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협의회, 한가족협의회, 한사랑협의회. ‘비노조’를 경영전략으로 삼는 삼성은 계열사마다 이름이 조금씩 다른 노사협의회를 두고 있다.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근참법)에 규정된 노사협의회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참여와 협력을 통하여 노동자의 복지 증진과 기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구성하는 협의기구”로 규정한다. 그러나 지난 2월 <한겨레21>이 입수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 1심 재판기록과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 1심 판결문 등을 보면, 삼성은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출에 개입하고, 정상적으로 설립된 노조(이른바 ‘진성노조’)를 와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왔던 것으로 확인된다. 노사협의회가 ‘비노조 전략’의 방패막이가 된 것이다. 무노조 사업장에서 노동자 권리 보호를 위해 ‘노사협의회 강화’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삼성처럼 사용자가 악용할 경우 노사협의회는 무용지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노사협의회를 노조를 대신할 존재로 관리해왔다. 2009년 삼성그룹 노사전략에는 ‘비노조 유지’를 위해 “노사협의회 대표성 및 위상 강화”가 주요 실행 과제로 적혀 있다. 근참법은 30명 이상 사업장에 노사협의회 설치 의무를 부여한다. 근참법에 따라, 노사협의회는 사용자 쪽 위원과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로 선출된 근로자위원이 같은 수로 구성된다. 생산성 향상과 성과 배분, 안전·보건 등 건강 증진, 인사·노무 관리 제도 개선 등을 노사협의회에서 협의할 수 있도록 한다.
“유사시 친사 노조로 전환할 수 있도록…”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의 노사협의회 운영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30명 이상 사업장 480곳 가운데 노사협의회를 운영하지 않는 곳은 243곳으로 절반이 넘었다. 이에 견주면 삼성이 노사협의회의 대표성과 위상을 강화하겠다는 것을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노조가 없더라도 노사협의회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관한 의견을 수렴할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2011년 7월부터 복수노조 설립이 가능해질 것에 대비한 삼성 내부 문건을 보면, 삼성이 왜 노사협의회를 강조해왔는지 파악할 수 있다. 2010년 그룹 노사전략은 “노조 설립 예방 가능 수준의 노사협의회 구축”이 목표로 제시됐고, 2012년 ‘S그룹 노사전략’에는 ‘노사협의회 전략적 육성 및 활용’이라는 제목 아래, “노사협의회가 대표성이 있어야 노조 설립을 저지할 수 있는 명분과 논리적 근거를 확보할 수 있고, 노조 설립시 대항마로 활용”한다거나 “유사시 친사 노조로 전환할 수 있도록 마인드 및 역량 제고”라는 계획이 적혀 있다. 노사협의회를 노조 와해 수단으로 활용할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그룹의 노사전략에 따라 계열사도 이에 맞춰 움직였다. 2011년 삼성전자 노사전략은 “전략적 노사협의회 위상 강화”라는 목표 아래 “평상시 대사원 활동 활성화를 통해 위상을 강화, 비상시 노조 준대항마로서 역할을 수행”을 기본 방침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전 사업장 단계적 (근로자)위원 증원과, 후보 단독 출마 때 찬반투표, 우수 자원 후보군 발굴 등”을 세부 목표로 정했다. 삼성전자는 근로자위원을 전략적으로 선출한 뒤 “비노조 신념화·조직관리 중요성에 대한 특별교육”을 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노사협의회는 2011년 ‘복수노조 대응태세 점검’의 주요 항목이 됐다. 그룹 미래전략실이 계열사 대응태세 평가용으로 삼은 ‘체크리스트’에는 노사협의회 관련 항목이 무려 28개나 된다.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출의 대외적인 명분을 강조하기 위해, 위원 선출 때 단독 출마보다는 경선에 더 많은 점수를 줬고, 단독 출마라도 찬반투표를 한 곳에 안 한 곳보다 점수를 더 줬다. 선거관리위원회를 운영하는지, 선거 유세를 하는지 등도 평가 대상이 됐다. 임금협상을 실질적으로 해야 높은 점수를 받는 반면, 그렇지 않을 때는 0점 처리됐다. 근참법에선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을 비상임·무보수로 하도록 하지만, 삼성은 위원에게 수당·경조금·간담회 비용을 주는지를 따져 지급하지 않는 경우 점수를 깎았다.
