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EBEBE"> ① 국경을 넘어 생의 한계를 넘어</font>
<font color="#BEBEBE"> ② 아이들이 아니었으면</font>
<font color="#BEBEBE">③-(1) 꼴찌 난민, 보트피플을 꿈꾸다</font>
<font color="#BEBEBE">③-(2) 국경 열었지만 일자리 없어</font>
<font color="#BEBEBE">③-(3) 단속 피해 정원 초과한 배 탄 흔적</font>
<font color="#BEBEBE">③-(4) 캄캄한 밤바다에 온 가족이 떠있다</font>
<font color="#BEBEBE">④ 닫힌 국경에서 통곡하다</font>
<font color="#BEBEBE">⑤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font>
<font size="4">⑥ 흩어진 가족 떠올리며 눈물짓다</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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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피해 고향 시리아를 떠난 난민들은 가족 얘기를 꺼낼 때마다 울었다.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해 출발지 터키에 발이 묶인 난민, 목적지 독일에 무사히 도착한 난민 등 저마다 처지는 달랐지만 가족 이야기 앞에 무너지는 것은 똑같았다.
난민들은 대체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을 탈출했고, 부모를 고향에 두고 왔다. 통계는 나이에 따른 이런 불균등한 이주를 어렴풋하게나마 보여준다. 2014년 말 기준으로 난민 중 18살 아래가 51%, 18~59살이 46%, 60살 이상이 3%이다(유엔난민기구). 눈에 먼저 밟히는 어린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난민들은 말했다. 하지만 가슴속 깊이 슬픔이 남아 있었다. 나이 든 부모도 미래가 있고 삶이 있다는 걸 그들도 알았다. 전쟁통인 고향에 두고 온 부모와 형제·자매를 떠올리며 그들이 눈물을 흘린 이유다.
부부가 시간차를 두고 고향을 떠난 난민 가족도 있다. 밀입국할 때 드는 브로커 비용을 모두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먼저 독일에 도착한 가족과 만나려면 별 탈 없이 이동해야 했고, 곧 따라올지도 모를 가족 때문에라도 무사히 정착해야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 부모와 헤어지는 게 슬펐다</font></font>
시리아 난민 디마는 터키 이즈미르의 작은 공원 돌바닥에서 지난해 12월3일, 20일째 노숙 중이었다. 그녀 옆에 남편 자밀(30·가명)과 딸(3), 아들(1)이 있었다. 가족의 고향은 시리아 동부 데이르에즈조르. 이곳에서 1547km 떨어진 곳이다. 프랑스 파리 테러를 자행한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2014년 그들의 고향을 점령한 뒤 고향은 정부군과 IS의 전쟁터가 됐다. 한 달 전, 남편 자밀이 먼저 고향을 떠나자는 말을 꺼냈다. 당시 무슨 생각이 들었냐고 디마에게 물었다. 그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공원 벽 쪽으로 걸어갔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품에 안고 있던 애꿎은 아들 볼에 입을 맞추고 그가 말했다. “부모님과 헤어진다는 게 슬펐습니다. 가족 중에서 저만 시리아를 떠났습니다.” 그가 눈물을 닦으며 5년 전 새로 꾸린 가족의 보금자리, 공원 돌바닥으로 발길을 돌렸다.
시리아 난민 리나는 독일 뉘른베르크에 있는 연립주택 4층에 살고 있다. 그를 만난 12월17일, 독일에 정착한 지는 1년2개월째였다. 그의 집엔 큰딸(13), 아들(10), 작은딸(6)이 같이 살고 있다. 2014년 5월 고향 야르무크를 떠날 때 남편은 부족한 브로커 비용을 마저 벌기로 하고 남았다. 리나는 시리아~이집트~리비아를 거쳐 19시간 나무보트를 타고 이탈리아로 갔다. 독일까지는 20일이 걸렸다. 천신만고 끝에 독일에 정착한 그는 “지금도 혼자라면 고향에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어린아이 셋을 키우는 30대 엄마의 스마트폰 바탕화면에 어느 노부부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누구 사진이냐고 묻자 리나는 “전쟁 때문에 가족이 모두 흩어지게 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의 부모다. 아직 리비아에 남아 있다. 리비아는 5년째 내전 중이다. 2011년 카다피 정권이 붕괴한 뒤 2개의 정부가 난립했고 IS가 세력을 넓히고 있다.
