요크셔에 속한 브래드퍼드시 서부 선거구였다. 본래 이 지역 하원의원은 노동당 소속의 마샤 싱이었다. 그런데 그가 건강상의 이유로 2월 말 돌연 의원직을 사임해 이날 보궐선거가 실시된 것이다.
노동당보다 두배 넘는 득표율 기록
이번 선거에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브래드퍼드 서부 선거구는 1970년대 초반 이후 40년 넘게 노동당의 아성이었다. 그간 한 번도 다른 당 후보가 당선된 일이 없다. 2010년 총선에서도 싱 당선자의 득표율이 45.3%에 이르렀다.
노동당은 시의원인 임란 후사인을 공천했다. 전직 싱 의원처럼 후사인 후보도 이슬람권 출신 이주민이다. 브래드퍼드 유권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무슬림 공동체를 의식한 공천이었다. 노동당은 승리를 자신했고, 에드 밀리밴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개표 이후 곧바로 현지를 방문할 계획까지 세워놨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새벽에 발표된 당선자는 후사인 후보가 아니라 ‘리스펙트’(Respect)라는 소규모 좌파정당 후보인 조지 갤러웨이였다. 더구나 그의 득표율이 무려 55.9%였다. 후사인 후보는 25.0%를 얻어 2위를 기록했다. 현재 집권 연정을 이루고 있는 두 거대 정당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은 각각 8.4%와 4.6%를 받아 ‘소수 정당’ 취급을 받았다.
노동당 지도부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언론은 저마다 이번 보궐선거가 ‘별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내느라 분주했다. 브래드퍼드 보궐선거 기사가 주말 신문 지면을 도배했다. 갑자기 영국 전체가, 별다른 관심거리도 아니었던 잉글랜드 북부 한 지역구의 보궐선거로 인해 들썩이기 시작했다.
리스펙트는 노동당의 ‘제3의 길’ 노선에 맞서 좌파 정치를 재구성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2004년에 출범한 정당이다. 1년 전 영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라크전쟁 반대운동이 이 당의 창당 에너지였다. 반전운동의 두 축, 영국 내 무슬림 공동체와 급진 사회주의 세력이 고스란히 창당의 동력이 되었다. ‘리스펙트’라는 당명은 ‘존중(Respect), 평등(Equality), 사회주의(Socialism), 평화(Peace), 환경주의(Environmentalism), 지역사회(Community), 노동조합주의(Trade Unionism)’의 첫 글자를 조합한 것이다.
현재 리스펙트의 대표를 맡고 있는 젊은 여성 정치인 살마 야쿱은 이 당의 성격을 온몸으로 상징한다. 야쿱은 늘 히잡을 두르고 있는 전형적인 이슬람권 이주여성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른바 ‘세속적 좌파’의 신념을 견지하고 있다. 히잡을 착용한 야쿱과 전형적 서구식 정장 차림의 노동당 지도부 중에서 유럽 좌파의 신념에 좀더 철저한 것은 오히려 야쿱 쪽이다.
이런 야쿱과 함께 창당 당시부터 리스펙트의 간판 구실을 한 인물이 이번 보궐선거 당선자인 갤러웨이다. 1954년생으로 스코틀랜드 출신인 갤러웨이는 원래 노동당 하원의원이었다. 노동당 안에서도 수백 명 의원들 중 단지 한 사람이 아니라, 상당히 주목받는 인물이었다. 불과 26살의 나이에 스코틀랜드 노동당 의장이 됐고, 처음 하원의원이 된 것은 33살 때였다. 능수능란한 연설과 토론 능력이 갤러웨이의 정치적 성공에 날개 구실을 했다.
짓밟힌 반전 여론, 갤러웨이 지지로 폭발
그런 그가 노동당과 갈라서게 된 것은 2003년 이라크전쟁 때문이었다. 오래전부터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에 앞장서온 갤러웨이는 토니 블레어 정부의 이라크 침략에 가장 치열하게 맞서 싸운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노동당 의원인데도 노동당 정부를 야당보다 더 신랄하게 공격한 것이다. 결국 블레어 지도부는 그를 당에서 쫓아내버렸다. 노동당에서 출당당한 갤러웨이는 리스펙트 창당에 합류해 이 당의 원내 교두보 역할을 했다. 그리고 2005년 총선에서 보란 듯이 다시 당선돼 하원에서 이라크전쟁 반대운동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하지만 갤러웨이에게나 리스펙트에게나 곧 시련이 닥쳐왔다. 2007년 갤러웨이·야쿱 등 당 지도부와 ‘당 내 당’ 역할을 하던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세력 사이에 분란이 일어나 결국 분당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분당 이후 당력이 많이 소진된 리스펙트는 2010년 총선에서 쓰디쓴 결과를 맛봐야 했다. 갤러웨이는 낙선했고, 당의 또 다른 기대주 야쿱도 4천 표 차이로 아깝게 고배를 마셨다. 리스펙트는 원외 정당 신세가 됐다.
리스펙트의 상황이 이러했기에 아무도 브래드퍼드 보궐선거에서 갤러웨이가 승리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승리는커녕 관심 후보조차 아니었다. 이런 무시와 무관심 속에서 갤러웨이 후보 진영은 기존 노동당 지지층을 아래로부터 파고드는 치밀한 선거운동을 펼쳤다. 젊은 층이 첫 번째 공략 대상이었다. 토니 블레어를 이라크전쟁 범죄자로 처벌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즉각 철군하자는 등의 과감한 선거 공약이 젊은이들에게 큰 호소력을 발휘했다. 갤러웨이 후보 선거사무실은 점차 청년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갤러웨이 후보 쪽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했다.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에서는 선거운동 기간에도 이미 갤러웨이 후보가 다른 후보들을 압도하는 양상을 보였다. 갤러웨이의 페이스북 친구들만 8만3천 명이었다. 이런 전략이 실제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노동당 홍보 전문가들도 이번 보궐선거는 소셜미디어가 승패를 가른 첫 번째 선거였다고 지적한다.
