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남서쪽으로 자꾸 가 대서양 건너고 마주친 아메리카 대륙 남단에 제 이름 붙인 해협을 통과하고 태평양도 넘어, 즉 지구 한 바퀴를 거의 돌아 닿은 섬나라 왕을 감언이설로 꼬인 마젤란은 원주민의 영원한 삶까지 걱정해서 몽땅 천주교 신자로 만들고는, 노잣돈 넉넉히 쥐어준 필리페 2세 스페인 국왕의 이름을 따 그 동네를 필리핀이라 칭하곤 곧 세상을 떴다. 이 무렵 천주교 왕국 스페인은 주님의 은총 덕분인지 세계에서 가장 힘이 셌다. 7살짜리 용감하고 호기심 많은 데레사는 빨리 순교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피 흘리며 맞장 뜰 무슬림을 찾아 남동생 손잡고 동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삼촌한테 붙들려 크게 혼났다.
1515년 마드리드 북서쪽 아빌라에서 귀족 출신 어머니와 천주교로 개종한 부자 유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데레사는 12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성모님을 친어머니로 모시고 살고자 수녀원에 갔으나 병이 나 곧 돌아왔다. 사랑에도 빠졌으나 아버지의 반대에다 금욕적 가르침을 쏟아내는 책들을 보곤 “뼈를 깎는 아픔으로 세속과의 결별”을 다짐하고 다시 수녀가 되기로 작정하지만, 몸과 맘이 만신창이가 되고 혼수상태에 빠지는 아마도 무병을 크게 앓으며 주검과 다름없는 3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당시 귀족 딸들은 시집가기 싫으면 하녀 끌고 수녀원에 가는 건 예삿일이라, 그녀 또한 수녀마마 노릇을 할 예정이었으나 당시의 많은 신비가처럼 예수의 고통에 동참하는 영적인 시험과 회개를 반복하는 유난 떠는 신앙체험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슬픔을 달래느라 어거스틴 성인의 <고백록>에 빠져든 그녀, 문득 천년도 더 전에 살았던 이 남자가 자신과 똑같은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는 걸 알고 감격과 회개를 또다시 반복하며 자신의 분방한 기질을 다스리고 진짜 금욕적인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20년 넘는 세월 회개를 반복하며 스스로에게 “너나 잘하세요”를 다짐하던 그녀, 드디어 확실한 은혜를 입고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아내 점차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완전한 덕에 이르는 비결>까지 책으로 펴낸다. 20세기의 성녀, “저는 주님께서 쓰시는 몽당연필”이라고 얘기한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를 비롯해 그녀는 한국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사랑받는 아빌라의 성녀 원조 데레사다.
이 책에서 그녀는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 것은 가장 끔직한 질병이니, 여성들에게 자기 삶을 더 이상 남성이나 가족에게 의탁하지 말라고 호소한다. 결혼하고 잘 지내려고 남편에게 모든 걸 맞추다 보면 예속된 삶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제발 거기서 “해방되라”고 촉구하는 한편, 교회의 남성 지도자들에게도 “너나 잘하세요”를 외치며 부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영적으로 가르치려 들지 말라고 단단히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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