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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줏빛 토네이도 넥센은 왜 강해졌나



평균 기량 선수들 모아 팀 전력 극대화 성공

2013년 넥센에서 2000년대 오클랜드를 본다
등록 2013-05-28 21:31 수정 2020-05-03 04:27

그야말로 자줏빛 쇼크다. 5월22일 현재 프로야구 1위 팀은 넥센 히어로즈다. 25승11패로 승률은 무려 0.694다. 이미 시즌의 3분의 1가량이 소화된 시점임을 감안하면 경이적인 수치다. 창단 이후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고, 핵심 선수들을 모조리 팔아치우며 부도 직전의 중소기업 같던 야구단이 지금 한국 프로야구를 주도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한겨레 자료

삼성-SK 시리즈에 균열 낸 반란자들

최근 3년간 한국시리즈는 삼성 라이온즈와 SK 와이번스의 결승전으로 이루어졌다. 대체로 싱겁게 끝났고 양팀 팬들을 제외하고는 다소 지루한 재방송이었다. 기적도 드라마도 없었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 프로야구는 결국 SK와 삼성의 역사였다. 결국 제자리를 찾아가고 마는 최종 순위에 야구팬들은 식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올 시즌 넥센 히어로즈가 이 지루한 재방송에 균열을 내고 있다.

넥센의 전신인 우리 히어로즈가 구단 운영을 위해 선수 장사를 해온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현대 왕조의 전리품으로 물려받은 선수층은 두꺼웠고, 자금난을 겪던 우리 히어로즈와 다른 팀 간의 검은 거래가 시작되면서, 히어로즈는 장원삼·이택근·정성훈·이현승·송신영·황재균·고원준 등 핵심 선수들을 팔아대기 시작했다. 정황상 현금이 오고 갔을 거라는 추측이 난무했으나 이장석 단장은 언제나 트레이드의 외형을 갖추며 떠난 선수들에 대한 최소한의 대체재를 수혈해두었다. 그리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남아 있던 선수들과, 현금과 함께 교환돼 히어로즈로 넘어온 ‘원플러스원’ 선수들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받아주는 구단이 없어 현역병으로 입대해 경계근무를 서며 프로 무대에 대한 꿈을 꾸던 신고선수 서건창은 지난해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공과 방망이의 차이가 상당한 바람을 가르는 타자였던 LG의 계륵 박병호는 지난해 리그 MVP가 되었다. 귀여운 외모로 사직의 아이돌이던 김민성은 3년 전 황재균을 원한 롯데로부터 넘어왔다. 야생의 팀 넥센에서 근육질의 어른으로 변신한 그는 현재 프로야구 득점권 타율 1위다. 두산의 ‘뜬금포’였던 이성열은 지금 목동의 괴물이 되었다. 그는 현재 홈런2위다. 두산에서 방출돼 신고선수로 입단한 허도환은 넥센 투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포수가 되었다. 삼성이 재계약을 포기했던 나이트는 현재 국내 최고의 용병투수 중 1명이다. 소속팀에서 매물로 거래되거나, 신고선수로 테스트를 받고 입단한 선수들이 지금 한국 프로야구 1위 팀 넥센을 이끌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 20연승의 대기록을 달성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실화를 그려낸 영화 의 빌리 빈 단장은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출루율”이라고 말한다. 홈런은 멋있고 안타는 짜릿하지만, 홈런과 안타가 아니더라도 야구는 1루에 출루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을 가지고 있다. 빌리 빈은 값비싼 슈퍼스타보다는, OPS(출루율+장타율)가 좋은 선수들을 끌어모았다. 홈런을 때리는 1명의 스타보다, 경기 내내 한 베이스라도 더 갈 수 있는 9명의 선수로 팀을 꾸린 것이다. 빌리 빈의 실험은 성공했고 메이저리그 최약체 팀이라 평가받았던 오클랜드는 2000년대 초반 네 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가장 평균적인 팀이 가장 경쟁력 있다

그리고 5월22일 현재 프로야구 전체 OPS 1위 팀은 넥센이다. 야구는 스타 1명의 영향력이 가장 적은 구기종목이다. 모든 스포츠 중 야구가 1년에 가장 많은 리그 경기를 소화하는 이유는, 야구는 결국 모수를 늘려 ‘평균’의 순위를 가리는 확률의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즉, 가장 평균적인 팀이 가장 경쟁력 있는 팀이다. 1명의 슈퍼스타가 아니라 적당한 수준의 여러 선수가 팀의 경쟁력을 만들어내는 스포츠가 야구다. 2000년대의 오클랜드가 그랬고, 2013년의 넥센이 그러하다.

오클랜드는 강팀이었지만 결국 최종 우승은 하지 못했다. 머니볼의 약점은 강한 팀은 될 수 있어도 최강의 팀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오클랜드의 머니볼은 정상 문턱에서 주저앉으며 아름다운 실험으로만 남았다. 버려지고 팔려온 선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각성하고 있는 2013년의 넥센은 어떻게 될까. 한국 프로야구에 오랜만의 드라마가 만들어질 것인가. 자줏빛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김준 사직아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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