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젊은 시절 밀레바 마리치의 행적은 높은 이상과 지적 호기심, 인내와 도전정신 등 마리 퀴리와 유사하다. 하지만 그녀는 ‘여성 과학자의 비극적 삶’을 빠짐없이 보여주는 전형이다. 그 시작은 어디부터였을까?
오스트리아 제국 태생이지만, 출신지는 헝가리 변방의 분쟁지역이니 조선족 신세와 흡사. 근면성실로 제법 살림 일구신 부모님의 금지옥엽 귀한 딸이었으나, 선천성 고관절 탈골로 걸음마부터 죽을 때까지 다리를 절어야 했다. 다재다능하고 꿈 많은 소녀 고향엔 여학교가 없어 이웃나라 세르비아로 유학을 떠났고, 더 고독하고 차분해진 그녀, 내면으로 파고들던 습성 또한 그녀 비극의 씨앗이었을까?
그리움이 고향이 되고 주거부정한 자의 불안이 일상이 되면, 진지한 성품만큼 비례해서 사소한 일도 주눅들 핑계가 된다. 이를 상쇄할 전술로 밀레바는 취리히 공대에 입학한 이후 더욱 총명하게 사물을 직시했고, 또래 사내애들의 누이 노릇을 하며 학업을 주도했다.
누이의 빛나는 지성은 제멋대로 멋지신 아인슈타인의 성감대를 자극하고, 외롭던 그녀, 사랑의 노예가 된다. 논문 마감일은 다가오는데 너 없인 못산다며 남자친구는 징징대고, 그의 영광 위해 내 논문과 시험 준비는 뒤로 미루며 닥치는 대로 제 몸 던져 간 빼주고 쓸개 갖다바쳤다. 그뿐이랴, 천상의 소리 닮은 바이올린 선율로 그녀의 지친 영혼을 애무하니, 속수무책으로 배설하는 감정의 찌꺼기를 뒤집어쓰면 쓸수록, 흠 많은 자식인 줄 뻔히 알면서 더욱더 싸고도는 에미들처럼, 모성애 덩어리 크기 순서로 철퍼덕 엎어질 따름이니 누굴 탓하랴.
내가 여자라면 기꺼이 내 거부터 꺼내 썼을 거라는 비장한 말씀, 심하게 숙연했다. 내 난자도 뽑아가라고 여자들이 줄을 선 건, 숭고한 인류애로 여성 학대를 위장한 마초 과학자의 감언이설 탓이 아니라, 귀가 얇아 속고 또 속는 그녀들 탓일 뿐이다, 젠장.
양자역학을 연구하던 남자들은 멀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세계, 이른바 소립자의 엉뚱한 면모에 전율하며 19세기 끝 성탄과 20세기 최초의 새날을 함께 축하했다. 이 무렵 취리히 공대에서 교수 눈 밖에 난 말썽꾸러기 그녀의 남자친구는 사랑에 못 이겨 밀레바 마리치를 임신시키고, 혼전 출생한 ‘민망한 딸아이’는 흔적조차 사라졌다 최근 남동생의 증언으로 간신히 존재가 확인되었다.
학생부부의 옹색한 신혼집은 팔방미인 아내의 헌신으로 학문과 예술과 낭만의 공간이 되었고, 1905년 부부의 합작품 ‘특수상대성이론’은 이 집 남편을 세계적인 과학자 반열에 올려주었다. 결혼 뒤 아들 둘이 태어났는데 애증의 강을 건너는 십여 년 동안 정신질환을 앓는 막내로 인해 부부는 더 서로를 원망했다. 일흔 넘도록 그 앨 돌보다 초라한 노파가 된 그녀, 1948년 쓸쓸히 숨을 거두고, 갈채받는 일이 좋았던 철부지 남편은 곧 새로운 사랑을 찾아, 생활고에 시달리는 아내와 두 아이를 깨끗이 잊은 채 춥고 어두운 땅에 버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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