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은 정략결혼으로 남북, 아니 스페인 동서남북을 통일시켰다. 네 나라로 갈라져 있던 상황에서 가장 큰 두 왕가의 후계자인 남녀가 1469년 결혼하니 이는 통일을 향한 첫걸음이었고, 800년 남짓 영화를 뽐내던 이슬람 왕국 그라나다까지 통합하니 이는 통일의 완성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왕녀들의 팔자는 권력 혹은 운명의 장난 앞에 더욱 무력할 따름이라, 이복 오빠 헨리 4세가 카스티야의 왕위에 오르자 세 살 먹은 이사벨라에게는 공포의 유년기가 시작되었다. 아들이 없던 헨리 왕과 반대파의 대립 사이에서 그녀의 남동생 알폰소가 독살당하고, 그 틈에서 이사벨라 공주가 헨리 왕의 후계자라는 운명의 협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다음해 적대국이던 아라곤 왕국의 후계자 페르디난드와 혼인을 맺자, 기다렸다는 듯 헨리 오빠는 후계자를 자기 딸로 바꿔버렸다. 하지만 5년 뒤 그가 세상을 뜨고, 이후 5년 이사벨라는 조카 사위와의 싸움 끝에 다시 카스티야의 군주가 되고 남편 페르디난드는 아라곤의 군주가 된다. 더 이상 완벽한 결합이 어디 있을까. 귀족들의 힘을 잘라내고 왕권을 강화시키는 대대적인 개혁이 가능했다.
이들 부부는 신앙까지 부창부수라, 다음해인 1480년부터 대대적인 종교재판을 시작해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며 신비주의에 빠진 이단을 샅샅이 색출하고 가톨릭인 척하며 몰래 자기들 신앙을 계속하는 유대교도나 이슬람교도를 응징하기 시작하니, 당시 교황이신 식스투스는 이런 심판을 정당화하는 교회칙령을 발표하시고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는 ‘님들이 곧 가톨릭’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으시다, 서기 2000년 요한 바오로 2세가 발표하신 과거사 회개 및 반성 목록에서 무척 민망한 인물 중 한 분으로 찍히셨다.
1492년 이들 부부는 드디어 이슬람 왕국 그라나다를 함락시키고 유대인들까지 시원하게 쓸어버리니 “계란을 세워보라”는 벤처투자가다운 질문을 굳이 생략한 건 아니었어도 “여왕 폐하의 신대륙”이라며 지도를 들고 온 젊은이에게, 더 이상 관대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특히 “나의 백성인 인디언들도 하느님의 귀한 창조물이니 본국의 백성과 마찬가지 정의와 공정함으로 대하라”고 콜럼버스에게도 당부를 했다.
광활하게 열린 이사벨라 여왕의 마음은 그녀의 문장에 새겨진 ‘ne plus ultra’(더 이상은 없다)에서도 드러난다. 1504년 쉰세 살에 승하하실 때까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을 만큼 모든 일을 달성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정략결혼은 인류가 찾은 최고의 평화정책일 수 있겠다 싶다. 예컨대 70년대 남북 왕가의 후계자 둘이 결합되었다 치면, 한반도에 떨어진 노벨평화상은 더 일찍 더 젊은 남녀에게 돌아갔을 거다. 이사벨라 여왕을 떠올리며, 아니 술자리에서 들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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