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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햇님이’ 그레이스 오말리

등록 2005-12-23 00:00 수정 2020-05-03 04:24

[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1980년대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가장 형편없는 나라 같았다. 1987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도 받고, 영국병까지 따라 하다니, 식민지의 타성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이웃한 강대국에게 800년 맺힌 설움이라니, 베트남이나 티베트 그리고 한반도 사람들도 이심전심이다. 그런데 20년도 흐르지 않은 2005년 12월,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아일랜드를 선정했다. 반면 아일랜드를 식민 지배한 영국은 29위에 머물렀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그레이스 오말리를 더욱 자랑스러워하는 건 그 때문일 거다. 세계를 지배한 대영제국 엘리자베스 1세와 맞장 떴던 그녀는 1530년, 여왕보다 3년 먼저 태어나 일흔셋의 나이로 같은 해 운명했다. 그레이스 오말리는 아일랜드에서도 백령도쯤 되는 서쪽 섬 원주민의 고명딸로, 고향 사람들은 그녀를 그라인느, 즉 ‘햇님이’라고 불렀다니 태양여왕과의 결투는 진작부터 예고된 셈이었다.

독수리 한 마리가 부모님이 키우던 새끼양을 채가다 쫓아온 햇님이의 이마를 날카롭게 할퀴었으나 꼬마는 눈도 까딱하지 않고 덤볐고, 상처는 해리 포터의 그것처럼 반짝 빛났다. 아버지는 씩씩한 딸을 뱃길에도 데려갔는데, 영국 해적들이 나타나면 갑판 뒤로 숨으라고 가르쳤으나 막상 일이 벌어지자 아이는 돛을 타고 올라가 상황을 파악한 뒤 아버지 등에 칼을 들이댄 해적 머리로 뛰어내려 사태를 전복시켰다. 용맹한 딸에게 아버지는 일찌감치 배 모는 법을 가르치고, 선주 노릇도 시켰다. 여느 딸들처럼 그녀 또한 열여섯엔 아버지가 정해주는 혼처로 시집가서 1녀2남 쑥쑥 낳았으나, 곧 바다로 나가 또 배를 몰았다.

그녀의 선단은 엄청 불었고, 20년 함께 산 첫 남편이 배 위에서 쌈질하다 세상을 뜬 뒤, 오말리 대장은 남편보다 더 뱃심 좋게 세력을 넓혀가며 일대 섬들과 인근의 성 다섯 채를 소유한다. 그 와중에 신랑감도 찍어 오랜 구애 끝에 재혼하고 늦둥이도 하나 두었다. 조선반도 해군이 거북선을 짓고 일본 해적을 상대로 힘든 싸움 벌인 1593년, 영국은 아일랜드를 통째로 먹고 ‘처녀여왕’의 은덕을 베풀어 족장들에게 작위를 수여했다니, 오말리 대장에게 이들은 우리의 ‘을사오적’ 정도에 해당했겠다.

스페인 무적함대도 무찔렀던 세계 최강의 도적 선단을 상대로 해적질을 하다 2년 남짓 감옥에 갇혀 있던 시절 오말리는 남편의 부음을 듣고 간신히 풀려나는데, 그래도 싸움은 계속되어 결국 남동생과 늦둥이 아들이 생포당한다. 예순이 넘은 오말리는 자기 목에 현상을 걸었던 엘리자베스 1세와 담판을 지으러 가고(그림 왼쪽이 오말리), 이 협상에서 힘이 센 두 할머니는 서로 원하는 바를 얻었다 한다. 세월은 많이 흘러 처녀여왕보다 해적여왕 오말리가 더 매력적인 언니로 추앙받는 요즘 서양 아이들의 축제 분위기는 설움 많던 아일랜드에 순풍처럼 부는 국운과도 무관치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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