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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 기다리는 조광래 감독의 편지

대표팀 운영 방식 놓고 조 감독-이회택 기술위원장 갈등 국면… 기술위와 감독의 권한 및 책임 원칙 바로잡는 계기 삼아야
등록 2011-06-03 17:09 수정 2020-05-03 04:26
조광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1월11일 카타르 도하 알가라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안컵 C조 한국 대 바레인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전술을 지시하고 있다. 조 감독은 대표선수 차출 등에 대한 기술위원회와 대표팀 감독 사이의 권한관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연합

조광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1월11일 카타르 도하 알가라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안컵 C조 한국 대 바레인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전술을 지시하고 있다. 조 감독은 대표선수 차출 등에 대한 기술위원회와 대표팀 감독 사이의 권한관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연합

조광래 감독은 편지 쓰기를 좋아한다. 중요한 결정이나 의사를 전달해야 할 때는 반드시 편지를 쓰고, 또 그것을 프린트해 전달해왔다.

2009년 8월, 잉글랜드 볼턴에 입단하게 된 이청용이 인사차 찾아왔을 때 조 감독은 의례적인 격려 대신 “축구는 머리로 하는 게임이다.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고 머리를 써야 한다. 그러면 지성이보다 더 성공할 수 있다”는 편지를 써서 건넸다. 지난 1월에는 기성용 선수의 생일을 맞이해 “성용아, 대표 선수 오래하려면 단디(단단히) 해라”라는 구수한 사투리의 친필 편지를 건넨 적 있고, 아시안컵을 앞두고 박주영을 주장으로 선발한 뒤에는 취재 기자들에게 그 이유를 밝히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아부다비에 입성한 뒤에는 대표팀 선수단 전체를 향해 편지를 써서 일일이 모든 선수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대표팀 운영 원칙은 무엇입니까?”

그가 편지를 애용하는 까닭은, 기본적으로 직접 쓴(그리고 프린트해 봉투에 넣어 전달하는) 편지가 좀더 진심을 곡진하게 전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말은 언제든지 변주되거나 왜곡되거나 제3자에 의해 달리 해석될 수도 있지만, 정확히 기록된 글은 그런 위험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 언젠가 기자들이 ‘선수들의 답장은 없었느냐?’고 물었는데, 조 감독은 “숫기가 없는지 아직까지 답장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누군가 그에게 답장을 해야 한다. 그런 상황이 발생했다. 지난 5월23일, 조 감독은 ‘국가대표팀 운영에 대한 질의’라는 제목의 공개 편지를 작성하고 이를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이 문건의 끝부분에 조 감독은 “기술위원장의 공식적인 답변을 검토한 후 본인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고민할 것”이라고 표현했으므로 이 위원장은 어떤 형태로든 답장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난 2월16일,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대표선수 차출에 관한 기본 원칙을 재확인했다. 그 핵심은 ‘각급 대표팀에 공통으로 속한 선수는 A대표팀에 먼저 배정한다’는 것. 이 원칙의 재확인이 필요했던 것은 세대교체가 진행 중인 A대표팀의 젊은 주축 선수들(지동원, 윤빛가람, 구자철 등)이 올림픽팀과 청소년대표팀에 겹치기 때문이다. 올해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과 2012년 런던 올림픽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그리고 U20 청소년 월드컵이 열린다. 이에 따른 크고 작은 평가전도 열린다.

기술위가 지난 2월 차출의 원칙을 재확인한 것은 수많은 경우의 수를 대비해 대원칙의 범위 안에서 슬기로운 변주를 도모하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주제를 벗어난 변주곡이 곧 잇따랐다. 그 당사자가 이회택 기술위원장이다. 그는 조 감독을 “개인적으로 4~5번은 만나” 올림픽팀의 홍명보 감독을 도와주라고 말해왔다고 스스로 밝혔다.

이 점을 복기해보자. 우리 축구의 ‘특수성’, 그러니까 올림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나 병역 혜택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세계 축구의 급변하는 흐름에서 올림픽은 그리 비중 있는 대회가 아니다. 국제축구연맹은 각종 A매치 및 월드컵 대회에서의 선수 차출은 의무 사항이지만 올림픽은 예외로 제쳐놓고 있다. 올림픽에 무게를 두고 에너지를 집중하는 나라도 많지 않다. 올림픽을 통한 병역 혜택은 우리 현실에서는 중요하지만, 그건 그 문제대로 해결할 일이지 A대표팀과 직접적으로 연관해서는 곤란하다.

