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2005년 줄기세포는 위조 로또였다. 일희일비하던 잔치는 끝났고, 몰래카메라 앞에서의 소동은 마무리 중이다. 하지만 줄기세포가 아니어도 생명의 기본단위 세포는 그 자체로 놀라운 생명의 복음서다. 생명의 단위인 세포, 요술 지팡이처럼 생긴 바늘로 그걸 콕콕 치며 황금을 길어내겠다고 연기를 펼친 황 마술사의 일거수일투족에 더 이상 가슴 졸이지 말고, 슬픈 군중이여, 부디 더 기쁜 소식을 들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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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적자생존’의 법칙을 따른다며 생명의 진화를 얘기할 적에, 삼엽충과 공룡의 화석 등 죽은 동물 뼈다귀들을 늘어놓고 강자가 약자를 공격하고 정복하는 ‘먹이사슬’이며 ‘힘의 법칙’을 얘기할 적에, 메탄가스로 뒤덮인 돌덩어리 지구 곳곳에 푸른 이끼가 돋아나며 40억 년 동안 지구어머니가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설파한 과학자가 있었다.
1970년대 린 마굴리스는 지구별만큼 정교하고 신비한 시스템인 세포를 들여다보며, 이 둘은 장구한 세월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진화한 존재라는 사연을 발표했다. 결론적으로 지구어머니의 모든 자식은 늘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한 ‘공동살림체’임을 밝히고, 놀라운 존재 ‘지구’의 애칭으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라는 이름을 헌정했다. 한편, 세포들은 수십억 년 생명 진화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니 가장 놀라운 사연인즉, 이들을 더 높은 차원의 생명활동으로 이끈 진화의 동인은 공격과 정복을 일삼는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이 아니고, 세포 내 기관들이 각자의 살림을 하다 더 큰 일, 진화의 도약을 위해 공동살림, 즉 공생을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녀의 이야기에 정통 과학자들은 “가이아는 암컷 들개”라며 길들여지지 않는 그녀의 야생적 학문 태도를 조롱했고, 박사 논문으로 제출한 ‘세포 내 공생설’에 대해선 입을 다문 채 반대 의견조차 아까워했다. 그러나 20여 년 세월이 흐르며 ‘세포 내 공생’은 고도로 발달한 생명의 전략이며 자연의 질서임이 확인돼 대학 교과서에 자리잡았고, 이에 대해 마굴리스는 “남자들이 물리적 힘의 법칙으로 수백만 년의 진화를 이해하고 설명한 데 비해, 나는 수십억 년에 걸친 생화학적 조화와 절묘한 변화를 겪은 생명체의 공생에 주목했다”고 활짝 웃었다.
‘가이아설’과 ‘세포 내 공생설’ 등 파격적인 진실로 논란을 일으키고 대중들에게 과학의 생각거리를 던져주던 그녀는 <코스모스>와 <콘택트> 등의 과학 저술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천문학자인 첫 남편 칼 세이건과 함께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을 때부터 과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토론하며 열심히 연구했다. 또 아이 넷을 낳아 기르며 연구활동을 이어가는 동안, 생명의 진화는 ‘로또’를 차지하는 조급한 꾀나 힘이 아니라 수십억 년을 거쳐 ‘공생의 길’을 가는 자연의 진리임을 가슴으로 이미 느끼고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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