절차를 지켜 근로자위원을 선출해 노사협의회가 대의성을 확보하더라도, 회사의 심기를 거스르는 사람이 당선되면 안 됐다. 그래서 삼성은 위원 후보군 관리 실적과 차기 후보군 관리 계획, 위원 육성 계획 수립 여부를 확인해 점수를 매겼는데 28개 평가 항목 가운데 가장 높게 배점했다. 이 때문인지 2012년 삼성SDS의 노사전략에도 “협의회 (위원) 선출 전 우호인력 후보군 발굴 및 출마 유도”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우호인력을 근로자위원으로 선출하려 한 것이다. 삼성은 노조가 설립되면, 노조를 거부할 수 있는 ‘우군화 인력’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했다. 노조가 설립되면 가입해 노조 동향을 파악하는 등의 업무를 하는 일종의 간첩인 ‘VIP 인력’을 미리 만들 정도였다. 노사협의회 역시 ‘우군 인력’으로 키워왔던 것으로 보인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 대항노조 설립
삼성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을 정상적으로 설립된 ‘진성노조’를 와해할 목적으로 활용한 예가 바로 삼성에버랜드다.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는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2011년 7월1일을 한 달 남짓 앞둔 6월, 노조 설립에 관한 문건들이 사내에서 발견되고 미행·사찰 등을 통해 조장희 현 금속노조 삼성지회 부지회장이 노조를 설립할 것이 명백해지자, 계획대로 ‘대항노조’를 만들기로 한다. 이 대항노조(에버랜드 노동조합) 설립 초기 조합원 4명 가운데 3명이 근로자위원을 했던 이들이다.
에버랜드 노조는 회사가 시키는 대로 6월20일 노조 설립 신고를 한 뒤, 열흘 만인 6월30일 단체협약 체결까지 완료했다. 복수노조 시행 뒤에는 교섭대표노조가 아닌 노동조합의 경우 단체협약 유효기간 2년 동안 교섭 요구를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체결을 서두른 것이다. 그룹 미래전략실은 2년 뒤 금속노조 삼성지회가 세를 불리자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잃을 것을 우려해, 조합원 수를 늘리도록 하고 어용노조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한국노총에도 가입하라고 지시한다. 실제 에버랜드 노조는 한국노총에 가입했다. 이로 인해 대항노조를 설립한 1·2대 위원장들은 삼성그룹의 부당노동행위 공범으로 기소돼 1심에서 각각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했어도 범죄는 범죄인 까닭이다.
노사협의회는 삼성의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와해 계획인 ‘그린화 방안’에도 등장한다. 2014년 5월 조합원 염호석씨의 자살 이후 삼성은 노조와 ‘블라인드 교섭’을 한 끝에 처음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8월7일 삼성전자가 작성한 ‘전자서비스 협력사 그린화 방안’ 문건을 보면, 노조에 대한 ‘공세적 관리’라는 제목 아래 ‘노사협의회 활성화’라는 내용이 나온다. “노조 핵심 조합원을 집중 관리”해 “무력화·우군화”하고, 선제적으로 직원들의 고충을 처리해 노조 대신 “노사협의회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노조 필요성을 축소”해 가입률을 낮출 목적으로 노사협의회를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관계자는 <한겨레21>에 “(2018년 11월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에) 직접 고용된 지 얼마 안 된 까닭일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노사협의회를 통해 노조의 세력을 약화하려는 시도는 발견되지 않지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노동관계법에는 다양한 노동자 대표 제도가 있다.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 놓이기 힘든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사용자와 교섭함으로써 권리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 가운데 헌법이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노조가 권한이 가장 세지만, 노조 조직률은 2018년 기준 11.8%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삼성을 비롯한 많은 기업이 노사협의회를 두어 임금·노동 조건에 관한 노사협의를 하고 있지만, 노사협의회가 노동관계법이 규정하는 노동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지에는 법적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2013년 8월까지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이 근로기준법의 ‘근로자대표’ 지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근로자대표는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 등 노동관계법에서 유연근로제 도입, 휴일대체 적용, 퇴직급여제도 설정,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참여 등 ‘노동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를 대신할 권한을 갖고 있다. 노조가 생기더라도 과반수 노조가 아닌 이상 근로자대표에게 노동조건 결정에 더 많은 권한이 보장되는 것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처벌까지 한없이 힘든 근참법 위반
정부는 복잡한 노동자 대표 제도를 손보는 것을 국정과제로 삼아 연구하고 있다. 노사협의회 권한 강화 역시 거론되는 대안 가운데 하나인데, 만약 노사협의회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면 삼성처럼 근로자위원 선출 등에 개입하는 행위에 대한 명료하면서도 엄격한 처벌 조항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행 근참법에는 “사용자가 근로자위원 선출에 개입하거나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긴 하다. 삼성이 ‘우호 인력’을 근로자위원으로 출마하도록 유도한 것 역시 근참법 위반인 셈이다. 그러나 이를 어겼을 때 처벌에 이르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 고용노동부가 이런 사실을 발견한 경우 사용자에게 그것의 시정을 명할 수 있는데, 이 시정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때만 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노조 임원 선출에 사용자가 개입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해, 2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 것과 대비된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한겨레21>은 제1302호 ‘누가 ‘김 사장’을 모르겠습니까’ 제목의 기사에서 경찰청 정보국 김아무개 전 경정이 참여한 삼성전자서비스 원청과 노조 사이의 ‘블라인드 교섭’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한겨레21>은 “이 교섭이 비밀에 부쳐졌”고 “지회 조합원도 교섭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보도했으나, 2014년 5월23일부터 6월28일 노사 간 단체협약 체결 때까지 이뤄진 교섭에 참여했던 당시 금속노조 경기지부 조아무개 부장은 “당시 교섭은 금속노조에 보고된 뒤 이뤄졌으며, 진행 경과도 조합원에게 보고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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