이런 판단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우리 축구계에서는 올림픽팀이 일정한 비중을 갖고 있으므로 앞서 언급한 대원칙을 보완하거나 그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올바른 해법이다. 그런데 이 위원장이 조 감독을 만나서 ‘힘이 실린’ 부탁을 한 것이다. 무리수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권한’으로 변주된 ‘건의’ 기능

결정적 상황은 지난 5월9일 벌어졌다. 기술위가 “지동원·구자철·김보경은 6월1일 올림픽팀에서 경기를 하고, 홍정호·김영권·윤빛가람은 처음부터 대표팀에 합류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위원장은 “조 감독이 말을 듣지 않아 기술위를 열어 일부 선수를 조정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이는 크게 세 가지 문제를 야기했다. 우선, 국제적인 차출 기준과 어긋난다. 기술위가 구자철 선수를 올림픽팀에 우선 배정했지만, 소속팀 볼프스부르크는 구자철의 올림픽팀 차출에 분명히 반대했다. 이는 볼프스부르크의 권리다. 일본의 세레소 오사카 소속인 김보경도 마찬가지다. 이 위원장의 조치나 조 감독의 양해와 무관하게 올림픽팀 차출에 관해서는 무엇보다 소속 클럽의 의견이 절대적이다.

다음으로, 기술위가 감독의 견해와 무관하게 선수들을 배치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위원장은 “2004년부터 기술위원회를 맡아왔다. 그 당시부터 선수 선발의 권한은 가지고 있지만 대표팀 감독을 존중하는 의미로 모든 의견을 수용했다”고 말했다. 축구협회 정관에 따르면 ‘기술위원회의 기능’은 선수 선발과 관련된 업무의 ‘검토 및 건의’라고 적시돼 있다. 이번 사태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조영증 기술교육국장(현재는 황보관 전 서울 FC 감독)은 ‘포괄적인 측면’이라고 설명했으나, 이 위원장은 ‘검토 및 건의’를 명백하게 ‘선발 권한’이라고 표현했다.

양쪽의 다툼을 떠나서, 이처럼 유권해석이 가능한 어휘상의 공백을 갖고 있다면 이 기회에 정관을 고쳐서라도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어떤 방향으로? 이 위원장의 확신대로 기술위가 2004년부터 선수 선발에 권한을 갖고 있다면 이는 세계적인 축구 흐름에 역행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악습의 가능성을 아예 열어놓는 셈이다. 그의 말대로 2004년 이후 대표팀 감독은 코엘류, 본 프레레, 아드보카트, 베어벡, 허정무 등 숱하게 바뀌었다. 주어진 역할을 다 마친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중도에 경질됐다. 그 과정에서 늘 발생한 문제가 ‘선수 선발’이었고 그 결과에 따라 감독들은 책임을 지고 경질당했지만, 오래전부터, 적어도 2004년 이후로 기술위원회와 그 장은 바위처럼 굳건하다. 이 위원장은, 기술위가 권한은 행사했으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아왔다고 스스로 증언한 셈이 되었다.

‘홍명보 밀어주기’에 조력하라?

마지막으로 결정적 문제는 올림픽팀의 홍명보 감독과 관련한 복합적인 관계다. 오랫동안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홍 감독의 위상에 관한 문제가 이번 사태로 수면 위로 드러나고 말았다. 청소년대표팀을 거쳐 올림픽팀을 맡고 있는 홍 감독이 차기 대표팀 후보군 중에서 유력한 선두주자임은 축구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과정에서 허정무 감독이 대회 직후 감독 사임을 수차례 밝힌 일이나, 이후 꽤 많은 지도자들이 하나같이 감독직을 고사한 까닭이 대체로 홍 감독의 무시 못할 위상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프로팀 경력이 전무한 홍 감독으로서는 올림픽에서 큰 성적을 내야 하는데, 이 때문에 협회의 일부 고위층이 무리하게 조력하고 있다는 축구계의 여론이 이번 사태로 확인된 셈이다. 전후 맥락을 고려할 때, 이 위원장은, 그리고 대한축구협회는 이번 기회에 기술위의 기능과 감독 권한, 그리고 양쪽의 책임에 대해 분명한 원칙을 재확인해야 한다.

정윤수 스포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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