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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은 짧고 승부는 길다

프로축구 감독과 선수의 이적
등록 2013-01-04 21:52 수정 2020-05-03 04:27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 발레데바르구 성당 근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그곳은 풍족하진 않지만 삶의 충만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이기진 제공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 발레데바르구 성당 근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그곳은 풍족하진 않지만 삶의 충만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이기진 제공

겨울은 스포츠계에는 ‘새 출발’의 의미가 강한 계절이다. 종목을 막론하고 많은 팀이 리빌딩을 위해 분주해지고, 사령탑부터 선수들까지 대이동이 계속된다. 축구계도 예외는 아니다. 신호탄을 쏜 것은 성남. 1년 내내 팀 안팎으로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던 성남은 신태용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물러나자 부산의 사령탑 안익수 감독을 영입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선수 시절 성남에서 팀의 K리그 지배를 이끌었던 당사자이기에, 친정팀 복귀가 어색한 일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감독을 빼앗기다시피 한 부산 팬들에게는 ‘멘붕’인 소식이었다.

이번에는 부산이, 수원에서 성적 부진으로 사퇴한 윤성효 감독을 그야말로 ‘LTE급’ 속도로 차기 감독으로 영입했다. 윤성효 감독 역시 현역 시절 부산에서 활약했다. 상황이 이쯤 되면 ‘로열티라는 것은 개나 주는 것인가’ 하는 심통을 부리고 싶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수원 또한 지지 않고 팀 레전드 출신인 서정원(사진) 수석코치를 발 빠르게 감독으로 승격시켰다. 사실 팀을 옮기는 감독이나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것이 연인의 이별 과정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별의 아픔이라는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사라진다. 남는 것은 승부. 그것이 프로의 세계다.

그런데 아주 ‘기묘한’ 경우도 있다. K리그는 2012 시즌에 처음으로 강등제를 시행했는데, 도민구단인 강원은 극적으로 1부 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다만 시즌 중에 팀의 주축 수비수였던 오재석을 일본 J리그 팀인 감바 오사카로 이적시키는 결정을 감행해야만 했다. 그의 10억원에 가까운 이적료가 임금 체납까지 겪고 있던 구단의 재정 위기를 타개할 거부할 수 없는 해결책이었기 때문. 하지만 시즌이 마무리된 뒤 공교롭게도 강원은 1부 리그 잔류에 성공했고, 그가 이적하게 될 감바 오사카가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일부 축구팬들은 런던올림픽 대표로 출전해 홍명보호의 동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한 선수가 다른 나라도 아니고 일본, 그것도 2부 리그로 떨어진 팀으로 이적한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오재석은 그저 연봉을 더 받으려고 K리그를 버리고 일본으로 간 경우가 아니다. 누군가 그를 두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인당수에 뛰어든 심청이 같다’는 농담을 하는 것을 듣고 웃을 수도 없었다.

프로 선수나 감독들에게 ‘이적’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목표이기도 하고, 더 큰 목표를 달성하려는 도구이기도 하다. 또 사정이 어찌됐든 제대로 된 새 출발을 위해서는 때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잔혹함이 필요하기도 하다. 남겨질 사람에게나, 새로운 상대에게나 그게 ‘예의’일 수 있다. 변화를 위한 결단의 순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인간성이 아니라 과감함일지도 모르겠다. 이별의 아픔은, 사라지기 마련이니.  

SBS ESP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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