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정대세는 그저 정대세

‘가지 못하는 조국’에 온 ‘인민 루니’
등록 2013-01-15 19:24 수정 2020-05-03 04:27
한겨레 김경호

한겨레 김경호

2013년 초, 한국 축구계에 한 가지 흥미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인민 루니’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북한 국가대표팀의 공격수 정대세가 K리그 1부 리그 팀인 수원에 입단한 것. 팀을 이끌고 있는 서정원 감독의 현역 시절 등번호인 14번을 부여받은 정대세는 K리그에 입단하는 선수로는 드물게 대한축구협회 대회의실에서 입단식을 치를 정도로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약 5년 전, 나는 그가 자신의 첫 프로팀이던 일본 J리그의 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있을 때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아직, 정대세라는 이름이 한국에 많이 알려지기 전이었다. 그 직전 시즌인 2007 시즌에 그는 J리그에 33경기에 출전해 16골을 넣는 맹활약을 펼쳤고, 2008년 초에는 북한 국가대표팀 공격수로 전격 발탁돼 한국·중국·일본이 참가하는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인상적인 골을 넣으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정대세는 수많은 한국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됐으며, 지칠 줄 모르는 기세로 스타덤에 오르더니 2010년 남아공월드컵 무대에서는 문자 그대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브라질전을 앞두고 국가를 부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의 모습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분명 그가 가지게 된 이미지 중 일부는 실제의 정대세와 다른 면도 있을 것이고, 그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자신의 삶에 품게 된 역사의 굴곡이 너무 복잡하고 다단해서 ‘정대세’라는 이름 세 글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상념이 오고 가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긴 여정을 거쳐 “언젠가는 K리그에서도 뛰어보고 싶습니다”라고 또박또박 말하던 그의 꿈이 이뤄지게 된 것은 감격스럽다. 그 특유의 거침없는 성격대로라면 “당연히 더 성공해서 프리미어리그로 갔다면 좋았겠죠”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도 같지만, 사람은 여러 종류의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정대세가 잘 알고 있을 터다.

사라져버린 조국을 ‘우리’라는 이름으로 가슴에 품고 자란 재일동포 3세. “나고 자란 땅은 일본이고, 가지 못하는 조국은 한국이고, 잘 알지 못하는 조국은 조선”이라 말하던 그가 긴 시간을 거쳐 아버지의 나라로 알고 자란 한국 땅을 밟게 됐다.

또다시 그의 이름을 놓고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아픔을 이야기하겠지만, 어떤 의미에서 원점으로 돌아온 그가, 무엇보다 축구로 ‘어필’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형광 주황색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북한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쟁쟁한 아시아의 수비수들을 제치며 골을 넣던 모습. 그가 정말 축구를 잘하는 선수라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정대세를 그저 정대세로 인정하게 될 테니까.

SBS ESPN 기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