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북미 최초의 태양에너지 박람회인 ‘인터솔라(interSolar) 노스 아메리카’가 개최됐다. 7월15일~1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열린 세계 최대 반도체 전시회인 세미콘웨스트(SEMICON West 2005)와 함께 열린 행사였다. 그동안 인터솔라는 유럽의 대표 박람회였다. 앞으로 미국은 매년 ‘인터솔라’를 열 계획이다.
7월16일 찾아간 박람회장엔 활기가 넘쳤다. 박람회 기간인 사흘동안 15개국에서 210개 업체가 참가했고 1만3천여 명의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아직 유럽보다는 작은 규모다. 하지만 세미콘웨스트와 인터솔라가 함께 열리니 모스콘센터 주변엔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였다. 태양광전지와 관련한 차세대 기술이 한자리에 모인 박람회장에서 ‘친환경 산업’에 열정을 쏟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실리콘밸리를 달구는 말도 ‘클린테크’(CT·Clean Tech)다. 클린테크란 환경오염을 예방하고 에너지와 자원을 절약하는 ‘무공해 기술’을 뜻한다. 클린테크와 관련된 기업에 몰리는 대규모 투자와 인적 자원은 ‘정보기술(IT) 붐’에 이어 ‘클린테크 시대’가 도래했음을 증명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있는 기업 에셜론(Echelon)에 ‘친환경’은 축복이었다. 1990년대 초반, 에셜론은 냉장고, 전등, 에어컨 등 집안의 전자제품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외부에서 원격조종할 수 있는 기술인 ‘론워크스’를 내놨다. 당시에는 이 기술을 자신의 전자제품에 접목시키겠다는 제조회사를 찾기가 힘들었다. 한데 10여 년이 지나 ‘에너지 소비 절감’이 화두가 되면서 에셜론은 ‘친환경 기업’의 대열에 합류했다. 돈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기존의 네트워킹 기술을 ‘에너지 절약’ 모델에 적용한 것이다. 이탈리아 에넬사의 식기세척기가 전기값이 싼 시간대를 알려주는 것도(부하가 낮은 시간대엔 전기값이 저렴함), 노르웨이 오슬로시의 가로등 밝기가 교통량에 따라 조절되는 것도 에셜론의 기술력 덕분이다. 이번 베이징올림픽도 에셜론의 ‘에너지 효율 전등 시스템’을 통해 ‘그린 올림픽’으로 거듭났다. 지난해 에셜론의 주가는 연초 대비 3배나 급등했다.
지난 2/4분기 클린테크를 대상으로 한 전세계 벤처 투자는 20억달러, 한국 돈 2조원 정도다. 이는 사상 최고치이자 직전 분기에 비해서도 48% 증가한 수치라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컨설팅 회사 ‘클린테크 그룹’이 지난 7월 발표했다. 클린테크 그룹의 이사인 브라이언 팬은 “불황으로 다른 산업 분야가 힘든 걸음을 하고 있음에도 클린테크는 더욱 강력하게 밴처캐피털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클린테크 분야의 투자가 급증하면서 2001년 ‘닷컴 버블’ 붕괴 뒤에 주춤하던 벤처 투자가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벤처캐피털 펀드는 2001년 이래 최고치인 347억달러를 기록했다. 2002년의 10배 수준이다. 이 돈은 클린테크의 허브인 실리콘밸리와 주변의 샌프란시스코만 지역으로 투입되고 있다. 전폭적인 투자를 받게 되는 실리콘밸리 클린테크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2/4분기 3개월간 전세계 클린테크 산업에 투입된 2조원 중 74%가 미국으로 흘러들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기업에 직접 투자된 돈도 8천억원에 달한다. 5대 벤처캐피털 중 4개가 실리콘밸리에 있는 만큼 이곳의 돈 흐름은 첨단 투자 방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실리콘밸리의 4대 벤처캐피털들은 모두 3~5개 클린테크 기업에 직접 투자를 하고 있다. 이제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자신의 사업을 클린테크와 연결짓지 않고서는 투자를 유치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사였던 아미리스는 자동차, 항공기 등에 쓸 수 있는 ‘클린 연료’ 만들기에 도전하고 나섰다. 지난 4월 브라질의 대형 에탄올 제조기업과 ‘바이오디젤’을 만들기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회사는 바이오디젤이 기존 디젤에 비해 80% 수준의 온실가스만 배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아직 상용화도 되지 않았지만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4260만달러(약 400억원)를 비롯해 총 9천만달러를 투자금으로 유치했다.