자페르는 두 달 전 홀로 고향을 탈출했다. 시리아 데이르에즈조르에서 20여 년간 공무원이었던 그는 정부를 피해 터키로 왔다. 정부는 2011년 내전 이후 반정부 시위에 동조했단 이유를 들어 공무원들을 무작위로 잡아들였다. 그도 용의 선상에 올랐다. 급히 고향을 탈출한 그는 아내와 아이 6명과 생이별했다. 가족이 고향에 남아 있느냐고 묻자 그가 고개를 떨궜다. 1~2분간 말없이 눈물만 흘리던 그가 휴대전화에서 사진 하나를 불러냈다. 첫째아들 이브라힘(15) 사진이었다. “급하게 찍느라 제대로 못 찍었어요. 1살 된 아들도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15살 아이가 거기서 무얼 할 수 있겠어요.” 그가 울먹이며 말했다. 지난해 12월3일 터키 이즈미르 작은 공원에서 만난 그는 브로커 비용이 없어 여느 난민들처럼 바다 건너 유럽으로 갈 수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마리얌의 고향도 시리아 데이르에즈조르다. 남편과 큰아들(7)이 먼저 지난해 7월 고향을 떠났다. 남편은 독일에 먼저 도착해서 난민 인정을 받은 뒤 가족결합제도(난민으로 인정되면 가족을 데려와 같이 살 수 있도록 한 제도)를 통해 고향에 남은 나머지 가족들을 부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절차는 더뎠고 기약이 없었다.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한 마리얌도 보름 전 고향을 떠났다. 딸(5)과 아들(2)을 데리고 터키 서부 해안에서 고무보트를 탔고 그리스를 지나 오스트리아 북부 국경도시 브라우나우까지 왔다. 지난해 12월16일 브라우나우 난민캠프에서 만난 그는 “너무 힘들었지만 독일에 있는 아들을 품에 안는 날을 꿈꾸며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독일 튀링겐주에서 큰아들과 함께 머물고 있는 남편은 아직 직업이 없다. 마리얌은 생계 걱정에 앞서 가족이 서로 다른 곳에 떨어져 지낼까봐 걱정된다고 했다.
아말과 잔나는 자매다. 공교롭게 둘 다 임신 7개월째다. 언니 아말은 첫째, 동생 잔나는 셋째를 임신 중이다. 임신부 자매는 보름 전 전쟁 중인 시리아를 탈출해 터키로 넘어오는 사흘간 4시간밖에 못 잤다고 했다. 터키에서 그리스 레스보스섬으로 오는 밤바다에선 파도가 고무보트 안으로 튀어 배에까지 물에 젖었다. 캄캄한 바다 위에서 잔나의 딸(6)과 아들(5)은 아빠를 찾으며 내내 울었다. 자매는 남편들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 함께 이주하기엔 브로커 비용에 쓸 돈이 부족했다. 남편들이 돈을 마련해 고향을 떠날 수 있을 때까지 석 달이 걸릴지 반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지난해 12월5일 레스보스섬 카라테페 난민캠프에서 만난 잔나는 “벌써 남편이 보고 싶다. 난 원래 남편과 떨어져 먼저 올 생각이 없었다. 순전히 아이들 안전 때문에 나왔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언니 아말은 “난 결혼한 지 9개월밖에 안 돼서 더 보고 싶다”고 했다. 홀로 아이들을 데리고 독일까지 갈 일이 두렵지 않냐고 묻자 잔나는 “이젠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자하라는 6살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지난해 12월11일 그리스 북부 이도메니에서 만난 그는 국경 통과를 앞두고 들떠 있었다. 경찰이 갑자기 그를 가로막았다. 그의 난민 등록 서류 국적란에 ‘팔레스타인’으로 적혀 있는 것이 문제가 됐다. 그리스 북부 국경은 시리아·이라크·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만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부모가 팔레스타인 출신인 시리아인이었다. 그제야 문제를 깨달은 그가 황망한 표정으로 울며 말했다. “나는 원래 남편과 함께 있었다.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내 희망이 사라질까봐 너무 걱정됐다. 이렇게 혼자가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남편은 혈관 질환을 앓고 있는 딸(16)을 데리고 고향 시리아에 있다. 브로커 비용을 모으는 대로 터키로 밀입국해 독일로 따라올 예정이다. 큰아들(17)은 이미 독일에 가 있다. 자하라가 독일에 무사히 도착해 큰아들을 만나야 남편과 딸도 뒤이어 잘 따라올 수 있을 것이었다. 그가 짊어진 부담이 컸다. 남편이 와서 어서 그 짐을 덜어주길 기대했다.
