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2월31일. 한양대 투수 박찬호는 청운의 꿈을 안고 김포공항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LA)행 비행기를 탔다. 친구 설종진(전 현대 투수)은 LA 다저스와 계약한 박찬호에게 “10년 안에는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박찬호는 19년 만에 돌아왔다. 2012년 박찬호는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한국 프로야구 선수로 뛴다.
박찬호뿐만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통산 86세이브를 기록한 김병현은 지난 1월 넥센 히어로즈와 1년 16억원에 계약하고 고국에 돌아왔다. 이승엽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8년을 보낸 뒤 친정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다. 프로야구 통산 타율 0.310에 188홈런을 기록한 강타자 김태균도 2년간의 일본 지바 롯데 시절을 뒤로하고 한화로 돌아왔다. 이들의 2012년 시즌을 전망해본다.
이승엽. 삼성 제공
한화로 돌아온 박찬호 ‘효과’ 박찬호는 2008년 LA 다저스에서 전문 구원투수로 변신했다. 이듬해엔 필라델피아 불펜 투수로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역이 됐다. 송재우 IPSN 해설위원은 “당시 박찬호의 구위는 수준급이었다”고 평했다. 직구 평균 구속은 2008년 시속 92.6마일, 2009년엔 시속 91.0마일까지 측정됐다. 그러나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에서 박찬호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았다. 한 퍼시픽리그 구단의 스카우팅리포트는 박찬호에 대해 “직구는 컨트롤이 불안하고 가운데로 몰린다. 공의 움직임도 평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체인지업과 컷패스트볼에 대해서도 “타자를 속일 궤적이 아니며 꺾이는 각도가 예리하지 않다”고 부정적인 견해였다. 송 위원은 이에 대해 “2010년 뉴욕 양키스 시절의 햄스트링(허벅지 뒤쪽 근육) 부상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프로 구단 코치는 “박찬호는 경험이 풍부한 투수다. 체력 관리도 누구보다 잘한다. 그러나 햄스트링은 재발하기 쉬운 부상”이라고 말했다. 올해 39살인 나이 문제도 있다. 한대화 한화 감독은 일단 선발 로테이션에서 박찬호의 자리를 네 번째 이하로 생각하고 있다. 박찬호는 경기 외적인 면에서도 한화의 젊은 투수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박찬호는 한화의 애리조나 캠프에서 “즐기면서 야구를 하라”는 조언을 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19년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다. 그러나 한국 야구 문화는 아직 ‘효과성’보다는 ‘투입량’을 따진다. 박찬호의 경험이 한화 선수단에 잘 녹아들어갈 수 있을지는 경기 외적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광고
지금까지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다가 일본을 거쳐 복귀한 타자는 이종범·이병규·이범호 3명이다. 3명 모두 ‘성공’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종범은 주니치에서 첫 시즌인 1998년 인상적인 타격을 했지만 경기 중 입은 골절상으로 67경기만 뛰었다. 이듬해 타율은 0.238로 추락했다. 2000년엔 타율 0.275를 기록했지만 이종범이라는 이름 석 자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2001년 1군에서 8경기만 뛴 뒤 기아에 입단했다. 이병규는 주니치(2007~2009년) 통산 타율이 0.254이며, 이범호가 2010년 소프트뱅크에서 기록한 타율은 0.226이었다. 그러나 세 선수는 모두 국내 복귀 뒤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이종범은 2001~2003년 타율 0.310을 기록했으며 이범호는 지난해 프로 입단 뒤 가장 빼어난 성적을 올렸다. 이병규의 복귀 첫해(2010년) 성적은 타율 0.290에 9홈런으로 평범했지만 지난해 타율 0.338에 16홈런을 때려내며 개인 통산 두 번째로 좋은 시즌을 보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겪은 높은 벽은 복귀 뒤 국내에선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복귀 시즌 나이는 이종범이 31살, 이범호가 30살, 이병규가 36살이다. 김태균의 올해 나이는 30살. 지난해엔 부상 등으로 제대로 뛰지 못했지만 2010년 지바 롯데에서 수준급 성적을 냈다. 김태균은 여전히 한국 프로야구 1급 타자다. 그러나 김태균의 영입이 한화의 전력 급상승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김태균과 이범호가 모두 뛰던 2009년 한화의 팀 순위는 최하위였다.
