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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살 인생 레니 리펜슈탈

등록 2006-02-24 00:00 수정 2020-05-03 04:24

[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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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을 넘어 공포처럼 다가오는 ‘노령화’ 사회, 아니 사회 말고 노령화 당신, 어떤가? 불혹에서 지천명 넘어 이순과 고희 지나고, 할 일도 별로 없는데 여든여덟 미수, 아흔아홉 백수 척척 지나 상수라는 백살도 다 살아버려 더 이상 붙일 이름도 안 남았는데, 당신 아직도 끈질기게 목숨이 붙어 있다면?

1902년 태어나서 102살에 세상을 뜬 레니 리펜슈탈을 보면 참, 100년도 별거 아니겠다 싶다. 현대예술 여기저기서 새싹이 돋던 시절부터 유복한 환경에서 뭐든 다 하며 성장한 다재다능한 그녀는 그림과 춤, 영화와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 눈부신 족적을 남겼다. 무릎 부상으로 ‘영혼을 해방시키는’ 무용가의 길을 접었던 ‘독일의 이사도라 덩컨’ 레니는 손수 대본을 쓰고 춤 잘 추는 여주인공으로 출연하며 몸소 감독한 영화 <푸른 빛>으로 세상의 갈채를 한 몸에 받았다. 마침 레니의 재능과 미모는 위대한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의 눈을 매혹시켜, 1934년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전당대회를 기록하고 편집한 ‘나치뉘우스’ 최고의 걸작 <의지의 승리>를 통해 그녀는 자신의 전설적 재능뿐 아니라 나치의 힘까지 온 세계에 과시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기록영화 <민족의 제전>으로 스포츠와 미디어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결합을 예고하며 그녀는 제3제국 나치의 최고 예술가로 꼽히지만, 종전 뒤에는 전범 혐의로 더 이상 영화작업에 손을 댈 수 없게 된다. 나치 당원이 되는 것만은 끝까지 거부했노라고 법정에서 변명했으나, 히틀러의 군대가 파리를 침공했을 때, “게르만 민족을 깨어 일으킨 위대한 지도자”에게 그녀는 깊은 감사를 느낀다며 전보도 쳤다.

어떤 정치적인 계산도 없이 그저 아름다움, 특히 벌거벗은 인체에 감복한 탓에 영상미의 궁극을 추구했을 뿐이라는 레니 리펜슈탈 할머니는 이순 넘어 아프리카 수단에 가선 조각품 같은 누바족의 몸매에 숨이 막혀 10년 남짓 그 율동을 필름에 담고 두 권의 화보집으로 출간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98살의 나이로 헬리콥터를 타고 친구들을 방문하러 가던 길에 사고를 당해 하늘에서 떨어지고도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고희 넘길 무렵 요통에 좋단 소리를 듣고 시작한 다이빙으로 바다 깊은 곳에 들어갔다 그 장관에 매혹돼 70대 후반에는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딴 뒤, 이번에는 사진작가로 이름을 날리며 10여 년 동안 물속을 촬영한 필름들을 모아 100회 생일을 기념하는 화보로 출간했다.

2002년 레니 할머니의 상수, 즉 100살을 기념해 독일 정부는 “치매 노인이나 다름없는 그녀”를 전범 목록에서 빼주기로 결정했으나, 위대한 그녀의 필름에 엑스트라로 동원된 뒤 곧바로 가스실로 보내졌다 간신히 살아남은 집시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통탄의 성명서를 발표했고, 이에 당국은 “더 이상 경거망동할 수 없는 나이”라며 그녀를 한사코 변호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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