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EBEBE"> ① 국경을 넘어 생의 한계를 넘어</font>
<font color="#BEBEBE"> ② 아이들이 아니었으면</font>
<font color="#BEBEBE">③-(1) 꼴찌 난민, 보트피플을 꿈꾸다</font>
<font color="#BEBEBE">③-(2) 국경 열었지만 일자리 없어</font>
<font color="#BEBEBE">③-(3) 단속 피해 정원 초과한 배 탄 흔적</font>
<font color="#BEBEBE">③-(4) 캄캄한 밤바다에 온 가족이 떠있다</font>
<font color="#BEBEBE">④ 닫힌 국경에서 통곡하다</font>
<font size="4">⑤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font>
<font size="2"><font color="#991900">*각 항목을 누르면 해당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font></font>
유럽,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 일대까지 영토를 확장한 기원전 4세기의 마케도니아 제국. 그 이름을 계승한 마케도니아는 경기도 면적의 2.5배 크기다. 지중해 한가운데에 그리스가 있고 그 바로 위에 감자 모양의 마케도니아가 있다. 발칸반도 중앙에 자리한 이 나라를 놓고 남쪽의 그리스, 북쪽의 세르비아, 동쪽의 불가리아는 20세기 초반까지 영토를 넓히려고 아귀다툼을 벌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구간마다 필요한 난민의 자격</font></font>이 나라는 터키 서부 해안에서 바다 건너 그리스에 도착한 난민들이 유럽 육로를 따라 이동하는 길목 구실을 한다. 여기서 북서쪽으로 1400km를 따라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오스트리아를 지나면 대부분의 난민들이 정착하길 꿈꾸는 독일이 나온다. 차로 직행하면 15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다.
난민들은 마케도니아 남부 국경도시 게브겔리야를 출발해 보통 2~3일에 걸쳐 기차 다섯 번, 버스 네 번을 갈아타고 독일로 간다. 기차(목적지 마케도니아 타바노프체), 도보(세르비아 미라토바츠), 버스(세르비아 프레셰보), 버스(세르비아 시드), 기차(크로아티아 슬라본스키브로드), 기차(슬로베니아 도보바), 기차(슬로베니아 예세니체), 기차(오스트리아 필라흐), 버스(오스트리아 브라우나우), 버스(독일)를 탄다.
‘키가 큰 사람’ 또는 ‘높은 지대’란 뜻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이름이 유래한 마케도니아는 어느 난민들에겐 문턱이 높다. 마케도니아부터 독일을 향한 긴 여정을 무사히 지나려면 난민으로서의 ‘높은 자격’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전쟁 지역으로 꼽히는 시리아·이라크·아프가니스탄 출신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서류가 있어야 한다. 매 구간에서 경찰이 한 사람당 하나씩 이를 증명하는 서류를 지참하고 있는지 검사한다.
세 나라 국적을 국경 통과의 자격 요건으로 처음 요구한 나라는 슬로베니아였다. 나머지 국적의 난민은 경제적 이주자로 간주했다. 이후 슬로베니아 남쪽에 있는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마케도니아도 슬로베니아로 넘어가지 못한 난민들이 자국에 정체될 것을 우려해 같은 방침을 세웠다.
