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시대 탓일까? 70 넘고 80 넘은 할머니치고 기구하고 서러운 인생의 고비를 넘지 않은 분이 얼마나 될까. 전쟁과 폐허를 헤치고 살아남은 그녀들 삶은 대개가 시난고난한 한 편의 드라마다. 아홉 살에 신병을 앓기 시작해 딱 60년 전 정월 대보름, 열일곱에 내림굿을 받은 큰무당 김금화를 보면 더욱 그렇다. 그녀의 삶은 유난히 돋보이는 한 편의 서사극이다. 14살에 시작된 고된 시집살이, 2년 만의 도망과 곧 이어진 1년간의 지독한 무병은 물론 한국전쟁 동안은 혹세무민을 이유로 인민군에게 끌려가 여러 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은 ‘미신 타파’의 기치를 걸고 ‘마녀사냥’을 방불케 하는 탄압을 하며 덩달아 우쭐해진 동네 건달들을 보내 굿판을 헤집곤 했다.
다행히 해외 문화계로부터 주목을 받아, 열아홉에 이미 대동굿을 주도하던 그녀는 한국 전통문화의 전수자로 이름을 날리며 ‘서해안 풍어제’의 맥을 잇게 되었고, 해외초청 공연을 통해 자연종교의 원초적 생명력을 일깨워주는 시대의 샤먼으로 우뚝 섰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태어난 다섯 남매 중 그녀에게 유난히 모질던 외할머니도 그렇고, 문화 권력에 빌붙은 하수인들뿐만 아니라 가난해서 예단을 못해온 며느리 구박하느라 “저고리 바느질해놓으면 섶 잘못 달았다고 북북 뜯어서 흙바닥에 짓이겨놓고, 버선코를 박아놓으면 솔기가 안 맞는다고 얼굴에 내던지던” 시어머니도 알고 보면 그녀를 큰 만신으로 만든, 제 몸 던져 그녀를 키운, 어이구, 영혼의 스승이었다. 무당이던 외할머니는 공수를 주면서 펑펑 울었다. “손녀딸아, 나는 양반집에 시집 와 아들 못 낳아, 아들 낳게 신령님께 기원하다 신이 들어 무당이 됐다. 그런 내가 왜 몰랐겠나. 어찌하든 막아보려고 일부러 너한테 몹시 굴었건만 오늘 이 길 들어서게 됐으니 남 욕되게 하지 말고 큰 사람 돼라.”
나와 남의 경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드는 무당. 그러나 경계는 위태롭게 마련이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여성도 남성도 아닌, 아니 여성이며 남성인 경계. 풋볼 선수 하인스 워드를 보면 피부 빛의 경계도 큰 내공을 쌓을 때까지는 존재의 위기 지대라, 어쩌면 경계는 영혼의 성장을 위해 꼭 순례해야 할 땅이기도 하다. 아니, 이건 우리 사회의 저급하고 천박한 가치관과 거기 놀아나는 의식의 서툰 수작 탓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건강하고 자유로운 의식을 지녔다면 경계에 드는 일이 반드시 비극적인 운명으로 이어질 이유가 없을 테니 말이다.
남의 아픔을 제 것으로 삼아 대신 아파주고 대신 울어주던 큰무당 김금화의 속살이 짓무르는 속내 이야기는 영혼의 성장이 갈급한 시대적 소재기도 하다. 최근 소설 속 인물 ‘계화’로 다시 태어난 그녀는 자기 성장을 꿈꾸는 이들에게 자기 운명을 덫이 아니라 힘의 원천으로 삼아 알을 깨고 나오라고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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