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2루로 출근하는 어느 직장인의 이야기

3할대 타자에서 병역 비리 범법자로 그리고 부상과 슬럼프… 거듭 파괴돼도 기어이 돌아오는 사나이, 롯데 자이언츠의 ‘캡틴’ 조성환
등록 2011-07-13 15:59 수정 2020-05-03 04:26

영준이 아빠는 유니폼 대신 수의를 입고 있었습니다. 돌이 막 지난 아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었지만, 6개월의 수감 생활 동안 매일 면회 오던 아내가 절대 영준이만은 데려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들의 기억 속에 수의를 입은 아빠의 모습을 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출소하던 날, 영준이 아빠는 집으로 달려가 잠든 영준이 옆에 누워 미치도록 그리웠던 아들을 지긋이 바라봅니다. 잠자던 영준이가 갑자기 아빠 쪽으로 돌아눕더니 눈을 뜹니다. 6개월 만에 처음 본 아빠를 보고 영준이가 씩 웃습니다. 그 웃음 한 방에 병역법 위반자, 서른 살의 영준이 아빠는 파괴된 인생을 다시 시작할 이유를 발견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2루수, 영준이 아빠, 조성환의 이야기입니다.

관중석에 앉은 서른의 공익근무요원

자이언츠 팬들에게 자이언츠의 2루는 눈물과 한으로 지켜온 땅입니다. 10년간의 홈인에 실패하며 결국 돌아오지 못한 2루 주자 임수혁을 자이언츠 팬들은 가슴에 묻었습니다. 팀의 영혼 박정태가 2루 슬라이딩을 하다가 조각나버린 발목에 철심을 박아넣고 10년을 지켜낸 땅이 2루입니다. 임수혁이 쓰러지고 박정태가 박살난 발목으로 지켜온 그 땅, 자이언츠의 2루는 아무도 대신할 수 없을 것 같았고, 자이언츠 팬들은 박정태 이후의 2루수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한겨레21 윤운식

한겨레21 윤운식

2000년 4월18일, 임수혁이 2루에서 쓰러지던 순간 타석에서 선배가 쓰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굳어버린 신인 선수가 있었습니다. 전설의 2루수 박정태 선배와 더그아웃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그 선수 조성환은 세월이 흘러 자이언츠의 주전 2루수가 됩니다. 신인 지명 꼴찌로 프로 무대에 턱걸이한 선수. 국가대표 경력이 전무한 그저 그런 백업 선수. 아무도 이 선수가 10년 뒤 자이언츠의 역사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초반, 팀의 유일한 3할 타자로서 급성장하고 있던, 한 번도 성공한 야구선수로 살아보지 못한 20대의 영준이 아빠는 이 시간을 붙잡고 싶었습니다. 야구선수에게 병역 문제는 인생을 걸어야 하는 일입니다. 국가대표가 되어 국제대회 입상을 통한 병역 혜택은 남의 이야기였습니다. 결혼한 아내와 막 태어난 아이 생각에, 영준이 아빠는 순간 잘못된 유혹에 무너져버립니다. 2004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프로야구 집단 병역 비리에 연루됐습니다. 도주와 자수와 재판의 과정을 거치며 결국 영준이 아빠는, 글러브 대신 수갑을 찼고, 유니폼 대신 수의를 입었고, 더그아웃 대신 구치소에 앉았습니다.

사람들은 영준이 아빠를 잊었습니다. 자이언츠는 기나긴 암흑기를 통과하는 중이었습니다. 출소한 영준이 아빠는 나이 서른에 공익근무요원이 되었습니다. 하루 근무가 끝나면 사직야구장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경기가 끝나면 야구장에서 쓰레기도 주웠습니다. 죗값은 다 치렀습니다. 야구선수로서 최전성기의 나이를 야구 관중으로 보낸 영준이 아빠는 몸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반드시 돌아가야 했습니다. 야구로 지켜내야 할 게 많았습니다. 등번호도 없는 유니폼을 입고 훈련에 합류했습니다. 마침내 2008년, 4년을 기다린 그라운드에 보통의 선수들이 은퇴를 준비할 서른셋의 나이로 영준이 아빠는 신인처럼 복귀했습니다. 그해 4월, 연장전에서 삼성 오승환을 상대해 때려낸 기적의 역전 끝내기 2루타는 조성환 야구인생 후반전의 신호탄이었습니다. 그해 여름, 잊혀진 야구선수였던 병역법 위반의 전과자 영준이 아빠는, 자이언츠의 주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이스터 자이언츠의 만화 같던 3년을 함께 일궈갑니다.

