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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 생의 한계를 넘어

삶의 가능성 찾아나선 87만 난민 루트 현지 취재, 터키~독일 2천km 따라 3주간 떠나… 난민 어린이 돕는 펀딩 두 달간 진행
등록 2015-12-03 07:51 수정 2020-05-02 22:17
유럽의 모든 국경은 난민에게 넘기 어려운 선이다. 11월18일 한 어린이가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있는 난민캠프에 그려놓은 유럽 지도를 바라보고 있다. REUTERS

유럽의 모든 국경은 난민에게 넘기 어려운 선이다. 11월18일 한 어린이가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있는 난민캠프에 그려놓은 유럽 지도를 바라보고 있다. REUTERS

유럽의 난민은 1648년 탄생했다. 그해 독일 30년전쟁이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독일 지역을 아우른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2세가 보헤미아 신교도들을 탄압해 벌어진 종교전쟁에는 30년간 유럽 여러 나라가 참전했다.

가톨릭 황제군이 사실상 패배하면서 신성로마제국은 300개의 연방으로 쪼개졌고 신교도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 결과 등장한 베스트팔렌 조약 가운데 하나인 ‘오스나브뤼크’ 조약은 종교의 박해를 피해 이주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국경을 통과하는 자와 하지 못하는 자

“자신과 같은 신앙의 통치자가 다스리는 지역으로 이주하고 싶다면 자유롭게 이주할 수 있다.”(제5조) 이는 난민 개념이 최초로 등장한 역사로 기록된다. 공교롭게도 베스트팔렌 조약은 유럽에서 시작된 근대 국민국가 모델의 모체이기도 하다. 근대국가와 난민은 동시에 태어났다.

367년이 지난 지금, 독일은 ‘난민들의 천국’으로 불린다. 올해만 수십만 명의 중동·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너 발칸반도를 지나 독일로 향하는 대이동에 나섰다.

전쟁과 가난을 피해 떠나온 난민들이 유독 독일을 선호하는 배경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있다. 그는 지난 8월 ‘시리아 난민 무조건 수용’ 방침을 발표했다. 난민이 처음 입국한 나라에 난민 신청을 하도록 한 더블린 조약을 시리아 난민들에겐 적용치 않겠단 선언이었다. 시리아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중동·아프리카 출신의 다른 난민들도 독일로 향했다. 올해 독일에 유입될 난민 수는 100만 명 이상으로 점쳐진다.

그러나 독일 내무부는 11월10일 결국 시리아 난민 무조건 수용 방침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메르켈 총리가 속한 기독민주연합 내부에서도 난민 수용 정책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독일 방향으로 이어지는 난민 행렬이 발칸반도를 중심으로 정체되면서 난민 신청 규모는 올해 10월까지 세르비아·코소보가 33만여 명으로, 독일(31만여 명)을 제치고 전세계 1위에 올랐다.

프랑스에선 11월13일 이슬람국가(IS)가 자행한 ‘파리 테러’ 이후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파리 바타클랑 극장과 식당 등 도심 6곳에서 최소 129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연쇄 테러 현장에서 용의자의 주검 옆에 (위조한 것으로 의심되긴 하지만) 시리아 이주자의 여권이 발견됐다. 곧바로 유럽 내 난민 적대 움직임이 일었다.

테러 하루 뒤 프랑스의 대표적인 난민촌 칼레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났고, 독일 반이슬람 단체 ‘페기다’는 11월15일 드레스덴에서 수만 명이 모여 난민 반대 집회를 열었다. 유럽연합(EU)도 일주일 뒤 공식적으로 국경 통제 강화를 결정했다. EU는 11월19일 솅겐조약에 가입한 26개 나라를 드나드는 국경에서 자유여행객을 포함한 모든 이들을 엄격히 심사하도록 했다.

독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발칸반도의 나라들은 이미 지난 9월 중순부터 국경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헝가리는 9월16일 일찌감치 남부 세르비아 국경을 차단한 데 이어, 한 달 뒤 남부 크로아티아 국경도 차단했다. 이에 따라 난민들의 주요 이동 경로는 헝가리를 우회해, 그리스∼마케도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오스트리아∼독일로 변경됐다.

