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살면서 평생 동안 해야 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사춘기 시절에 제대로 지랄을 하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 하게 되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라는, 일종의 ‘사춘기 자녀 대처법’ 정도 되겠다. 김두식 교수의 책 에 나온다. 내게는 ‘운동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 같다. 소싯적에 하지 못한 운동의 총량을 지금이라도 채우고 말겠다는 식으로, 어릴 때 두 번의 큰 부상으로 접어야 했던 야구를 미친 듯이 하고 있다.
야구공과 배트를 책 속에서만 구경하던 시절, 화로 속 연탄재를 퍼내던 국자 모양 도구의 앞대가리가 떨어져나간 긴 쇠꼬챙이로, 어른 주먹만 한 고무공을 치면서 야구를 배웠다. 난 투수, 형은 타자. 삼진을 당한 형이 홧김에 던진 꼬챙이가 땅에 튕기면서 정면으로 날아왔다. 피할 틈도 없이 두 눈 사이 코 중간에 맞았다. 마취제도 없는 시골 병원에서 몇 바늘을 꿰맸다. 서울로 전학을 온 뒤 다시 도전했다. 이번엔 포수. 타자의 배트에 스친 공이 또 두 눈 사이로 날아들었다. 그날 이후 난 야구를 접어야 했다.
야구와의 인연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지난 10월 말 목·금·토 3연전에 대해 고백하기 위함이다. 자유로 방면 서울 강변북로를 지날 때마다 난지야구장을 보면서 ‘난 언제 꿈의 구장에 서보나’ 했었다. 평일에도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는 구장이다. 예약해둔 팀이 취소하면서 한겨레신문사 야구팀인 ‘야구하니’에 기회가 왔다. 평일 오전에 경기가 가능할까 싶었는데, 목요일엔 자체 청백전을 할 정도로 선수들이 모였다. 금요일엔 다른 팀(부끄부끄)을 불러 게임을 했다. 철야를 하고 곧장 야구장으로 달려온 선수, 전날 밤을 새워 다음날 일까지 끝내놓고 연차 휴가를 쓴 선수 등 다양했다. 날이 추워지면서 야구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감이 우리를 불러모았다. 어스름한 새벽 입김을 불면서 그랬다. 우리 미친 거 아냐? 나는 사흘 다 갔다. 목요일과 금요일이 마감인데도 사흘 동안 하루 분량의 잠만 자고 버티면서.
사상 초유의, 앞으로 있기 힘든 평일 ‘조기 야구’의 후유증으로 가슴에 푸를 청(靑)자가 새겨진 청와대팀과의 토요일 경기에서 야구하니들은 모두 부상과 근육통을 호소했다. 결과는? 사회인 야구에서 통하는 말로 “1점차로 아깝게” 졌다.
하지만 실력 덕분에 11월13일 내가 뛰고 있는 다른 팀 ‘비비언스’의 30:2 대승에 기여할 수 있었다. 야구하니에서 쌓인 승리에 대한 갈증을 비비언스에서 풀곤 했는데, 이렇게 적은 점수를 내주고 많은 점수를 벌기는 처음이었다. 나도 5타석 3안타로 타점 몇 개를 보탰다. 물론 이대규·정현석 선수의 홈런에 빛을 잃었지만. 수비는 짧게, 공격을 길게 하니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홈런타자 이대규가 쏜 탕수육과 자장면을 먹으면서 최환서 감독은 “선발 이대규와 마무리 정완의 호투와 실책 없는 수비진 덕분에 점수를 거의 내주지 않았다. 게임 내용이 좋았다”고 평가했다.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도 자장면을 쏘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했다.
김보협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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