직접적 계기는 지난해 11월13일 프랑스 파리 도심에서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민간인들을 무차별 사살한 ‘파리 테러’였다. 파리 테러 용의자 일부가 난민으로 위장해 그리스를 통해 유럽 땅으로 넘어왔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건은 하나의 계기였다. 국경 통제 방안은 파리 테러 전부터 모색돼왔다. 인구 약 200만 명에 불과한 슬로베니아는 한 달 새 난민 10만여 명이 자국에 유입되자, 파리 테러 사흘 전 크로아티아 쪽 남부 국경에 임시 철조망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난민 유입 통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IS를 피해 고향을 떠난 난민들은 잠재적 테러 용의자가 되었다. 지난해 12월9일 찾은 마케도니아 남부 국경도시인 게브겔리야 경찰서 게시판에는 한 달 전 벌어진 파리 테러 용의자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파리 테러는 파리에서 남쪽으로 약 2300km 떨어진 이곳까지 테러 감시 태세로 돌려세웠다. 유럽 각 나라가 체계적으로 신속하게 난민들을 독일로 이동시키는 한편 난민 검문을 강화한 이유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난민 호객하는 택시 기사들의 싸움</font></font>마케도니아부터 오스트리아까지 각국 정부와 난민들은 어느 면에선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정부는 난민들을 빠르게 독일로 내보내려 했고, 난민 스스로도 이 나라들에 오래 머물기 원치 않았다. 난민들은 기차나 버스를 오르내릴 때 말곤 거의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 난민들은 어서 독일에 도착하길 원했다.
독일은 지난해 8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직접 나서 ‘시리아 난민 무조건 수용’ 방침을 발표했다. 난민들은 앞서 독일에 정착한 지인과 언론을 통해 독일이 난민에게 일정 기간 동안 집과 생활비를 지원해준다고 알고 있었다. 그 부유한 나라엔 일자리도 많을 터였다. 그들은 독일로 향하는 길에 있는 다른 나라들에 정착하길 원치 않았다. 그들 눈에 그 나라들은 독일만큼 부유한 나라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나라들은 난민을 상대로 돈을 벌려고 했다. 마케도니아 택시기사들은 지난해 12월9일 자신들이 운행하는 노란색 택시를 게브겔리야 국경지대에 세워두고 파업을 했다. 나중엔 난민들이 지나가야 할 철로를 막았다. 난민들이 버스와 기차만 타고 이동하도록 정부가 교통수단을 제한했다는 이유였다. 결국 정부가 백기를 들었다. 난민들이 택시를 타고 이동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12월11일 밤 10시30분께 난민들이 담요를 뒤집어쓰고 국경을 건너 미라토바츠 마을 초입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들이 진입하는 5m 간격의 좁은 비포장도로 양옆에 택시 20여 대가 섰다. 미라토바츠가 속한 프레셰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알바니아인들의 택시다. 택시기사들이 하나둘 난민들을 향해 걸어나갔다.
이 곳에 오기까지 일부 난민은 버스(1인당 30유로·약 4만원)를 탔고 대부분의 난민들은 가격이 싼 기차(1인당 25유로·약 3만3천원)를 탔다. 마케도니아 북부 타바노프체 기차역에서 내린 난민들은 약 30분 동안 걸어서 세르비아 남부 국경도시 프레셰보의 작은 마을 미라토바츠로 간다. 난민들이 걸어서 이동하는 중간 지점에서 세르비아 경찰은 난민들의 신원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택시기사들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기사 둘이 싸움이 붙었다. 한 명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다른 기사들이 싸움을 말린 뒤에야 소동은 진정됐다. 터키 정부가 바다 건너 그리스 섬으로 가는 난민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유럽 각국이 국경을 넘을 수 있는 난민의 국적을 제한하자, 최근 이곳에 오는 난민의 수도 크게 줄었다. 그만큼 택시 영업도 경쟁이 치열해진 모양이었다.
그들은 지나가는 난민들에게 “크로아시아!”(크로아티아) “탁시!”(택시)를 외치며 호객 행위를 했다. 크로아티아로 가는 택시를 운행한다는 뜻이다. 그리스 섬 난민캠프 앞에서 공지한 버스와 기차 교통편을 익히 알고 있는 난민들은 값비싼 택시를 타지 않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돈이 부족하면 2시간 더 걸리는 기차로</font></font>난민들은 미라토바츠에서 밤 11시 버스 막차를 타고 20분 거리에 있는 프레셰보 난민캠프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다시 난민 등록 절차를 밟는다. 캠프 안에 있는 난민들은 당장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과 바닥난 돈 걱정을 했다.