노동당이 강조하는 갤러웨이 후보 승리의 또 다른 원동력은 이주민 공동체다. 노동당 그림자 내각에서 내무장관을 맡고 있는 이베트 쿠퍼 의원은 이번 보궐선거가 ‘지역적 요소들’에 의해 판가름 났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아시아계 이주민 공동체의 청년·여성들을 확실히 조직하지 못하고 리스펙트에 빼앗긴 게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갤러웨이의 압승이 단지 친무슬림 선거 전술의 결과일 뿐이며, 따라서 노동당의 미래에는 별다른 고려 사항이 되지 못한다는 결론을 전제한 것이다.
과연 그럴까? 우선 노동당 안에도 이견이 있다. 노동당 내 좌파 하원의원 모임인 ‘사회주의캠페인그룹’ 소속 다이앤 애벗 의원은 보궐선거 결과가 이른바 ‘정체성의 정치’로 설명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갤러웨이가 아무리 친아랍 인사라 하더라도 노동당 후보인 후사인은 혈통부터 파키스탄계다. ‘정체성의 정치’가 작동했다면, 후사인이 그토록 참패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애벗이 강조하는 것은 이라크전쟁 문제다. 반전 여론을 짓밟으며 침략에 동참한 노동당 지도부를 열성 지지층이 여전히 용서하지 않았으며, 그 분노가 갤러웨이 지지로 폭발했다는 얘기다.
금융위기 뒤 긴축재정에 대한 심판
이라크전쟁의 기억이 노동당의 발목을 잡았다는 데엔 다들 공감한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여전히 설명이 잘 안 된다. 갤러웨이에게 표를 던진 55.9%, 1만8천 명 중 노동당 지지표의 이탈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절반밖에 안 된다. 나머지 절반가량은 보수당·자유민주당을 지지하던 유권자다. 기성 3대 정당인 보수당·자유민주당·노동당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 성향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 영국 사회에서 어떻게 민심의 격변이 가능했던 것인가?
경제 담당 칼럼니스트 래리 엘리엇은 실패한 이라크전쟁보다 더 중요한 다른 ‘전선’의 실패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빈곤과의 전쟁 실패’가 그것이다. 브래드퍼드를 비롯한 북부 잉글랜드의 경제·사회 현실이 문제라는 것이다.
브래드퍼드는 영국에서 주민 가운데 청년층의 비중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다. 2020년이 되면 25살 이하가 총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게 될 전망이다. 그런데도 청년 실업률은 영국 전체의 2배에 달한다. 전통적 공업지대인 북부 잉글랜드에서는 마거릿 대처 정부 이후 신자유주의 바람이 몰아닥쳐 제조업이 붕괴됐다. 이로 인해 이 지역은 장기 실업과 빈곤이 일상이 된 ‘버림받은 땅’이 됐다.
여기에서 다시 이런 의문이 든다. 잉글랜드 북부와 남부의 격차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이후 늘 그래왔고, 나 같은 영화를 통해 영국 밖 세상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새삼 이번 보궐선거에서 기성 정당 모두에 대한 심판으로 폭발한 것인가?
이를 이해하자면 시야를 영국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고든 브라운 노동당 정부는 5천억파운드(약 900조원)에 이르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대형 은행들을 살렸다. 하지만 그 여파로 영국 정부의 부채가 급증했다. 2010년 총선으로 들어선 보수-자유민주당 연립정부는 국가 채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초긴축 정책을 추진했다. 공공 지출을 대폭 삭감해 2015년까지 균형 재정을 달성하겠다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정부 지출 삭감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칼질을 당한 것은, 늘 그렇듯 복지 지출과 공공부문 일자리 줄이기였다. 정부의 대학 재정 지원이 줄고 등록금이 올랐다. 공공부문에서 30만 명 규모의 정리해고 계획이 공표됐고, 공무원 임금은 동결됐다. 프랑스식 거리 투쟁과는 인연이 없는 것 같던 영국 사회가 유례없이 들끓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 대학생들이 거리에 나섰고, 2011년 11월30일에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단행했다. 지난 2월까지도 런던의 세인트폴 성당 앞에서는 ‘점령’(Occupy) 시위가 계속됐다.
이런 2010년대 영국의 풍경에서 북부 잉글랜드는 예외가 아니었다. 오히려 현재 영국 사회 전체가 겪는 고통을 가장 먼저, 오랫동안 경험해온 곳이다. 브래드퍼드 보궐선거의 표심은 마찬가지 맥락에서 영국 전체의 민심을 가장 먼저 대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은행 구제의 대가로 민생을 파탄시키는 보수당과 자유민주당뿐만 아니라 블레어-브라운 정권 시기의 ‘원죄’ 때문에 이를 방조하는 노동당 모두 심판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민심. 후보자 명단에 노동당이 버린 노동당의 가치를 대변하는 후보(갤러웨이)가 등장하자, 민심은 ‘표심’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봉기’
갤러웨이 당선자는 이를 ‘브래드퍼드의 봄’이라 명명했다. 분명 ‘아랍의 봄’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선거의 외양을 띤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봉기’라는 것이다. 봉기까지는 몰라도 ‘모종의 격동’이 시작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 끝이 어떨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혼돈의 시작’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역사의 열림’인 그 어떤 일이 지금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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