야구장으로 출근하는 성실한 직장인

타격 3위와 8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로, 더 이상 화려할 수 없는 복귀에 성공한 다음해 2009년 4월. 상대 투수가 던진 공이 영준이 아빠의 얼굴을 강타했습니다. 영준이 아빠의 광대뼈가 박살나버렸습니다. 파괴되고, 돌아오는 것에 익숙해진 이 선수. 눈두덩이에 피멍이 든 채로 두려움을 숨긴 채 2개월 만에 다시 타석에 섰습니다. 1년 뒤 가을, KIA 타이거즈 윤석민의 실투가 영준이 아빠의 헬멧을 다시 맞췄습니다. 누가 봐도 실투였습니다. 고의가 아님은 영준이 아빠도 알고, 자이언츠 팬들도 다 압니다. 그러나, 저 남자, 영준이 아빠가 어떤 공포와 싸우고 있는지를 알기에 자이언츠 팬들은 윤석민을 원망했습니다. 그 남자의 머리는 자이언츠 팬들에겐 성역이었습니다.

올해 영준이 아빠는 우울합니다. 지난 3년간 2번이나 타격 3위를 했던 리그 최정상급 타자의 슬럼프가 길어집니다. 사람들은 으레 그의 나이를 얘기합니다. 그러나 자이언츠 팬들은 조성환의 타율에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 저 선수의 타석은 2할4푼을 치는 그저 그런 나이 든 2루수의 타석이 아닙니다. 1할을 치든, 2할을 치든, 자이언츠 팬들에게 그것은 몇 번이나 파괴되면서 모두가 “끝났다”고 할 때마다 기어이 돌아온 우리 캡틴의 타석입니다.

영준이 아빠는, 힘든 시절 자신을 다시 받아준 구단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고. 여전히 연봉 협상을 가장 일찍 마무리하는 주전 선수 중 하나입니다. 이미 고인이 된 임수혁 선수의 아내에게 아직도 연락을 하는 유일한 야구선수입니다. 지난겨울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팬의 장례식장을 3일간 지킨 선수입니다. 이것이 조성환이 캡틴인 이유입니다. 야구는 누구든 잘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나 캡틴이 되는 건 아닙니다. 조성환은, 박정태 이후의 시대를 짊어질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직업으로 지켜내야 할 게 많은, 야구선수라는 직업을 가진 훌륭한 직장인입니다. 이젠 거의 연예인 같은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유독 영준이 아빠가 눈에 밟히는 이유는, 어쩌면 저 사람도 그저 나와 같이 하루하루 가족을 지키려고 달리고 있는 직장인이라는 동질감 때문입니다.

올해가 지나면 영준이 아빠는 자유계약선수(FA)가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대호의 계약에 관심이 쏠려 있지만, 저는 영준이 아빠의 재계약이 더 간절합니다. 영준이 아빠의 꿈은 한국시리즈에서 자이언츠가 우승한 날, 아빠의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영준이를 목마 태우고 흩날리는 꽃가루 속에서 그라운드를 달리는 것입니다. 먼저 운명을 달리한 선배와 팬에게, 자신으로 인해 아팠던 사람들에게 우승 트로피를 바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이언츠 모든 팬들의 꿈이기도 합니다. 그저 영준이 아빠가 오래오래 자이언츠의 2루에 출근해주길 바랍니다. 아직 우리는 조성환 이외의 2루수를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이언츠의 2루는 당신이 그렇게 부서지면서 기어이 지켜낸 땅입니다. 자이언츠의 2번은, 오직 당신만의 등번호입니다.

“네 아빠는 800만 팬의 캡틴이었어”

영준이에게. 네가 커서 네 아빠가 야구하던 시절을 찾아보면 올림픽 금메달에도, 아시안게임 금메달에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명단에도, 아빠의 이름은 없단다. 하지만 영준아,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네 아빠는 존경받는 직장인이자, 자이언츠 팬 800만 명의 캡틴이었어.

김준(사직아재) twitter.com/delalocha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