상자와 비닐로 불을 피워 추위를 피하는 캠프 한쪽에서 한 소녀가 회색 담요를 머리까지 덮고 앉아 있었다. 시리아 난민 아말(7·가명)이었다. 소녀는 작은 목소리로 “엄청 춥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 옆에서 아빠 아흐마드(36·가명)는 떨고 있는 딸을 내버려둔 채,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는 시리아에 두고 온 다른 가족들을 데려올 수 있는 방법을 상의하고 있었다.
그는 돈이 부족해서 아들과 아내를 고향에 두고 왔다. 시리아에서 터키로 밀입국해 고무보트를 타고 바다 건너 그리스 섬으로 가는 데에만 1명당 1천달러(약 122만원) 안팎이 든다. 유럽 육로 이동에도 다시 돈이 든다. 터키에서 지중해를 건널 때 당장의 생존을 걱정했던 난민들은 유럽 육로를 이동하면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한다. 독일에 가까워질수록 고향은 점점 멀어져갔고, 두고 온 가족들은 더 그리워졌다.
담요를 뒤집어쓴 아말 옆에 있던 또 다른 시리아 난민 소녀 라피프(7·가명)는 터키에 부모와 오빠를 두고 삼촌과 먼저 독일로 향하는 길이었다. 라피프는 차가운 바게트 샌드위치를 한 손에 들고 콧물을 흘리면서 쉴 새 없이 새로 만난 다른 난민들과 수다를 떨었다. 가족과 떨어져 있는 어린 소녀가 허전함과 외로움을 스스로 달래는 방식이었다.
당장 이곳에서 한 발짝 더 움직이는 데 필요한 돈 걱정을 하는 난민들도 있다. 프레셰보 캠프 앞에서 세르비아 북부 시드 기차역까지 가는 버스 요금은 1인당 35유로(약 4만7천원)다. 가는 데 8시간이 걸린다. 그보다 싼 17유로(약 2만3천원)를 내면 2시간이 더 소요되는 기차를 타야 한다. 돈이 부족한 난민들은 이 캠프에서 다음날 아침 기차를 기다렸다. 아예 돈이 다 떨어져 하루이틀 더 묵을 예정인 난민 청년도 있었다. 그는 다음날 친구들에게 송금을 부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내 마음속 나라는 쿠르디스탄입니다” </font></font>난민들에게 걱정만 있는 건 아니다. 얼마 뒤면 도착할 독일에 정착한다는 꿈이 있다. 캠프 앞에서 세르비아 북부 시드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압둘 라만(35·가명)은 “갈수록 더 안전한 기분이 든다. 아이들을 보면 더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26)와 6살 딸, 4살 아들을 데리고 20일 전 시리아를 떠났다. 아이들은 감기에 걸렸다. 열이 난다. 그는 시리아 내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이다. 시리아는 2011년부터 5년째 전쟁 중이고, 쿠르드족은 IS의 공격 대상이다. 시리아에서 쿠르드족은 전쟁과 상관없이 항상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그의 시리아 임시신분증 국적란엔 ‘국가 없음’이라고 적혀 있다. 그는 전쟁이 끝나도 시리아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font color="#991900"> <i> “어느 나라로 가실 건가요?”(“독일요!”라고 압둘의 아이들이 먼저 외쳤다.)
“도착한 날 신분증을 바로 주는 나라로 가고 싶습니다.”
“당신의 마음속 나라는 어디인가요?”
“쿠르디스탄입니다.”(‘쿠르드족의 나라’라는 뜻)</i></font>
일단 독일로 가고 있지만, 난민들은 자신이 현재 있는 곳을 잘 모르고 있었다. 난민들이 탄 버스가 세르비아 북부 국경도시 시드 기차역을 10km가량 앞두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정차했다.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경찰은 시드역에 열차가 준비되면, 열차 하나에 태울 수 있을 만큼만 난민들을 이 휴게소에서 불러온다. 지난해 12월13일 오전 10시30분께 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난민들을 만났다. 시리아 난민 무스타파(30·가명)는 아내(19)와 아이(1)를 데리고 이곳에 왔다. 그는 독일에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가 궁금하다. 그가 먼저 물었다.
