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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누님 플로라 트리스탕

등록 2006-03-03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김재희의 여인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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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히티의 화가 폴 고갱의 외할머니 플로라 트리스탕은 페루 출생으로 스페인 무적함대의 장교였던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1803년 사생아로 태어났다. 한반도에선 열한 살 먹은 순조의 등극으로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그늘이 짙어질 무렵 프랑스에선 생시몽, 푸리에 등 공상적 사회주의 이론가들이 “미래는 여성의 것”이라고 우아하게 떠들었으나, 동시대를 맨몸으로 부딪치며 산 그녀는 “위선 혹은 비굴로 위장하지만 여성은 결국 종으로 태어난다”며 절박한 삶의 현장을 토로했다.

다섯 살 먹은 플로라의 부친이 죽자 상속권이 없는 모녀는 사회적 차별에 더해 경제적 곤란까지 사무친 세월을 보내야 했다. 열여덟 먹은 딸을 어머니는, 그 애가 다니던 공장 사장에게 떠밀어 시집보냈다. 그 앤 두 아이 낳고 지긋지긋한 남편과 살기 싫다며 남미로 여행 가는 부잣집 가이드로 따라나섰지만, 여성은 이혼청구권이 없던 시절이었다. 술꾼에 노름꾼에 손찌검을 일삼던 남편은 ‘불손한’ 마누라 잡아온답시고 지 딸을 납치해 성폭행까지 범했어도 곧 석방되고, 놈의 갈겨대는 총질에 플로라는 목숨을 잃을 뻔했다.

페루에서 손꼽히는 부자 귀족인 삼촌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받길 꿈꾸었으나, 사생아인 조카는 법적 권리가 없었다. 더욱이 “가장에게서 도망친 여자는 부랑자”일 뿐 사회에 발 디딜 곳이 없었다. 분노한 그녀는 후일 고갱의 엄마가 되는 딸에게 “세상과 맞서 싸워 더 이상 부랑자 취급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상속권은 인정받지 못했지만, 1년 남짓 페루에 체류하면서 기행문 연재하는 작가로 이름을 떨친 플로라 트리스탕은 ‘이주 여성’의 삶을 통해 이들이 부당한 대우와 협박을 받지 않도록 제재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최초의 외국인 인권운동가이기도 했다. 법적 보호 장치가 없던 나폴레옹 시절, 여성 가장이던 그녀가 작성한 이혼청원서와 남성 중심의 평등권 및 시민법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등의 저술은 프랑스 양성평등 사상과 여성운동의 거름이 된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1840년 펴낸 <런던기행>은 산업혁명의 여명이 깃들던 영국, “부의 불평등한 분배가 빚어낸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과 노동자, 특히 여성과 어린이들이 겪는 착취 상황 및 성적 학대를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1842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노동조합>은 극렬 페미니스트 입장에서(!) 인민의 해방을 선언했던, <공산당 선언>보다 한발 앞선 ‘위험한 문건’이기도 했다.

1844년 총격으로 스러진 그녀의 장례식 이후 뒤를 잇는 후배들이 속출했으나 1848년 노동운동은 파국을 맞고, 역사에서 사라졌던 그녀의 이름은 폴 고갱이 죽은 뒤 그의 외할머니로 간신히 복원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배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다시 조명된 그녀의 발자취는 체 게바라의 빛나는 누님으로 특히 남아메리카 곳곳에서 상당한 숭앙을 받고 있다.

* 김재희의 여인열전은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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