슬로베니아는 11월11일 동쪽 크로아티아 국경을 차단하면서 시리아·아프가니스탄·이라크 출신 이주자들만 통과시키고 나머지 이주자는 경제적 이주자로 간주해 돌려보내겠다고 선언했다. 그 밖에 다른 나라들도 파리 테러 이후 이런 분류법을 따랐다.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쪽 국경지대인 이도메니에선 국경을 통과하지 못한 난민들의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란 출신 이주자 6명은 얼굴과 가슴에 영문으로 ‘이란’(Iran), ‘자유’(freedom)라고 쓰고 입술을 꿰맨 채 단식농성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키스탄, 알제리, 모로코에서 온 수백 명도 철로를 막고 항의시위에 나섰다고 11월26일 통신이 전했다.

독일 방향으로 이어지는 난민 행렬이 발칸반도를 중심으로 정체되면서 난민 신청 규모는 올해 10월까지 세르비아·코소보가 33만여 명으로, 독일(31만여 명)을 제치고 전세계 1위에 올랐다. 세르비아·코소보는 10월에만 18만 명 이상이 난민 신청을 했다(그림 참조).

탈냉전 이후에도 세계 한켠엔 일상화된 전쟁

그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유럽에선 20세기 내내 난민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엔 그들 대부분이 정치적 박해나 내전으로 발생한 유럽 출신 난민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러시아혁명이 벌어지자 4년 동안 러시아 귀족 100만 명 이상이 볼셰비키를 피해 러시아를 떠났다. 국제연맹은 1921년 러시아 난민들을 임시 지원할 목적으로 노르웨이 출신 탐험가 겸 정치가인 프리드쇼프 난센을 난민고등판무관에 임명했다. 이는 난민 문제가 국제 이슈로 인식된 첫 사건으로 평가된다.

독일에선 1933년 히틀러 집권 뒤 1939년까지 35만 명가량의 유대인들이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를 떠났다. 이에 국제연맹은 독일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을 별도로 맺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6년 옛 소련과 스탈린주의에 맞서 봉기한 헝가리 사태는 20만 명의 헝가리 난민을 낳았다. 이들은 헝가리를 떠나 오스트리아와 당시 유고슬라비아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난민레짐의 형성과 변화에 관한 연구’(최원근, 2009년 2월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석사 논문)는 헝가리 사태에 대해 “이 사건으로 인해 유엔난민기구는 난민의 인정에 있어 개별적 심사를 통한 방식이 대규모의 인도적 위기 상황하에서 현실적인 한계를 지님을 인식”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옛 소련이 1991년 해체되고 냉전 체제가 붕괴된 여파로 유럽에는 또다시 난민이 속출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연방에서 내부 독립과 민족·종교 갈등 때문에 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체첸-러시아 전쟁(1994년, 1999년·난민 20만여 명)과 발칸반도에서 벌어진 보스니아 전쟁(1992~95년·난민 230만 명), 코소보 전쟁(1998~99년·난민 120만 명)은 수백만 명의 난민을 양산했다.

다른 대륙의 난민들도 유럽과 관련이 깊다. 유럽의 식민 지배를 벗어난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시아 나라들에선 1960~70년대 내전 또는 미·소 대리전 형태의 전쟁으로 난민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나라가 르완다, 앙골라,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등이다.

1962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르완다는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의 대학살과 오랜 내전으로 1994년까지 난민 200만여 명이 발생했다. 1975년 미·소 대리전의 성격을 띤 앙골라 내전은 난민 400만 명을 낳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선 1979년 소련의 침공 이후 전쟁과 내전이 지속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2013년까지 30여 년 동안 전세계 최다 난민 출신 나라였다. 2014년엔 4년째 내전 중인 시리아가 난민 760만 명으로 아프가니스탄(370만 명)을 제쳤다.

