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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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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명의 관중뿐일지라도…

‘져주기’ 추태, 30년 전 치욕을 잊은 건가?
등록 2014-10-28 15:49 수정 2020-05-03 04:27
23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서 열린 남자 4*400미터 이어달리기에 출전한 휠체어육상 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며 서로 인사를 하고 있다.  인천/김진수 기자 jsk@hani.co.kr

23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서 열린 남자 4*400미터 이어달리기에 출전한 휠체어육상 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며 서로 인사를 하고 있다. 인천/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프로야구의 역대 최소 관중 경기는 1999년 10월7일 전북 전주에서 열린 쌍방울과 현대 경기의 54명이다(2위는 2002년 10월19일 사직구장의 69명). 역대 최소 관중 10경기 중 9경기가 10월에 집중돼 있다. 이 시기가 되면 포스트시즌에 탈락한 팀들은 선수의 개인 기록을 관리하거나 후보 선수들을 테스트하며 무료하게 3시간을 보내지만, 팀의 실패와는 무관하게 경기장을 찾아 응원가를 부르고 선수의 이름을 외치는 관중이 최소한 54명은 있다는 말이다.

지난 10월16일 두산과 SK의 잠실경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두산과는 달리 SK는 마지막까지 LG와의 4강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4회까지 두산은 5-0으로 앞서나갔고, 지면 탈락이 확정되는 SK는 초조해졌다. 그러나 5회 이후 갑자기 두산은 주전선수를 빼고 후보선수들을 투입했고 필사적으로 따라붙은 SK에 7-5로 패하고 말았다. 이 경기로 SK는 LG와의 경쟁을 연장할 수 있었고 두산은 ‘져주기’ 논란에 휩싸였다. 두산의 송일수 감독은 “후보선수의 투입은 애초부터 계획된 것”이라며 해명했지만, 리그의 상황을 조금만 고민하는 감독이라면 (그 경기의 비중을 감안했을 때) 그런 계획은 세우지 말았어야 하고, 세운 계획이라면 변경해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두산이 패배할 때 곤경에 처하게 되는 LG는 불과 며칠 전에 두산 외국인 투수의 욕설 논란으로 충돌했던 팀이라,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두산은 그 경기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결국 시즌 종료 뒤 송 감독은 경질됐다).

다른 팀들의 처절한 순위 경쟁이 진행 중일 때, 포스트시즌 진출 탈락이 결정된 팀이 나른한 표정으로 후보선수 테스트용으로 일정을 때우는 것은 더 이상 이해받지 못한다. 1984년 한국시리즈 상대팀을 고르기 위한 삼성의 ‘져주기’ 추태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야구의 씻을 수 없는 치욕으로 남아 있다. 탈락이 확정된 팀들이 잔여 경기를 치를 때 필요한 것은 (리그에 진상을 부리는 게 아니라) 한 해 동안 함께 땀 흘린 뒤 살아남은 팀들이 영광스러운 가을의 잔치를 벌일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며 리그의 품격을 지켜주는 일이다. 그것이 함께 리그를 만들어가는 자들의 사명이며, 차가운 가을밤의 관중석에서 실패한 팀을 위해 마지막까지 응원가를 불러주는 팬들에 대한 예의다.

“시즌 순위가 결정되고 난 이후의 프로야구 경기만큼 재미없는 시합이 있을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다. 한 영화평론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 재미없는 경기를 보려고 돈을 내고 입장한 그 옛날의 54명과 69명이, 프로야구가 모두에게 외면받을 때 곁에 남아줄 프로야구 최후의 방어선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사직아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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