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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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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숙적의 대결로 잠 못 이룰 새벽


스페인 국왕컵, 유럽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2차전 등 세기의 대결 앞둔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등록 2011-04-22 17:09 수정 2020-05-03 04:26

“모두가 FC바르셀로나를 두려워한다. 그들은 무적의 팀이라는 묘한 아우라를 갖고 있다.”
누구의 말인가. 유럽 어느 리그 하위팀 감독의 한탄인가, 잉글랜드 명해설가 레이 허드슨의 평가인가, 그도 아니면 지구 반대편 극동아시아에서 밤잠을 지새우는 어느 축구 마니아의 추앙인가. 아니다. 다름 아닌 퍼거슨, 바로 그렇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은 지난 3월13일 영국 일간지 온라인판에서 “이 때문에 상대팀들은 그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존경심을 갖게 되고 그러다 보니 경기가 제대로 풀릴 리 없다”고 말했다.

무적의 아우라 vs 명성의 지략

전통의 명문 구단 FC바르셀로나(이하 바르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찬사와 동경은 축구인이라면 이제 부정할 수 없어져 버렸다 하더라도, 천하의 퍼거슨이 이토록 전율에 가득 찬 경외감을 표현한 까닭은 무엇일까. 최근 들어 바르샤가 그 자신들의 상상마저 초월하는 경기력을 자국 리그와 유럽 챔피언스리그(이하 챔스)에서 우아하게 펼쳐 보였기 때문이다.
바르샤는 이번 시즌 자국의 정규리그에서, 한순간도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는 숙적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를 가볍게 눌렀다. 스코어를 알고 싶다고? 글쎄, 당신이 만약 레알에 조금이라도 애정이 있다면 5 대 0의 점수 차이 때문에 그 사랑이 식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려해야 한다. 챔스에서는 또 어떤가? 만약 당신이 잉글랜드 프리미어의 아스널 팬이라면 도저히 알고 싶지 않은 소식이 될 것이다. 바르샤는 아스널과의 챔스 16강 2차전 두 경기를 가볍게 이겼는데, 두 경기 합산 점수는 3 대 1.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찔하다. 그 두 번째 경기에서 아스널은 수비만 하다가 90분을 날려버렸다. 수비만 했다고? 사비가 포르셰 자동차처럼 질주하고 이니에스타가 람보르기니 자동차처럼 대각선으로 종횡무진하고 메시라고 했던가, 겨우 23살의 작은 청년이 페라리 자동차처럼 아스널의 수비를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해도 90분 동안 예닐곱 번은 반격을 했을 터고 두세 차례는 슛을 날리지 않았을까? 천만에. 아스널은 그 경기에서 전·후반 내내 단 한 번도 슛을 날리지 못했다.
바르샤는 아스널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유럽 축구의 한자락은 너끈히 펴고 접을 만한 명문 아스널은 단 한 번도 슛을 날리지 못했다. 흡사 아이스하키처럼 무릎 아래로 섬세하게 패스 플레이를 전개해나가는 공격 지향의 아스널 선수 11명이 전원 수비를 하다 끝나버린 경기였다. 바르샤의 과르디올라 감독은 “우리는 아스널이 3번 이상 패스를 연결하지 못하게 막았다”고 말했다.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은 말했다. “상대는 모든 카드를 들고 포커게임을 했다. 우리는 무시무시한 팀에 깨졌다.” 이제 천하의 퍼거슨 감독이 “모두가 바르샤를 두려워한다”고 말한 까닭을 이해할 것이다.
예외는 있다. 거친 대서양을 실개천 삼아 대항해 시대를 개척한 포르투갈의 후예 조제 모리뉴. 선조들처럼 잉글랜드의 첼시와 이탈리아의 인터밀란을 거쳐 은하계에서 가장 화려한 명성을 자랑하는 레알의 지휘봉을 잡은 이 패셔니스타(틀림없이 그에게는 무채색의 비밀을 간파한 의상 코디가 따로 있을 것이다) 감독은 지난해 11월 바르샤에 무려 0 대 5로 대패를 당했음에도 여전히 바르샤의 전술을 대서양 항로 보듯 꿰뚫고 있다고 자신한다.
깊이 있는 통찰이라기보다는 비범한 감각으로 축구계의 현안에 나름의 메시지를 종종 던져온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는 최근 스페인 스포츠 전문지 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만약 클럽 구단주가 된다면 모리뉴를 선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모리뉴가 은하계에서 가장 세련된 옷차림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탁월한 철학과 지략과 전술로 선수들을 일순간에 장악하고(레알의 모래알 같았던 스타들이 바위로 변하고 있다) 매 경기 상대팀과의 심리전에서 우위를 점하며(바르샤의 과르디올라 감독은 모리뉴가 뭐라고 하든 대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권위적인 구단 사령부에 맞서 자신만의 축구 철학을 관철시키기(모리뉴는 레알의 막강 2인자 호르헤 발다노 단장을 원정 경기에 동행하지 않도록 요구했고 발다노는 다른 비행기편을 이용하는 정치력을 발휘했다) 때문이다.