탈냉전 이후 강대국들은 제3세계에서 벌어지는 국지적 분쟁에 대한 관심과 통제력을 차츰 줄여나갔다. 자연스레 이들의 비호를 받아온 제3세계 정부의 힘도 약해졌다. 르완다·소말리아·시에라리온·에리트레아·라이베리아·콩고·이라크·이란·아프가니스탄·시리아·수단 등에서 민족, 인종, 종족, 종교, 영토, 경제적 이득을 둘러싸고 벌어진 전쟁과 내전은 길게는 30년 넘게 지속됐다.

이 가운데 시리아 내전은 정부군과 자유시리아군, 투르크멘 반군, 이슬람국가 등 역내 여러 세력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데다 프랑스·러시아 등이 개입하면서 초국적 전쟁으로까지 확대돼 적과 아의 경계가 복잡한 형국이다. 일상화된 비정규전과 테러는 민간인 사상과 난민 발생을 더욱 부채질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의 난민
11월4일 터키 서부 체시메 해안 언덕에 올라 그리스 섬으로 출항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난민들.  REUTERS

11월4일 터키 서부 체시메 해안 언덕에 올라 그리스 섬으로 출항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난민들. REUTERS

독일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는 저서 에서 최근의 전쟁을 독일 30년전쟁(1618~48)과 비교 분석했다. 그는 30년전쟁에 대해 “폭력이 부분적으로만 적의 무장한 힘을 상대로 사용되었고 대부분의 경우나 때로는 거의 전적으로 민간인을 상대로 사용되었다. …반복해서 커다란 전투들이 벌어졌지만 어느 것도 확실한 군사적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패배한 세력이 외부의 도움으로 또는 새로운 병사들을 끌어들여 금세 원래의 군사력을 회복할 수 있었거나 다른 세력이 그 자리를 차지하여 전장을 싱싱한 부대들로 채웠기 때문”이라고 썼다. 연속적인 개별 전쟁과 충돌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수많은 사상자와 난민을 낳는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통제되지 않는 분쟁과 박해로 전체 난민은 5950만 명(2014년 말 기준: 난민인정자 1950만 명, 난민신청자 180만 명, 국내 강제 실향민 3820만 명)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2014년 새로 발생한 국내 강제 실향민만 1100만 명으로 이 또한 역대 최대 규모다. 전체 난민 규모는 3년 만에 40%가량 증가했다(2011년 기준 4250만 명). 이는 한국 인구 5150만 명(행정자치부 2015년 10월 기준)보다 많다.

전쟁과 가난 등으로 통제력을 잃은 국가의 국경은 헐겁다. 난민들에겐 비극 속 행운이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중동에서 국민국가 형성에 한계를 드러내고 ‘아랍의 봄’ 사태 이후 나라들이 붕괴되면서 유럽으로 가는 국경이 와해됐다.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의 북쪽 국경이 뚫리면서 난민 유입이 촉발됐다”고 말했다.

국경을 뚫고 유럽으로 대이동하는 난민은 그들이 향하는 유럽 나라들의 국가 통제력도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 올해 난민 이동의 특징은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유엔난민기구가 11월27일까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올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이주한 이들의 규모는 87만4346명이다.

이들의 출신 지역은 시리아(51%), 아프가니스탄(20%), 이라크(6%) 순으로 많다. 역대 최대 규모였던 2011년(7만 명)의 3배 수준이던 2014년(21만6054명)의 4배를 일찍이 넘었다. 올해 지중해를 건너다 이주자 3510명이 익사하거나 실종됐다. 9월2일 터키 보드룸 해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3살배기 알란 쿠르디도 그중 하나다.