컴퓨터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조사인 인텔도 태양에너지 투자에 뛰어들었다. 자회사인 인텔 캐피탈은 지난 7월 독일의 작은 태양에너지 관련 기업에 1억3400만달러(약 13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인텔 캐피털은 “지구온난화 문제와 치솟은 유가로 태양에너지 발전을 비롯한 클린테크 산업이 투자 포커스”라는 입장을 밝혔다.
구글·앨 고어도 투자에 뛰어들어구글도 클린테크 투자에 뛰어들었다. 구글은 이미 캘리포니아 앨러미다에 위치한 풍력발전 시스템 회사인 ‘마카니 파워’에 투자하고 있다. 최근 구글은 클린에너지 발전을 촉진하고 신재생에너지 전력을 더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게 하는 연구에 1억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는 “구글은 장래가 약속된 기술에 대해 열려 있다”는 말로 클린테크에 관한 관심을 설명했다.
환경운동가인 앨 고어 전 부통령도 실리콘밸리 클린테크 투자에 뛰어들었다. 그는 2007년 11월 벤처캐피털 ‘클레이너 퍼킨스 코필드 & 바이어스’에 합류해 환경 비즈니스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투자 회사는 2006년 6억달러의 자본 중 1억달러를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 방법을 개발하는 신생 기업에 투자하기도 했다. 2009년까지는 새로 확보되는 투자금의 3분의 1을 무조건 클린테크에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투자가 몰리면서 일자리 창출도 눈부시다. 미국 태양에너지 학회는 태양에너지 산업의 일자리가 2006년 1만7600개에서 2030년 130만 개로 24년간 7582% 증가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학회 쪽은 신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효율화 산업 전체적으로 2006년 800만 개 일자리, 9330억달러 수익이었던 것이 2030년 4천만 개 일자리, 4조5천억달러 수익으로 뛰어오를 것이라 전망했다. 실리콘밸리 안에서만도 향후 10년간 태양에너지 산업 종사자 수가 10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신규 창출되는 일자리의 60%는 제조·설치 분야, 20%는 판매·마케팅 분야, 나머지 20%는 기술 분야가 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친환경 산업에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실리콘밸리는 클린테크 인재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7월1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박종배 미국전력연구센터(EPRI) 방문 교수(건국대 교수)는 “실리콘밸리로 전세계 젊은이들이 몰려와 클린테크를 배우고 창업에 도전해 투자를 받고 있다”며 “중국, 인도 등에서 온 젊은이들을 많이 만난 반면 한국의 젊은 공학도들은 좀처럼 찾아보지 못해 아쉬웠다”고 말했다.
2007년 12월 미 전역 벤처투자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0%가 클린테크 분야를 ‘투자가 늘어날 분야’로 점찍었다. 또한 올해 초 미 벤처캐피털 협회의 ‘머니 트리’ 보고서는 이제 클린테크는 소프트웨어와 바이오테크 다음으로 세 번째 큰 투자 대상이며 이미 반도체, 통신산업 등을 앞지르고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 클린테크 산업에서 우위를 점한 국가가 세계 시장을 지배하게 될 것임을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실리콘밸리에 자리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실리콘밸리무역관의 구본경 차장은 “최근 실리콘밸리의 클린테크 투자가 ‘닷컴 버블’ 때를 능가한다는 말도 있다”며 “어찌됐든 인터넷 인프라 확충 등으로 ‘IT 강국’의 대열에 올라섰던 한국이 ‘클린테크 시대’를 준비하는 데 뒤처진다면 앞으로 10년 뒤의 장밋빛 전망은 내놓기 어렵다”고 말했다.
때문에 기업과 정부의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박종배 교수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밀어줄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기업들의 눈치보기, 핵심 기술 개발은 외면한 채 ‘친환경’의 포장만 입히는 방식의 사업 진출 등은 한국 클린테크의 경쟁력을 후퇴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녹색 성장’을 통해 단기간의 경제적 이익만을 꾀하려 하면 안된다는 지적이다. ‘지구온난화’가 거대 산업의 논리로 변모한 지금, ‘클린테크 강국’을 향한 치열한 경쟁은 시작됐다.
샌프란시스코(미국)=글·사진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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