지난해 11월30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캄프누에서 열린 2010~2011 스페인리그 라 리가 13라운드 레알 마드리드-FC바르셀로나의 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0대 5로 대패했다. 동료 사비 에르난데스(왼쪽)와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메시 옆에서 레알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오른쪽)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11월30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캄프누에서 열린 2010~2011 스페인리그 라 리가 13라운드 레알 마드리드-FC바르셀로나의 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0대 5로 대패했다. 동료 사비 에르난데스(왼쪽)와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메시 옆에서 레알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오른쪽)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초호화 캐스팅 스펙터클 4부작의 시작

이제 레알과 바르샤는 유럽 축구사에 두 번 다시 없을 네 차례의 대회전을 벌인다. 20세기 역사(특히 스페인 내전 시기의 축구 상징 전쟁)가 농축된 바탕 위에 21세기 10년 경쟁사가 겹쳐진 상황에서 두 팀은 ‘엘 클라시코 4부작’을 쓰게 된 것이다. 시즌 48골을 달리는 바르샤의 메시와 40골을 기록 중인 레알의 호날두, 누구라도 부러워할 시즌 6관왕의 주인공 과르디올라 감독과 챔스 우승 2회의 대기록을 가진 모리뉴 감독, 그리고 강화된 금연법 때문에 다음 시즌부터는 경기장 안에서 흡연을 할 수 없게 된 바르샤 팬들과 소속 선수들의 사기를 위해 그토록 좋아하던 미모의 여가수 샤키라의 노래를 홈구장에서는 틀지 않기로 한(샤키라의 연인이 바르샤의 수비수 피케다) 레알의 열성팬들이 맞붙는, ‘엘 클라시코’ 4부작.

그 1탄으로 스페인리그 라 리가의 두 번째 매치, 양 팀은 레알의 홈구장에서 한국 시간으로 4월 17일 맞붙었다. 2탄은 코파 델 레이(스페인 국왕컵) 결승전. 한국 시간으로 4월21일 새벽 4시30분이다. 3탄은 운명의 챔스 준결승 1차전으로 우선 레알의 홈구장에서 한국 시간 4월28일 새벽 3시45분에 열리는데, 8시즌 동안 챔스에서 4강 진출 4회, 우승 2회라는 대기록을 세운 모리뉴가 전대미문의 시즌 6관왕을 기록한 과르디올라와 맞붙는다. 참고로 지난 시즌의 챔스 준결승에서는 모리뉴 감독이 이겼다. 그리고 그 마지막 4탄, 즉 챔스 준결승 2차전은 한국 시간으로 5월4일 새벽 3시45분에 바르샤의 홈에서 열린다.

일부러 ‘한국 시간’을 특정해 써보았다. 서로 기억하자는 권유다.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파나비죤호화캐스팅70밀리스펙터클 4부작’이다. 언젠가 어느 배우가 그랬던가. 왜 유럽은 축구를 새벽에 한단 말인가. 당신이 진정한 축구 애호가인지 판정할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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