아흐마드는 3년6개월 전, 전쟁 중인 시리아를 일찌감치 탈출했다. 처음 이주한 나라는 요르단이었다. 그 나라는 아내의 난민 신청을 허가하지 않았다. 가족은 다시 터키로 이주했다. 한 주 전 그는 아내와 아이 셋(2살, 7살, 12살)을 남겨두고 터키 서부 발리케시르주를 먼저 떠났다. 다 같이 이동할 돈이 부족했고, 바다 건너 독일로 가는 길은 위험했다. 지난해 12월14일 슬로베니아 북부 예세니체 기차역에 잠시 정차한 난민열차를 타고 있던 아흐마드가 창문을 열고 먼저 말을 걸었다. “지금 내 가족이 터키에 있는데 독일에서 가족결합을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그는 독일에서 가족결합을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는 도시가 어디인지 궁금해했다. 그는 가족결합이 얼마나 걸릴지 알지 못한다. 당장 남은 가족들이 이동할 여비도 없다. 그는 시리아에서 부엌가구를 설치하는 일을 했다. 그 자격증을 가지고 독일에서도 일해 돈을 벌어볼 참이다.
무함마드는 먼저 떠난 가족을 따라갔다. 아내 리나(36·가명)와 아이 셋(6살, 10살, 13살)은 1년2개월 전 일찌감치 독일에 도착했다. 그는 시리아에서 실내 인테리어 일을 하며 여비를 마련해 뒤늦게 가족을 따라나섰다. 지난해 12월11일 그리스 북부 국경지대 이도메니에서 경찰이 무함마드를 가로막았다. 그의 난민 등록 서류에 국적이 ‘레바논’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 문제가 됐다. 시리아·이라크·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만 이곳을 통과할 수 있었다. 무함마드의 아버지는 레바논인, 어머니는 시리아인이다. 그는 시리아에서 발급받은 결혼증명서와 대학졸업증을 보여주고 나서야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5일 만에 그는 가족이 있는 독일 집에 도착했다. 아내 리나는 “남편이 고향에서 출발한 뒤로는 남편이 아니라 내가 죽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힘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루 만에 독일 정부는 난민 수용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이유로 집에서 400여km 떨어진 도르트문트 난민캠프에 남편 무함마드를 격리 수용했다. 그는 아내와 얼마나 더 떨어져 지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바얀은 1995년 유러피언 드림을 꿈꾸며 고향 시리아 알레포를 떠나 독일에 왔다. 내전이 터지자 오빠 무스타파도 2013년 가족을 데리고 고향을 떠났다. 오빠의 가족은 터키로 갔고, 2014년 오빠가 독일에 먼저 가서 가족결합을 통해 가족들을 불러오려고 했다. 여러 나라를 경유하는 과정에서 여권에 문제가 생긴 오빠가 결국 정착한 곳은 한국이었다. 오빠는 이듬해 한국에서 난민으로 공식 인정됐다. 하지만 한국에서 생활을 이어가려면 경기도 폐차장에서 월 160만~180만원을 받고 자동차를 분해하는 고된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오빠의 말에 바얀은 마음이 아팠다. 오빠가 한국에 정착할 무렵 터키에 있던 그의 아들(15)이 홀로 바다를 건너 독일에 왔다. 아들은 아빠를 독일로 데려오고 싶어 한다. 지난해 12월19일 독일 오스나브뤼크 자택에서 만난 바얀은 “오빠는 한국에 가게 되어서 거기에 있는 것일 뿐 독일에 오고 싶어 한다. 조카도 혼자 독일에 있어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자밀은 한 달 전 아내 디마(23·가명)와 아이 둘(1살, 3살)을 데리고 고향인 시리아 데이르에즈조르를 탈출했다. 그의 고향을 점령한 IS와 러시아 지원을 받는 정부군은 민간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전투를 벌였다. 그의 집에서 200m 떨어진 이웃집이 어느 날 새벽 폭격당했다. 고향을 떠난 뒤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해 유럽행 여비를 모두 잃은 자밀은 터키 이즈미르 작은 공원에서 12월3일, 20일째 노숙 중이었다. 당장 내일의 계획도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는 그는 고향 상황을 주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고향 상황을 묻자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10살 안팎으로 보이는 소년의 사진을 불러냈다. 얼굴에 심한 부상을 당한 소년은 그의 사촌동생이라고 했다. 자밀은 “어제 러시아군의 비행기 폭격으로 다친 내 사촌동생의 사진이다. 러시아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과 함께 국민을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즈미르(터키)·레스보스섬·이도메니(그리스)·예세니체(슬로베니아)·브라우나우(오스트리아)·뉘른베르크·오스란브뤼크(독일)<font color="#008ABD">사진</font>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font color="#008ABD">
글</font>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은 ‘알란의 집은 어디인가’ 르포 연재를 통해 <font color="#C21A1A">'카카오 스토리펀딩 사이트'</font>에서 중동 난민 어린이 후원금을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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