<font color="#991900"> <i>“여기가 어디죠?”“세르비아 북부 도시 시드 근처입니다. 어딘지 모르고 이동하셨나요?”
“어떻게 독일까지 갈 수 있는지 아직 분명한 경로를 모릅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요. 우리는 단지 이름과 국적을 물어보는 대로 답할 뿐입니다.”</i></font>
난민 이송은 체계적이고 신속했다. 각국 정부는 난민들이 기차역에서 일반 승객들과 함께 머물도록 하지 않았다. 취재를 허용하는 곳 또한 드물었다. 대부분 “난민 이송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드 기차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크로아티아 슬로본스키브로드역으로 간다. 1시간30분이 걸린다. 시드역에서 세르비아 경찰은 크로아티아 경찰에게 열차를 인계한다. 두 나라는 20년 전만 해도 전쟁에서 서로 총을 겨눈 사이다. 1991~95년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으로 두 나라에서 각각 난민 수십만 명씩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제 두 나라는 난민 이송을 협력한다. 이날 시드역 플랫폼에서 지켜본 세르비아 경찰은 크로아티아 경찰에게 세르비아산 맥주 3통을 선물했다.
크로아티아 슬로본스키브로드 기차역으로 가는 열차 요금은 무료다. 마케도니아·세르비아와 달리 크로아티아부터 오스트리아까지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다. 그들은 EU 지원금을 받는다. 크로아티아 경찰은 슬로본스키브로도역에 난민들이 내리면 가까이에 있는 난민캠프에 난민들을 수용한다. 그러곤 열차가 준비되면 바로 난민들을 태운다. 다음 행선지에서도 난민은 철저한 통제 아래 신속하게 이동했다. 이곳을 떠난 난민들은 슬로베니아 도보바역과 예세니체역을 거쳐 오스트리아로 향한다. 오스트리아 필라흐 동부 역에서 버스로 갈아탄 난민들은 마지막 경유지인 오스트리아 브라우나우로 간다.
겉으로는 순탄해 보이는 유럽 육로 여정에서 난민들은 점점 지치고 불만이 쌓여갔다. 기차와 버스를 여러 차례 갈아탔고 밤에 도착한 경유지 근처 난민캠프에선 더럽고 차가운 바닥에서 아이들과 잠들어야 했다. 유럽 경찰과 군인들의 태도는 출발 전 전해들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언어가 통하지 않은 그들은 자주 고함을 질렀고 때론 완력으로 제압하려 했다.
12월15일 밤 10시께 오스트리아~독일 국경을 표시하는 아치형 구조물에서 불과 10m 떨어진 도로 갓길에 난민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이곳은 오스트리아 북부 국경도시 브라우나우다. 난민 30명가량이 버스 짐칸에서 짐을 꺼냈고, 잠이 덜 깬 남자들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서너 살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찡찡거리며 울었고, 여성들은 담요를 히잡처럼 머리까지 덮어썼다. 갓길에서 50m 남짓한 내리막길을 걸으면 흰 천막으로 된 난민캠프가 있다.
다음날 오전 10시, 그 천막 안에 들어갔다. 안에선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노란빛 조명에 금박 비닐을 덮거나 깔고 누워 있는 난민들이 눈에 먼저 띄었다. 난민 100여 명이 흩어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들 아딜(3·가명)을 안고 금박 비닐 위에 앉아 있던 이라크 난민 자이툰(24·가명)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독일을 코앞에 두고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이 새삼 물 밀려오듯 떠오른 모양이었다. 아들은 고향을 떠난 지난 두 달 동안 2번이나 감기에 걸렸다. 열이 났고 가래가 끓었고 가슴이 답답한 증세를 보였다고 자이툰은 말했다. 감기가 낫자 알레르기가 생겼다. 반복되는 낯선 환경에 아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랬을 거라며 그가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기차와 버스를 계속 갈아타면서 어른들도 지쳤다. 자이툰도 전날 밤 이곳 캠프 바닥에서 금박 비닐 한 장을 깔고 잤다. 히터는 잠이 깬 뒤 아침에야 설치됐다. 그는 “당신들 아이도 이런 땅바닥에서 재울 수 있겠느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font color="#991900"> <i>“독일이 코앞입니다. 오랫동안 이곳까지 온 소감이 어떠세요?”“우리는 좋은 대우 받으며 따뜻한 캠프에서 깨끗하게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모든 게 거짓말이었어요.”
