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밝힌 ‘비전’, 2030년까지 10~11개의 원전 건설해 에너지 증가 메꿔
▣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2부 에너지, 우리는 얼마나 쓰는가 /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건국 60년을 맞는 오늘,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비전의 축으로 제시(한다)”라고 선언했다.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종 위주인 한국 산업의 현실, 이제껏 747 공약을 앞세워 권위주의 시절의 성장모델을 추구해온 전력 등에 비춰보면 ‘혁신적인 내용’을 경축사에 담은 셈이다.
이틀 뒤인 8월17일,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에서 한 기자가 “원전 10여 기 추가 배치 계획이 이미 나와 있는데, 녹색성장과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이동관 대변인은 “녹색성장 저탄소 사회는 큰 틀에서 보면 여러 가닥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신성장 동력 창출이고 원전산업도 유력한 대안”이라며 “자원빈국의 입장에서 원전을 통해 대체에너지를 충당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답했다. 8·15 경축사엔 ‘원자력’이란 문구가 한 줄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녹색성장’과 ‘MB 노믹스’를 이어주는 거멀못임을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연구원 용역 결과가 그대로 정부안으로
이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밝힌 ‘저탄소 녹색성장’의 실체는 뭘까? 많은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MB식 녹색성장의 핵심이 ‘원자력’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한다. 또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노력은 게을리하면서 대기업들의 신기술 개발 지원에만 힘을 쏟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근거는 8월 말 발표될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담긴 내용들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도 “임기 중 에너지 자주개발률 18% 달성,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사용 비중 11% 이상 확대 등 경축사에 제시된 구체적 목표들은 20년을 계획기간 단위로 해서 5년마다 새로 짜거나 보완하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뿌리를 둔 것”이라고 말했다.
8월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차 공개토론회에서 소개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안’을 살펴보면, 국제유가를 배럴당 119달러로 가정할 때 원전의 설비 비중(발전 가능량으로 본 비중)은 지난해 26%에서 2030년이 되면 36~41%로 증가하는 것으로 돼 있다. 원전의 실제 발전 비중은 같은 기간 35.5%에서 52.5~59.0%선까지 늘어난다.
또 기본계획안에 나오는 4가지 시나리오 중 2030년 원전 설비 비중을 41%로 둔다는 4번 시나리오를 보면, 2030년의 석유·원자력·신재생에너지 수요 비율은 각각 33.0%, 27.8%, 10.7%로 나온다. 이들 에너지의 2006년 수요 비중은 각각 43.6%, 15.9%, 1.9%였다. 기름을 덜 쓰고 재생에너지를 키운다는 ‘녹색성장 비전’의 빈틈을 메우는 에너지원은 수요 비중을 2배 가까이 늘리게 되는 원자력인 것이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의 비율도 크게 늘어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연료전지나 석탄액화와 같은 신에너지 위주이며, 이보다 친환경적인 태양광, 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 비율은 낮다는 점을 문제삼는다.
이와 관련해 환경운동연합의 양이원영 부장은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 원전 비중을 어떻게 둘 것인지는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용역 결과와 시민단체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던 사안”이라며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해 12월 1차 공청회 때만 해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시민사회와의 합의를 추구했지만, 정권이 바뀌자 시민단체 의견은 묵살된 채 연구원의 용역 결과가 고스란히 정부안으로 탈바꿈됐다”고 비판했다. 공개토론회 직후 녹색연합·기독교환경연대 등 18개 시민·환경단체들로 구성된 에너지시민회의 준비위원회는 “지난 30년간 원전 부지 선정을 놓고 엄청난 사회 갈등을 빚었던 것에 비춰볼 때 정부 계획은 불가능한데다 사회 갈등을 더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 섞인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원전 건설, 최고의 고부가가치 사업
MB식 저탄소 녹색성장론은 원자력발전소 건설기술을 보유한 대형 건설업체들에는 호재(?)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가 원자력 설비 비중을 맞추기 위해 2030년까지 10~11개의 원자력발전소를 짓게 되면, 건설 비용이 25조원 안팎에 이르기 때문이다. 100MW 이상의 원자력 및 화력발전소 건설 실적을 보유한 업체로, 전기공사업 등록과 토건업·산업설비공사업 면허 등을 모두 갖고 있어야 원전 건설에 참여할 수 있다. 국내에서 원전 시공 실적을 가진 업체는 현대건설, 대우건설, 두산중공업,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림산업 등 5개사뿐이다.
