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감독’이라는 존재와 대면할 때마다 그들에게 대응값이 있다면 ‘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성별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감상이 확실하기에 부끄럽기는 하지만, 어찌됐든 ‘어머니’를 떠올린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조금 더 센티멘털해져본다면(역시 너무 진부한 감정이라 욕먹을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것이 그저 ‘부성’(父性)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 나이가 들고, 세상을 어느 정도 경험한 뒤엔 우리 모두 세상에 ‘좋은’ 아버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 않나. 어쩌면 그들이 공통으로 내풍기는 ‘외로움’의 오라가 같은 색이라는 점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지금이 연말이고, 아마도 축구·야구 등 시즌이 정리되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과가 좋으면 함께 웃을 수 있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할 수는 없는 존재.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때는 되도록 큰 저항 없이 모든 짐을 홀로 짊어져야 하는 대표자. 잘 소통하지 못하는 자신과 잘 소통할 수 없는 주변과의 어색한 상황들을 묵묵히 견디며 힘겨운 결단을 내리기도 하고, 때로는 익숙한 것들과 단호하게 결별하는 사람. 슬픔을 밖으로 내보이지 않고, 떠나가는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라 할지언정 확신이 있다면 뜻을 굽히지 않는 사람.
다만 승패가 교차하는 ‘현장’에서 ‘감성’이 차지할 자리는 많지 않다. 아버지가 했으면 그저 잔소리였을지 모를 훈계는, 김성근 감독(사진)의 입을 통해 나오는 순간 한국 야구를 뒤흔들 수도 있는 훈계가 된다. 스무 살 손흥민의 몸값이 유럽 축구시장에서 ‘금값’으로 치솟았다는 최강희 감독의 그저 기분 좋은 칭찬 한마디로 한국 축구의 미래가 요동치기도 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 말의 무게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것도 감독 자신이다. 그렇게 훈계해놓고, 그런 선수를 불러다놓고, 이기지 못했을 때의 고통이란. 그래서 늘,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감독’과 ‘아버지’는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어디론가 홀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그러고 보니 넥센의 김시진 감독이 8월 무렵부터 눈에 띄게 기운이 없었는데, 그래서 그랬던 걸까…’ 하고 생각하는 자신이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부정하기가 쉽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그해, 아버지는 확실히 여름부터 많이 힘들어하셨던 것 같다고, 이제 와 생각하는 자신이 있는 것처럼.
물론 ‘감독=어른=남자=아버지=고독’ 즈음으로 요약되는 이 등식도 언젠가는 더 이상 그 ‘실재감’을 현실적으로 좀처럼 가늠하기 어려운 ‘하면 된다’ 같은 단어들과 마찬가지로, 세상 어딘가 아득한 곳으로 사라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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