“난 사람이 아니에요?”
11월24일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국경지대 구조물에 앉아 있는 파키스탄 출신 난민. REUTERS

11월24일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국경지대 구조물에 앉아 있는 파키스탄 출신 난민. REUTERS

지중해를 건넌 대다수 이주자들이 처음 도착하는 곳은 그리스(71만9087명)다. 그리스부터 독일 또는 북·서유럽을 향한 긴 여정에 오른다. 나머지 소수는 그리스가 아닌 이탈리아, 몰타, 스페인을 거쳐 이동한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지중해를 건너는 이주자는 지난 10월 21만여 명에서 11월 현재 12만여 명으로 줄었다. 터키에서 그리스 섬으로 난민을 고무보트에 태우는 브로커들은 비가 오거나 바람 부는 날에는 브로커 비용 약 2천달러를 반값보다 싸게 할인해 난민들의 목숨값을 흥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에 다녀온 이들은 유럽 난민 행렬에 뒤늦게 합류한 이들일수록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낮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한다. 지난 9월 현지에 다녀온 한 사진작가는 “주식과 똑같다. 돈 많고 정보가 빠른 이들이 먼저 치고 올라가고, 없는 자들은 뒤늦게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터키 이즈미르 해안에서 ‘세냐’라는 이름의 4살배기 시리아 난민의 주검이 또 발견됐다. 이번에는 세계가 울지 않았다. 유럽행 난민들의 사정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확실한 죽음을 피해 삶의 가능성을 찾아 떠나온 유럽의 난민에겐 돌아갈 곳도 나아갈 곳도 막혀 있다. 유럽에도 겨울이 오는 가운데 난민은 지중해의 풍랑에 목숨을 잃거나 길바닥에서 앓고 있다고 유럽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추위는 중동과 아프리카 출신 난민, 그리고 임신부와 어린이, 노인에게 더욱 가혹하다.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도착한 이들은 물에 젖은 아이들을 덮어주기 위해 구호단체들이 제공한 담요를 더 차지하려고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사진작가 자일스 듈리는 영국 일간지 에 기고한 글에서 그리스 레스보스섬에서 만난 아프간 출신 남성을 묘사했다. “팔에 아이를 안은 한 아프간 아버지가 잘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한 호텔에서 돈을 3배로 내겠다고 했다. 자신의 아내와 아이만 좀 재워달라고 했다. 있을 곳도 담요도 없다고 설명을 들었을 때, 그는 말했다. ‘나 좀 만져봐요. 난 사람이 아니에요?’”

몰려드는 난민들을 수용하기 버거운 유럽 나라들은 ‘파리 테러’ 이후 본격적으로 국경을 걸어잠그거나, 난민을 출신지에 따라 선별적으로 이동시키는 분리 수용 방침을 택하고 있다. 난민 대이동이 벌어지는 최근의 유럽은 21세기 국가와 인권이 다층적으로 충돌하는 현장이다. 그곳엔 국가가 보호하지 못한 국민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난민을 막는 국가가 있다. 그리고 국가의 공백 상태를 메우는 자발적인 시민사회가 있다.

은 유럽에서 벌어지는 난민들의 대이동을 쫓아 현지 취재를 떠난다. 터키에서 그리스,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독일로 향하는 최근 유럽 난민 루트 2천km를 따라갈 예정이다.

11월29일 인천에서 터키 이스탄불로 출국해 3주 뒤 독일 베를린에서 취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유럽 현지 취재 결과는 새해부터 4~5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알란 쿠르디의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11월24일 그리스 국경을 넘어 마케도니아로 넘어온 난민들. REUTERS

11월24일 그리스 국경을 넘어 마케도니아로 넘어온 난민들. REUTERS

3살 알란 쿠르디의 주검 사진 한 장이 전세계를 울린 지 두 달여 만에 터키 이즈미르 해안에서 ‘세냐’라는 이름의 4살배기 시리아 난민의 주검이 또 발견됐다. 이번에는 세계가 울지 않았다.

유럽행 난민들의 사정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아이들의 고통은 더 심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유럽의 국경 통제로 여정이 길어지면서 저체온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영양실조 등에 심하게 노출돼 있다고 한다.

은 이번 보도를 카카오가 운영하는 포털 ‘다음’의 스토리펀딩(storyfunding.daum.net/episode/2715)에 올려 독자의 후원금을 모을 예정이다. 이 후원금은 국제 아동 구호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 중동 난민 어린이들에게 전달된다. 그들의 삶을 생생히 이해하려는 이번 취재에 대한 응원과 함께, 고통받는 그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주시기를 독자들에게 부탁드린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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