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현(33·넥센)은 메이저리그에서 박찬호를 능가할 수 있는 투수였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입단한 1999년, 그는 마이너리그에서 딱 두 달만 보낸 뒤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4년간 구원투수로 70세이브를 기록했다. 이 기간 9이닝당 탈삼진은 10개가 넘었다. 감독이라면 누구나 불펜에 데리고 있고 싶어 하는 투수였고, 내셔널리그의 한 타자는 “김병현은 메이저리그에서 추방해야 할 선수”라고 했다. 2003년 시즌 도중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해서는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8승16세이브를 따내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그해 포스트시즌부터 김병현의 몰락이 시작됐다.
손가락, 팀에 팽배한 스트레스 대변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김병현은 4-3으로 앞선 9회말 마무리로 등판했다. 첫 타자는 외야수 플라이로 처리했지만 볼넷과 몸에 맞는 공을 잇따라 내줬다. 네 번째 타자 마크 엘리스는 장기인 삼진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다음 타석에 좌타자 에루비엘 두라소가 들어서자 그레이디 리틀 감독은 김병현을 왼손 앨런 엠브리로 교체했다. 엠브리는 두라소에게 동점 적시타를 허용했고, 보스턴은 연장 12회 접전 끝에 4-5로 역전패했다.
사달은 시리즈 3차전이 열린 홈구장에서 빚어졌다. 경기 전 장내 아나운서가 김병현을 소개할 때 펜웨이파크 관중은 그에게 야유를 보였다. 그러자 김병현은 관중석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대형 사고’였다. 현지 언론뿐 아니라 국내 언론에서도 김병현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보스턴은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결정전까지 진출했지만 김병현의 등판 기회는 없었다. 그리고 2004년 김병현은 부상에 시달리며 고작 7경기만 등판했고, 이듬해 콜로라도 로키스로 쫓겨나듯 트레이드됐다. 이후 마지막 메이저리그 시즌인 2007년까지 김병현의 투구 기록은 평범 이하였다. 그리고 올해 비로소 한국 프로야구에서 재기 피칭에 나서고 있다.
프로스포츠는 드라마다. 사소할 수도 있는 행동이 어떤 맥락과 결합하면 의미 있는 상징이 된다. 김병현의 중지 사건이 그런 경우다. 하지만 당시 보스턴 구단 직원이었던 대니얼 김은 “잘못된 행동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장된 면이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보스턴 선수단 전체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상황이었다. 보스턴은 메이저리그의 명문 구단이자 ‘베이브 루스의 저주’로 대표되는 팀이다. 그만큼 월드시리즈 우승에 대한 강박이 컸다. 메이저리그 2년차 감독이던 리틀은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까워질수록 선수를 믿지 못했다. 주자 한 명이 나가면 마무리 투수를 곧바로 교체하는 횟수도 늘어났다.
당시 김병현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2003년 그는 무릎과 어깨에 부상을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등판을 고집했다. 대니얼 김은 “김병현이 원래 그런 선수”라고 말했다. 1차전에서 경기 종료까지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겨둔 상태에서 교체는 김병현의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 가뜩이나 보스턴은 극성 야구팬을 보유한 도시다. 보스턴 시민은 1918년 이후 한 번도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장면을 지켜보지 못했다. 실수를 한 선수에겐 가차없는 비난을 쏟아낸다. 대니얼 김은 “김병현 이전 마무리를 맡았던 데릭 로는 세이브에 실패한 경기 뒤 구장을 나서다 팬에게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그 뒤론 한동안 로커룸에 머물다 구장을 빠져나가곤 했다”고 말했다.
선수단 전체에 걸린 스트레스, 납득할 수 없는 교체에 대한 실망, 좋지 않은 몸 상태, 그리고 관중의 야유. 3차전에서 김병현이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린 건 이런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대니얼 김은 “그 일로 김병현이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사건 여파는 크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보스턴 구단은 그와 2년 계약 연장을 했다. 김병현이 원하는 선발투수 전환도 수용했다. 동료 중 일부는 김병현의 행동을 내심 응원하기도 했다. 구단에 비난이나 항의 메시지를 보낸 팬도 거의 없었다. 중국계·베트남계 등 소수민족 출신은 오히려 김병현을 영웅으로 떠받들기도 했다. 보스턴은 아메리칸리그에서 가장 늦게 흑인 선수를 받아들인 도시다. 그만큼 보수적이고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이 심하다. 펜웨이파크의 좋은 좌석에는 백인 지도층 인사들이 앉는다. 김병현의 행동은 그들에게 주류 사회에 대한 속시원한 도발로 받아들여졌다.
지금도 씻지 못한 발목 부상의 여파
김병현은 왜 메이저리그에서 롱런하지 못했을까. 2002년 상대 타자의 배트에 발목을 맞은 뒤부터 그의 투구 밸런스가 무너졌다. 그 뒤 한 번도 자신이 납득할 만한 공을 던지지 못했다. 2003년 시즌 뒤 일본에서 치른 재활 훈련이 잘못돼 밸런스는 더 망가졌다. 2004년 스프링캠프에서 김병현의 직구 구속은 시속 130km대 초반에 머물렀다. 그 여파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김병현을 지켜봐온 대니얼 김은 이렇게 말했다. “결국 문제는 손가락이 아니었던 거죠.”
최민규 <일간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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