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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가 나라를 선택할 수 있다면

등록 2011-06-10 15:33 수정 2020-05-03 04:26
안현수 선수. 연합

안현수 선수. 연합

“안현수가 러시아 대표로 결승에서 우리나라 선수와 붙어도 안현수를 응원할 거예요.”

지난 4월 안현수 선수의 러시아 진출 소식에 한 네티즌은 이런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6월1일 안현수는 러시아로 떠났다. 아직 귀화 여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여러 인터뷰의 내용을 종합할 때, 어느 나라 국기를 달든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의 출전을 가장 우선순위로 여긴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는 2003∼2007년 쇼트트랙에서 5년간 세계 정상을 차지하고서도 무릎 부상 뒤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해 좌절해야 했다. 지난해 소속팀이 해체되고서는 홀로 훈련해왔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파벌 싸움 역시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얘기다. 그렇기에 안현수를 보내는 건 안타깝지만, 러시아가 그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공정한 기회를 준다면 그의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을 보내겠다는 사람이 많다.

많은 스포츠 선수들이 올림픽 금메달을 꿈꾼다. 나라를 빛내주기 바란다는 국민의 염원 이전에, 올림픽을 비롯한 세계대회에 출전해 최고의 선수들과 실력을 겨루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그런데 실력이 있으면서도 외부 문제나 환경 변화 때문에 기회를 얻을 수 없다면?

2008년 남자 양궁의 김하늘은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로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올림픽 본선보다 어렵다는 국내 양궁계에서 자신을 ‘어중간한 실력’이라고 판단했던 그는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려고 오스트레일리아양궁협회의 제의를 받아들여 국적을 바꿨다.

그런가 하면 단지 운동을 계속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귀화도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여자하키 국가대표 선수 ‘알리예바’와 ‘맘마도바’의 본명은 각각 ‘신미경’과 ‘강명순’. 이들을 포함해 모두 6명의 한국 선수들이 아제르바이잔으로 집단 귀화해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국내 여자하키 프로팀은 5개 실업팀밖에 없고 그나마 연봉이 2천만~3천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나 기업 차원의 후원이 다른 종목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계속 운동을 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아제르바이잔은 귀화 선수들에게 연봉 4천만원 이상을 약속했다.

대학 시절에 만난 한 럭비 선수는, 국내 실업팀이 너무 적고 하나뿐인 경기장도 없어질 위험에 처한 비인기 종목을 한다는 게 어떤 건지 담담히 말하곤 했다. “졸업하고 실업팀에 못 가면, 헬스 트레이너로 진로를 바꾸든가 일본으로 건너가든가… 그런데 발목 부상이 있어서요.”

만약 국가대표 선수가 나라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게 비난받거나 죄책감을 느낄 일이 아니라면 한국을 선택할 선수는 몇 명이나 될까? 2008년 8월 유코피아닷컴이 발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추신수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계속 뛰기 위해 미국 영주권을 획득한다면 여러분은 찬성하시겠습니까, 반대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96%가 찬성을 선택했다고 한다. 선수들의 귀화를 비난하거나 붙잡지 못할 만큼, 스포츠팬들의 민족주의가 옅어지고 선수 개인에 대한 공감치가 높아졌다고 볼 수도 있겠다. 어쩌면 팬들도 그냥 한국을 떠나고 싶은 건지도.

김지현 시나리오작가 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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