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비평이나 비평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간이 없겠지만, 비평가 자신들은 꽤 많은 시간을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데 보낸다. 어떤 비평가가 되길 원하느냐는 질문을 몇 번 받은 이후 나는 간결하고 명료한 대답을 준비해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최근 어느 대담에서 같은 질문을 받고는 이렇게 답했다. 정확하게 칭찬하는 비평가. 이 대답은 곧바로 두 개의 추가 질문을 유발할 것이다. 길게 답할 수 없으니 오해를 사기 쉽겠지만 그래도 답해보자.
첫째, 왜 칭찬인가. 어떤 텍스트건 칭찬만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칭찬할 수밖에 없는 텍스트에 대해서만 쓰겠다는 뜻이다. 그런 글을 쓰고 나면 내 삶이 조금은 더 가치 있어졌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 노트북에는 쓰고 싶은 글의 제목과 개요만 적어놓은 파일이 수두룩한데 이 파일의 수는 자꾸만 늘어난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도대체가 시간이 너무 없다. 이것은 인생의 근본 문제다. 비판이 비평의 사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판은, 비판을 할 때 만족감을 느끼는 비평가들의, 사명이다.
둘째, 왜 정확한 칭찬인가. 비판이 다 무익한 것이 아니듯 칭찬이 늘 값있는 것은 아니다. 부정확한 비판은 분노를 낳지만 부정확한 칭찬은 조롱을 산다. 어설픈 예술가만이 정확하지 않은 칭찬에도 웃는다. 진지한 예술가들은 정확하지 않은 칭찬을 받는 순간 자신이 실패했다고 느낄 것이다. 정확한 칭찬은 자신이 칭찬한 작품과 한 몸이 되어 함께 세월의 풍파를 뚫고 나아간다. 그런 칭찬은 작품의 육체에 가장 깊숙이 새겨지는 문신이 된다. 지워지지도 않고 지울 필요도 없다.
이런 생각이 보편적인 설득력을 가질 것이라고 자신하지 않는다. 동의해달라고 떼쓸 생각도 없다. 누군가는 왜곡 없이 이해할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그러던 중에 장승리의 두 번째 시집 (문예중앙시선 23)을 읽었다. 좋은 시가 많았지만 특히 어떤 시가 나를 반갑게 했다. 그 시를 읽고 나서 나는 이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시인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해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이중의 착각일지라도, 이런 착각은 어떤 에너지가 된다.
“정확하게 말하고 싶었어/ 했던 말을 또 했어/ 채찍질/ 채찍질/ 꿈쩍 않는 말/ 말의 목에 팔을 두르고/ 니체는 울었어/ 혓바닥에서 혓바닥이 벗겨졌어/ 두 개의 혓바닥/ 하나는 울며/ 하나는 내리치며/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부족한 알몸이 부끄러웠어/ 안을까봐/ 안길까봐/ 했던 말을 또 했어/ 꿈쩍 않는 말발굽 소리/ 정확한 죽음은/ 불가능한 선물 같았어/ 혓바닥에서 혓바닥이 벗겨졌어/ 잘못했어/ 잘못했어/ 두 개의 혓바닥을 비벼가며/ 누구에게 잘못을 빌어야 하나”(‘말’ 전문)
화자는 세 개의 소망을 말했다. 정확하게 말하고 싶고,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고, 정확하게 죽고 싶다는 것. 이 모든 것의 출발은 우선 말이다. 그녀는 정확하게 말하고 싶었으나 말을 하고 나면 그것은 늘 부정확한 것처럼 여겨졌고 그래서 했던 말을 또 해야만 했다. 니체는 채찍질당하는 말(馬)을 끌어안고 울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말(言)이 정확해지길 바라며 채찍질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것이 고통스러워 우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두 개의 혓바닥”이 있다. 하나는 때리고, 하나는 운다.
정확하게 말하고 싶다는 욕망은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과 연결돼 있다. 나는 “부족한 알몸”이 부끄럽다. 그런데 네가 나를 안으려 들까봐, 혹은 내가 너에게 안기고 말까봐,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면서 딴청을 부려야 했다. 내 알몸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도록, 네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면 좋겠다. 그때 나는 ‘정확하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겠지. 어쩌면 그것은 정확한 죽음만큼이나 “불가능한 선물”일까. 비평가인 나는 세상의 모든 훌륭한 작가와 시인들에게 바로 그 ‘불가능한 선물’을 주고 싶은 것이다. 정확한 칭찬이라는 정확한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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