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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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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법, 그 애증의 관계


술을 통제하면서도 세금 때문에 이용해온 지배층…
그나마 주세법 완화됐으니 이젠 다양한 술 좀 나오려나
등록 2009-12-09 16:11 수정 2020-05-03 04:25
‘매생이淸막걸리’. 김학민

‘매생이淸막걸리’. 김학민

지구상 대부분의 나라에서 술과 법은 늘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그냥 내버려두자니 백성들이 알코올에 항시적으로 노출될 위험이 있고, 확 나사를 조이자니 백성들의 일상적인 기호품을 지나치게 통제해 폭동이 일어날까 두려웠다. 그래서 백성들의 안녕과 건강을 위하는 척 적절하게 술의 공급과 소비를 통제·관리하려던 것이 대개 나라들의 정책인데, 소비 통제는 이런저런 이유로 내려지던 금주령이었고, 공급 통제는 술의 제조와 유통에 대한 면허제 또는 허가제였다. 그러나 사실 술이 누구보다도 더 필요한 것은 백성이 아니라 나라였다. 중세 이후 근대국가에 이르기까지 많은 나라들이 상당 기간 국가의 금고를 주세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조한 자가 제조장에서 술을 출고하거나, 유통하려는 자가 외국산 술을 수입한 때에는 납세 의무가 발생하므로, 제조업자거나 유통업자거나 술의 공급자는 주세의 납부 의무를 진다. 그런데 주세는 소비자인 술꾼이 술의 제조원가에 부가된 간접세를 부담하는 것이고, 공급자는 출고된 술의 수량과 가격을 표준으로 매겨진, 소비자가 한 병 한 병 마셔서 전가해준 주세를 대신 납부할 뿐이다. 그러므로 소비자는 주세의 그물망에서 전혀 빠져나갈 수 없고, 주세를 효율적으로 거두려면 공급자만 관리·통제하면 된다. 이때 공급자로서 제조의 총총한 그물망을 뚫으려는 시도가 밀주이고, 유통의 총총한 그물망을 뚫으려 한 것이 가짜 양주다.

양조의 독과점은 ‘하늘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서 시작됐다. 중세의 수도원들은 대부분 포도를 재배하거나 곡식을 심어 와인을 만들거나 맥주를 빚었고, 곧 막대한 금력과 인력으로 증류주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했다. 술은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물’로 목자나 양떼 모두에게 소중한 피조물이었지만, ‘하늘 사업’의 명분과 주세에 눈독을 들인 봉건영주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공급은 목자, 소비는 양떼’의 구조로 급속히 정리됐다. 일본에서도 사원에서 주조업이 시작돼 막부 정권의 비호 아래 전문적인 양조업으로 발전했다. 왕실에 밀착된 고려시대 사찰은 막대한 전답과 노비를 이용해, 이러저러한 수익사업 외에 술까지 독점적으로 주조해 백성에게 팔기도 했다.

‘하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주조 독점은 상공업의 발달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무너졌다. 우리나라도 불교가 압박을 받게 된 조선시대가 되자 더 이상 사찰에서 술을 주조하지 못하게 되고, 술이 제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유교사회 조선에서는 당연히 ‘만민 자유 주조’가 허용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916년 현재 조선에는 12만 개 이상의 양조장이 있었다. 일제는 주세령을 발포해 양조장들을 대폭 정비하는 한편, 가정에서 소비하는 술에 대해서는 이른바 ‘자가용 면허’를 내주었는데, 그 수가 37만 건이었으니 박목월이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고 읊을 만도 했다.

일제는 조선인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과도기적으로 운영했던 ‘자가용 면허’를 10년도 안 돼 폐지해 민간의 양조를 엄금하는 한편, 전국의 양조장을 군별로 4천여 개로 통폐합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주세 확보에 나섰다. 일제가 술마다 세금을 붙여, 주세는 총독부 전체 예산의 30%에까지 이르렀다. 해방 이후 역대 정권은 술에 관한 한 일제의 제도를 그대로 계승·발전시켰다. 양곡 부족에 대처하고, 국민 건강을 고려하며, 주류업을 육성하기 위해 민간의 양조를 금하고 주조 면허를 엄격히 통제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세수 확보에만 진력한 것이다. 해방 이후 50년간 술 생산량이 10배 이상 늘어났으니, 주류업은 육성됐는지 모르지만 국민 건강은 무슨 국민 건강?

주조 면허, 제조할 술의 종류, 제조 방법, 원료 및 첨가물까지 법으로 세세하게 제한하던 주세법은 김영삼 정권 때 많이 완화됐다. 그리하여 기존 주조장들에서도 새로운 술, 특정한 풍미를 나게 하는 기능성 술의 개발이 유행했고, 100여 년 만에 민간에서도 가양주 전통을 복원시킬 수 있었다. 그중 수출은 물론 국빈 만찬 때 건배주도 되고 기내식에도 따라 나오는 막걸리의 약진이 볼 만하다. 얼마 전 우연히 일종의 기능성 막걸리인 ‘매생이淸막걸리’를 맛보았다. 부산에서 매생이로 건강식품을 만드는 기업(엔존·051-329-8441)을 운영하는 김영진씨가 개발한 막걸리로, 달지도 시지도 않은 시원한 맛에 매생이의 파르스름한 빛이 바다의 냄새를 물씬 풍기게 한다.

김학민 음식 칼럼니스트 blog.naver.com/hakmi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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