“많이 힘드셨나요?”
“유럽 경찰들과 군인들은 우리가 매우 피곤한 상태라는 걸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기차, 버스, 기차, 버스를 계속 갈아타고 매일 이런 땅바닥에서 잤어요.”
“저도 옆에서 보면서 경찰들이 난민을 빨리 이동시키려고만 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우리를 죄수 대하듯 했어요. 한 군인이 남편에게 이쪽으로 가라고 해서 그리로 갔는데 다른 군인이 왜 이쪽으로 왔냐며 거칠게 밀어붙였습니다. 제 남편한테만 그랬던 게 아니에요.”
“독일에 정착하는 게 걱정되진 않나요?”
“파리 테러 이후에 유럽 사람들이 우리를 나쁘게 대할까봐 걱정돼요. 여기로 오는 길부터 나쁜 대우를 당했으니까요. 독일에선 난민에게 집과 돈을 준다고는 들었지만 그게 정확한 얘기인지, 그것을 준다고 해도 부족하진 않을지 걱정되죠.”</i></font>
천막 정면과 왼편에는 성인 어깨 높이의 쇠파이프로 만든 울타리가 있었다. 그 안에 난민들이 있었다. 캠프 관리자는 그들이 다음 차례에 독일로 가는 버스를 탈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2시간에 50명씩 버스 1대에 탄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마지막 경유지, 히틀러의 고향</font></font>독일로 향하는 난민들의 마지막 경유지인 오스트리아 브라우나우는 히틀러가 태어난 곳이다. 그가 독일에서 집권한 1933년부터 1939년까지 유대인들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 유럽을 떠났다. 최소 35만여 명의 유대인이 난민이 되어 전세계로 떠돌았다. 80년이 지나 새로운 난민들이 히틀러의 고향에서 독일로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게브겔리야·타바노프체(마케도니아)·프레셰보·시드(세르비아)·슬라본스키브로드(크로아티아)·도보바·예세니체(슬로베니아)·필라흐·브라우나우(오스트리아)<font color="#008ABD">사진</font>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font color="#008ABD">
글</font>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은 ‘알란의 집은 어디인가’ 르포 연재를 통해 <font color="#C21A1A">'카카오 스토리펀딩 사이트'</font>에서 중동 난민 어린이 후원금을 모으고 있습니다.
※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font color="#C21A1A">▶ 바로가기</font>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 “아내한테 ‘미쳤냐 뭐 하냐’…내 폰으로 아침 5시에 답장하길래”
윤, 대국민 회견서 “하나만 해” 반말…“무례하고 품격 없다”
목줄 매달고 발길질이 훈련?…동물학대 고발된 ‘어둠의 개통령’
윤, ‘야당 추천 특검 위헌’이라지만…헌재, 박근혜 특검땐 전원 “합헌”
윤 “경제가 기지개 켜고 있다”…체감 경기 어떠십니까
[영상] 윤 “김건희 특검은 정치선동…아내 사랑 차원 아냐”
윤, 외신기자 한국어 질문에 “말귀 못 알아듣겠다”…“무례” 비판
“밝혀진 사실은, 김건희는 대통령 폰 보지만 대통령은 김건희 폰 못 봐” [영상]
봉준호 신작 ‘미키 17’ 내년 4월로 또 개봉 연기, 왜?
지구 어디에나 있지만 발견 어려워…신종 4종 한국서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