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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훈의 ‘인생 3막’이 기대된다

유도와 K-1 잇따라 제패해 성공의 정점 오르고도 ‘세계 격투기 무대’라는 또 다른 도전 선택
등록 2009-05-16 10:56 수정 2020-05-03 04:25
추성훈. 사진 한겨레 자료

추성훈. 사진 한겨레 자료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다섯 살이 된 추성훈은 조만간 인생의 3막을 열어젖힌다. 오는 7월 미국에서 열리는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100회 대회가 그 무대다. 상대는 미국인 앨런 벨처. 188cm의 큰 키에 타격감이 좋은 선수다. 지난해 11월까지 일본 K-1의 ‘드림’ 무대에서 뛰던 추성훈은 올해 1월 UFC 진출을 전격 선언했다. 격투기계는 추성훈이 일본 무대에 잔류할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예측했다. 따라서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추성훈 인생의 1막은 유도 선수로서의 삶이었다. 2004년 격투기 진출 선언 전까지 그의 삶의 전부는 유도였다. 일본의 유도 명문 긴키대학을 나온 뒤 한국 국가대표가 되겠다며 부산시청 소속으로 뛰었다. 재일동포인데다 국내 유도계를 꽉 잡고 있는 용인대 출신도 아닌 그는 차별에 시달렸다. 유도계에서 그는 주류와 비슷한 것 같지만 어딘가 다른 ‘이방인’이었다. “나보다 약한 선수가 우승하는 일이 계속되다 보니 한국에서는 운동하기 싫다”는 울분에 찬 고별사를 남기고 그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일장기를 달고 뛴 2002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그는 보란 듯이 금메달을 번쩍 치켜든다.

한국·일본 양쪽 핍박받으며 실력으로 승부

격투기 진출을 선언하면서 2막이 펼쳐졌다. 추성훈은 유도 선수 출신으로서 격투기로 전향한 다른 한·일 선수들과는 다른 경기 능력을 보여주면서 성공적인 안착을 이어나갔다. 신체적 ‘스펙’부터가 달랐다. 두꺼운 가슴과 많은 근육량을 가진 이두근·삼두근, 적당히 발달한 가슴근육과 웬만한 보디빌더 뺨치는 배근육까지. 게다가 대개의 유도 출신 선수들이 가장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타격 능력에서도 추성훈은 빈틈을 많이 보이지 않았다. 경기 운영 능력도 빼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일본 격투기 무대에서도 그는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이어갔다. 재일동포에 대한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이 그 바탕이었다. 결정적 계기가 된 건 2007년 사쿠라바 가즈시와의 대결이었다. 프로레슬러 출신으로 일본 격투기 시장의 초반 흥행을 이끈 사쿠라바는 ‘국민 영웅’이었다. 추성훈은 경기 중반 화끈한 승리를 거뒀으나 경기 뒤 사용이 금지된 피부크림을 바른 사실이 드러나는 바람에 거센 비난에 시달렸다. 한국계 일본인이 국민 영웅을 꺾은 데 대한 일본인의 분노에 크림 사건이 기름을 끼얹은 셈이다.

한동안의 침묵 뒤 재기에 나선 그는 한 번의 승리를 챙긴다. 그리고 맞붙은 일본의 인기 선수 미사키 가즈오와의 경기에서 또 한 번 사건이 일어난다.

추성훈은 경기 도중 미사키에게서 불의의 일격을 맞고 쓰러졌다. 그 순간 미사키의 발이 날아들었다. 심판은 미사키의 승리를 선언했다. 추성훈이 일본 선수에게 처음으로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본 일본 팬들은 열광했다. 그 자리에서 미사키는 악수를 청하는 추성훈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치며 추성훈을 조롱했다. 추성훈에게는 야유가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 경기 역시 미사키가 상대방의 두 손과 두 발이 링에 닿은 상황에서 발로 차면 안 된다는 경기 규칙을 어긴 것으로 나중에 판정됐다. 사쿠라바·미사키와 싸운 두 경기는 모두 무효경기 처리됐다. 지금까지 15번의 전적을 가진 추성훈이 12승1패를 기록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 가운데에도 추성훈은 지난해 최고의 황금기를 보냈다. 일본에서는 일본인 선수의 ‘숙적’으로, 한국에서는 터프함과 섹시함을 고루 갖춘 선수로 각광을 받았다. 상업광고도 여러 편 찍으며 인기와 돈을 한손에 거머쥐었다. 지난 3월에는 이라는 제목의 자서전도 펴냈다. 경기 때마다 태극기와 일장기를 양쪽 팔에 붙이고 나오는,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에 환영받고 혹은 냉대받는, 자신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 제목이다. 야노 시호라는 인기 모델과의 결혼도 발표했다.

추성훈은 오는 7월 인생의 3막1장을 연다. 한·일 양국의 민족 감정 틈바구니에서 이방인이었던 그가 무대를 옮겨 미국 자본이 여는 대회에서 미국인과 첫 상대를 한다는 사실이 그의 개인사를 아는 격투기 팬들을 흥분시키는 까닭이다. 더구나 UFC는 세계 격투기 시장에서 일극체제를 열어가고 있는 그야말로 최고의 무대다. 여기서 맞붙어야 하는 상대들은 ‘도끼 살인마’ 반델레이 실바를 비롯해 미들급 챔피언 안데르손 실바 등 세계 최강이다. 추성훈으로서는 그동안 약한 선수만 골라서 상대한다는 일각의 비판을 넘어설 절호의 기회를 만난 셈이다. 동시에 자칫 연패의 수렁에 빠지기라도 하면, 격투기 인생에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

새로운 무대 적응을 위한 숙제도 많아

그가 풀어야 할 숙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새 경기장 적응 문제가 있다. UFC 경기장은 고무줄이 둘러쳐진 사각의 링이 아니다. 철그물이 둘러쳐진 8각형 모양의 ‘옥타곤’이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싸울 때는 링을 이용할 일이 그다지 없었지만, UFC 선수들은 선 채로 타격할 때나 상대방을 그라운드로 몰아가는 과정에서 이 철그물을 유용하게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공격을 당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 일본 K-1에서 뛸 때는 팔꿈치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게 금지된 반면 UFC는 이를 허용한다. 그동안 다소 단조롭다는 지적을 받아온 타격에서도 다양한 연속 공격 형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유도복 깃 끝을 활용해 상대방을 조르는 ‘깃조르기’가 그의 주특기이지만, UFC에서는 도복을 비롯한 윗도리 착용이 금지된다. 그라운드에서 승부를 마무리할 또다른 한 방을 보완해야 한다.

유도 선수에서 격투기 선수로 진화할 때 보여준 추성훈의 적응 능력이라면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성싶다. 그의 이미지 자체가 끊임없는 ‘진보’ 아닌가. 오는 7월 그가 보여줄 ‘추성훈 3.0’이 기다려진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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