[%%IMAGE3%%]36살 이승엽의 올 시즌 홈런 기록은?선동열이 ‘국보’였다면, 이승엽은 ‘국민타자’였다. 프로야구 30년 동안 이승엽처럼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도 없었다. 이승엽은 자신을 “뭔가를 쉽게 털어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평한 적이 있다. 그를 아는 야구인들은 최근 네 시즌 동안 일본 프로야구에서 겪은 부진은 부상 외에 심리적 요인이 컸을 것이라고 말한다. 2010년까지 뛰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이승엽뿐 아니라 모든 선수와 코치, 감독이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팀이기도 했다. 올해 다시 삼성 유니폼을 입은 이승엽은 “재미있게 야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중심 타자로서의 책임감은 있지만 일본 시절 그의 어깨를 짓누르던 부담감은 내려놓아도 좋다.
이승엽에게 그가 전성기에 두 차례 기록했던 50홈런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우선 국내 프로야구 환경이 달라졌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는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 홈런의 시대였다. 그가 일본으로 떠난 2004년 이후 시즌 40홈런 타자는 2010년의 이대호(44홈런)뿐이다. 요미우리에서 41홈런을 친 2006년, 이승엽은 우람한 상체 근육을 자랑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그는 근육량을 줄이고 일본 진출 전의 날렵한 몸으로 되돌아갔다. 배팅 파워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 변화다. 일본 진출 전에 비해 한국 투수들은 더 까다로운 공을 던진다. 몸 쪽 공을 던지는 왼손 투수도 많아졌다. 좌투수의 인코스 공략은 이승엽이 일본에서 최대 약점으로 꼽혔던 부분이다. 대구 구장 펜스도 2003년 이전에 비해 홈플레이트에서 더 멀어졌다. 36살이라는 나이도 걸림돌이다. 프로야구에서 36살 이상으로 시즌 20홈런을 친 타자는 2007년 양준혁(38·22개), 2009년 송지만(36·22개)밖에 없다.
광고
김병현은 괴짜 이미지가 강한 선수다. 기행으로 비칠 행동이 여러 차례 있었고, 대중에게 노출되는 걸 극도로 꺼린다. 하지만 그를 아는 지인들은 “속이 깊은 친구다. 다만 성격이 내성적이라 오해를 사기 쉬울 뿐”이라고 말한다. 30대에 접어든 김병현에겐 아내와 딸이 있다. 김병현은 2008년 3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방출된 뒤 2년 가까이 쉬었다. 김병현은 2010년 독립리그 오렌지카운티 선수로 다시 마운드를 밟았다. 아내 한경민씨에게 자신이 어떤 야구선수인지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계약하고, 올해 국내에 복귀한 것도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라는 게 지인들의 말이다.
전성기의 김병현이라면 국내 타자들을 제압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래에서 위로 떠오르는 ‘프리스비’ 슬라이더는 메이저리그 강타자들로부터 “퇴출시켜야 할 공”이라는 탄식을 샀다. 하지만 오랜 공백은 김병현의 올 시즌에 의문부호를 붙이게 한다. 2010년 오렌지카운티에서는 45와 3분의 2이닝, 2011년 라쿠텐 2군에서 20과 3분의 1이닝을 던진 게 전부다. 오렌지카운티가 속한 골든베이스볼리그나 일본 프로야구 2군의 경쟁력은 국내 프로야구 1군보다 높다고 할 수 없다. 넥센은 올해 김병현에게 최대 16억원을 지급한다. 지난해 라쿠텐에서의 연봉은 3300만엔(약 4억7천만원)이었다. 메이저리그 통산 86세이브의 거물 투수 김병현이지만 그의 현재 몸값은 16억원보다는 3300만엔에 가깝다.
최민규 <일간스포츠> 기자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전원일치 여부 몇 초면 알 수 있다…윤 탄핵 심판 선고 ‘관전법’
건대입구 한복판서 20대 남녀 10여명 새벽 패싸움
이것은 ‘윤석열 파면 예고편’…헌재 최근 선고 3종 엿보기
김수현 모델 뷰티 브랜드 “해지 결정”…뚜레쥬르는 재계약 않기로
쇼트트랙 최민정, 세계선수권 1500m ‘금’…내년 올림픽 직행
[단독] 경호처, 윤석열 체포 저지에 ‘반기’ 든 간부 해임 의결
[단독] 1월 초과근무 113시간…탄핵 정국에 ‘방전된’ 경찰 기동대
[단독] 상법 개정 열쇠 쥔 최상목, 4년 전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 주장했다
윤석열 탄핵 선고 ‘목’ 아니면 ‘금’ 가능성…헌재, 17일에도 평의
“윤석열 파면하고 일상으로” 꽃샘추위도 못 막은 간절한 외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