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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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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조호성, 김현섭의 눈물을 보고 싶다

사이클과 경보에서 한국 최초 올림픽 메달 노리는 ‘돌아온 노장’ 조호성,
‘경보 대들보’ 김현섭… 각목 같은 다리로 달려 따낸 메달 걸고 흘릴 기쁨의 눈물을 기대한다
등록 2012-05-23 20:18 수정 2020-05-03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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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 금메달 유망 종목은 많다. 그러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은커녕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종목에서 금메달보다 값진 동메달을 꿈꾸는 선수가 있다. 사이클의 조호성(38·서울시청)과 경보의 김현섭(27·삼성전자)이다.

조호성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사이클 스타였다. 1999년 월드컵 시리즈 포인트레이스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하지만 올림픽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는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 7위에 그쳤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 40km 포인트레이스에서는 1점 차로 4위를 차지해 아쉽게도 한국 사이클 역사상 올림픽 첫 메달을 놓쳤다.

런던올림픽 벨로드롬에서 은메달

그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나가지 않는 대신 경륜 선수로 전환했다. 2005년부터 4년 연속 경륜 상금랭킹 1위에 오르며 큰돈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2009년 경륜을 그만두고 다시 아마추어 사이클로 돌아왔다. 돈 대신 명예를 택한 것이다.

사이클은 세계의 벽이 높은 종목이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등이 전통적인 강국이다. 세부 종목에서는 세계기록과의 격차가 커서 메달을 따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번에 옴니엄(omnium)이라는 종목이 생겼다. 옴니엄은 프랑스어로 ‘다양한 자전거 경기’라는 뜻으로, 플라잉랩, 포인트 경기, 제외 경기, 4km 개인 추발, 15km 스크래치, 1km 독주 등 6개 종목을 하루 세 종목씩 이틀 동안 치른 뒤 각 종목의 순위를 합산해 우열을 가리는 종목이다. 육상 10종 경기와 같이 단거리와 장거리가 다양하게 섞여 있다.

그런데 조호성은 장거리 종목인 포인트레이스에서 한때 세계 정상에 올랐고, 단거리 종목인 경륜 선수로도 전향한 적이 있어서 옴니엄에서 경쟁력이 뛰어난 선수다. 지난 2월 런던 트랙 월드컵 옴니엄 경기에서 은메달을 땄고, 3월 초에는 프랑스에서 열린 113km 도로 대회에서 20대 선수 100여 명과 레이스를 펼쳐 체력에 전혀 문제를 드러내지 않으며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런던 트랙 월드컵이 열린 경기장은 바로 런던올림픽이 치러질 벨로드롬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 또 이번 런던올림픽부터 사이클 종목에 5개 대륙별로 출전권을 주는 쿼터제가 도입됐는데, 영국과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등 사이클 강국에서 출전하는 선수의 수가 제한되기 때문에 그만큼 조호성에게 유리하다.

1974년생인 조호성은 우리 나이로 불혹을 앞둔 39살이다. 하지만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루려고 페달을 밟고 있다. 스페인의 호안 야네라스는 4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 당시 만 39살의 나이에 포인트레이스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조호성은 “야네라스를 보며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애국가를 듣는 꿈을 다시 꾸게 됐다”고 했다.

메이저대회 징크스 깨야 하는 김현섭

김현섭은 한국 경보의 대들보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마라톤을 제외한 육상 종목 가운데 역사상 첫 메달 소식을 전해줄 기대주로 꼽히고 있다.

김현섭은 지난해 8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자신의 주종목인 남자 20km 경보에서 1시간21분17초로 6위를 차지해, 전체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그는 당시 한국 선수 가운데 개최국 노메달의 수모를 씻어줄 가장 유력한 메달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김현섭은 과도한 긴장으로 위경련을 일으켜 경기 이틀 전 병원 신세까지 졌다. 그는 최악의 컨디션에도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세계 톱 랭커들이 모두 출전한 이 대회에서 6위에 올랐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은 대구세계선수권대회 때 ‘10개 종목에서 10명의 결선 진출자를 배출한다’는 이른바 ‘10-10 전략’을 세웠지만 톱10 안에 든 선수는 김현섭과 남자 50km 경보에서 7위를 차지한 박칠성(30·삼성전자)뿐이었다.

김현섭은 주니어 시절부터 한국 경보의 역사를 새로 쓴 주인공이다. 사실 그는 육상을 하다가 소질이 없어 경보로 바꿨다. 강원도 속초 설악중학교 3학년 때다. “중1 때부터 육상 중거리 선수였지만 여자 선수들한테도 질 정도였다”고 했다. 그 여자 선수 중 한 명이던 동갑내기 신소현(27)씨는 이제 아내가 됐다.

달리기는 젬병이었지만 경보엔 소질이 있었다. 2004년 세계주니어육상선수권대회에서 한국 경보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2007년에는 한국 경보 사상 처음으로 20km 기록을 1시간20분대로, 또 2008년에는 1시간19분대로 단축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록은 해마다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도 메이저대회에서는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역대 한국 선수 중 최고 성적인 23위에 올랐지만 기록은 1시간22분57초로 저조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자신의 최고 기록에 3분 가까이 뒤진 1시간22분47초로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런던에서 최초가 될 사나이들

다행스러운 건 지난해부터 다시 기록이 좋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3월 일본 노미에서 열린 아시아경보선수권대회에서 1시간19분31초로 한국 신기록을 작성해 런던올림픽 출전 A기준기록(1시간22분30초)을 3분가량이나 단축해 올림픽 티켓을 가뿐히 따냈다. 이는 지난해 세계기록 9위에 해당한다.

조호성과 김현섭의 다리는 각목처럼 단단하다. 이들의 강인하고 흔들림 없는 두 다리로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사이클과 한국 경보의 새 역사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레저부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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