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에 이어 또 프랑스의 마르세유를 방문했다. 레알 마드리드와 마르세유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서다. 현재 나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머물고 있는데, 밀라노와 마르세유를 잇는 새로운 항공 노선이 생겨 저렴한 가격으로 왕복할 수 있었다. 특히 항공사가 프로모션 행사를 할 때면 20유로(약 3만5천원)가량으로 2시간의 여행을 누릴 수도 있다.
마르세유에서 우연히 마르세유 팀과 같은 숙소에 묵게 됐다. 이 팀에는 이번 시즌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이적한 에인세가 있는데, 그는 우리나라와 월드컵 본선 같은 조인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그는 한국이 16강에 진출할 가능성은 있지만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팀 동료였던 박지성과의 한판 승부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며칠 전 만난 인테르밀란의 주장 사네티도 아르헨티나 출신인데, 그도 에인세처럼 한국의 16강 진출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한국 월드컵 16강’ 비관적 전망 내놓은 톱스타들가나 출신인 문타리는 서아프리카 더비인 나이지리아를 잘 알고 있는데, 가나조차 나이지리아를 이기는 것은 쉽지 않다고 했다. 나이지리아가 워낙 신체적으로 강해 한국으로서는 상대하기 벅찰 것이라는 말이 뒤따랐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전후해 한국과 가나는 두 번 맞붙었는데 모두 가나가 3-1로 이긴 바 있다. 전적으로만 보면 한국이 나이지리아를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기자 신분으로 인터뷰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눈 것이어서 더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유명 선수들이 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에 부정적인 반응이라니 조금 섭섭한 기분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섭섭함 못지않게 고마움과 반가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지단과의 만남이 그렇다. 마르세유 경기 직전에 레알 마드리드의 고문인 지단을 만났다. 그와는 지난 10월 방한 때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나와의 인연을 기억하곤 레알 마드리드의 칼데론 회장에게 소개해줄 정도로 친절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축구 여행에서 지단과 같은 톱스타한테서 따뜻한 겸손과 배려를 찾아볼 수 있다니 정감이 솟아났다.
다가오는 월드컵은 국가 대항전이라는 측면에서 최대의 축구 축제라고 불리지만, 이곳 유럽 챔피언스리그는 축구를 그 자체로 즐기는 재미가 있다. 온 유럽을 대표하는 팀들과 선수들의 땀, 그리고 수억 명의 팬들의 열기가 합해져 팀 간 대항을 하기에 그렇다. 게다가 유럽축구연맹(UEFA)의 노련한 대회 운용을 보면 정말 입이 딱 벌어진다. UEFA는 스폰서 유치와 중계권료, 입장료 등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데, 본선 조별리그에만 진출해도 710만유로(약 120억원)를 받고 우승 상금만 900만유로(약 153억원)니 그 엄청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UEFA가 축적해온 이런 선진적인 축구 마케팅 노하우를 볼 때면 부러움이 앞서기도 한다.
지난해 모나코에서 열린 슈퍼컵에서도 UEFA의 세심함을 엿볼 수 있었다. 슈퍼컵은 챔피언스리그 우승팀과 UEFA컵 우승팀의 경기로, 시즌 개막을 하는 UEFA가 주최하는 축제다. 당시에는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UEFA컵 우승팀인 제니트가 겨뤘다. 슈퍼컵은 UEFA컵 시상식과 조별 예선 추첨을 동반하기에 최고의 축구선수들과 유명 축구인들이 모두 참여하는 축제의 장이다. UEFA는 이들뿐만 아니라 그 가족도 모두 초대하고 최고급 호텔에 숙소를 마련하는 등 각별한 신경을 썼다. 덕분에 선수들은 휴가를 즐기는 기분으로 이 축제에 참여하고 있었다. 시상식 뒤에는 갈라파티가 열렸는데, 조별 예선에 진출한 모든 팀의 보도진과 스폰서가 참여해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자리가 됐다. 경기 직전에도 여러 행사를 마련하면서 중계권 파트너나 스폰서에게 각별한 신경을 쓰곤 한다. 심지어 조용한 파티를 위해 보트를 타고 이동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작은 것까지 세세히 신경 쓰는 세심함 덕분에 슈퍼컵이 축구 축제 중 가장 성공적인 발전을 한 게 아닌가 한다.
스폰서십은 기업 입장에서도 이득이 된다. 마르세유와 레알 마드리드 경기 전날, 스폰서들은 그들의 사업 파트너를 훈련장으로 초대해 호날두와 같은 슈퍼스타들의 훈련 장면을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처럼 챔피언스리그의 스폰서 기업이 파트너 회사의 경영진을 초대하면 비즈니스가 잘 풀린다고들 말한다. 축구에 열광하는 유럽 기업인에게 어필하는 방법으로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UEFA가 신경 쓰는 부분은 비단 스폰서십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미디어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기에 기자들에 대한 호의도 놓치지 않는다.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고 기자들이 인터뷰를 기다리는 ‘믹스트존’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첼시의 존 미켈은 믹스트존을 피해 버스로 들어갔다가 UEFA 직원에게 끌려나오는 수모를 맛봐야 했다. 막강한 UEFA의 힘은 선수들의 자존심마저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지만,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기자들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첼시의 존 미켈이 UEFA 직원에게 끌려나온 이유UEFA의 운영 방식을 보면 유럽에서 축구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UEFA가 얼마나 수요자 중심으로 사고하는지 알 수 있다. 유럽인에게 축구는 생활 그 자체이기에 UEFA 역시 팬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UEFA는 팬들의 욕구를 한곳에 모아 때로는 그라운드에서, 때로는 그 밖의 장소에서 그들의 열정을 축제로 승화한다. 축구가 곧 생활이고 생활은 나날이 축제로 이어지는 유럽의 축구 문화에서 축구팬으로서 오늘도 또 부러움을 느낀다.
글·사진 서민지 축구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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