원전 건설이 이 건설사들에 함박웃음을 주는 것은 높은 수익성 때문이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새로 발주된 신고리 원전 3·4호기는 설계와 핵심 설비 관련 비용을 뺀 순수 시공 관련 입찰금액만 8천억원에 이른 최대 규모의 관급공사였다”면서 “단일공사에서 영업이익률이 15~20%에 이르는 최고의 고부가가치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원전 확충이 건설경기 침체로 고심하는 건설업계엔 단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업체들은 ‘한국형 원전’의 수출 가능성에도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터키는 500MW급 원전 건설을 위해 최근 한국전력과 원전 공동 수주를 위한 공동 개발 협정을 체결했다. 한동안 중단됐던 원전사업을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는 필리핀과 우크라이나 등은 물론 요르단,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최근 원전 건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국가들까지 한국 정부 및 민간업체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환경문제 전문가들은 원전의 확대가 사용후 폐기물 처리 문제를 불러오는데다, 원자력 발전 자체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녹색성장’의 비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확인된 고등급 우라늄 매장량이 370만t 정도로, 전세계 439기의 원전들이 55년 가량 쓸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도 문제다. 또 원전은 출력 조절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남는 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기게 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MB식 녹색성장의 또 다른 주요 문제로는 에너지 사용량 절감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이 꼽힌다. 이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유가가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과도한 석유 의존 시대와 결별해야 한다면서 “기후변화 종합대책도 9월 중에 마련하여, 올해를 저탄소 사회로 가는 원년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린홈’ 100만 호 프로젝트, 유기발광다이오드(LED)와 무공해 석탄 같은 새로운 그린 에너지 기술 개발, 친환경 고효율 ‘그린카’ 집중 육성 등 구체적인 녹색산업 발전전략도 명시했다. 그러나 경축사 어디에서도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자는 말은 찾아볼 수 없다.
에너지 수요 억제 없는 비전
국가에너지기본계획안에 담긴 수요 전망은 시민사회의 걱정을 키우는 주요 근거다. 계획안을 만든 에너지경제연구원은 고유가 조건을 가정하더라도 2006년부터 2030년까지 최종에너지 소비가 연평균 1.1%씩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국민 한 사람당 에너지 소비도 2006년 4.83TOE(석유환산톤, 1TOE는 석유 1t을 태울 때 발생하는 에너지량)에서 2030년 6.18TOE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현재 경제발전을 일정 수준 유지해야 하고 국내 산업구조도 서유럽과 다르기 때문에 에너지 수요 관리나 효율 향상을 최대한 해도 (에너지 사용 감축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력한 에너지 수요 억제 없는 녹색성장 비전에는 신랄한 비판이 날아든다. 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은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대통령의 비전이 에너지를 덜 쓰는 사회로 가겠다는 다짐, 성장률이 좀 낮아지고 생활패턴의 변화에 따른 불편함이 있더라도 감내하겠다는 반성에서 나왔는지 솔직히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에너지시민회의의 이버들 정책차장은 “정말 저탄소 사회로 가려면 에너지를 많이 쓰는 사람에게 부담이 가는 가격구조와 세금체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정책은 외면하면서 그린홈이나 그린카 관련기술 개발을 위한 보조금을 기업들에 안겨주겠다는 ‘집중육성론’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밝혔다.
에너지 안보를 다지겠다는 8·15 경축사의 내용도 문제다. 이 대통령은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고 녹색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우선 에너지 안보를 확고히 다지겠(다)”면서 현재 5% 남짓한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임기 중에 18%, 2050년에는 5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천명했다. 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에서만 사용되는 용어인 자주개발률은 국내에서 소비되는 자원량 대비 한국 정부와 기업이 개발한 유전·광산에서 생산된 자원량의 비율을 뜻한다. 새 정부는 대통령 인수위원회 시절, 이라크 쿠르드 지역의 유전을 개발하겠다고 했다가 이라크 중앙정부의 반발을 사는 등 에너지 자주개발에 대한 조급증을 내비친 바 있다.
유전 확보가 녹색성장과는 관련없다는 비판을 제쳐 두더라도, 최근 이명박 정부의 에너지·자원 확보 외교 자체가 잇따른 실패로 입길에 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업체가 추진하던 러시아 서캄차카 유전개발 사업은 러시아 정부가 탐사계약을 연장해주지 않아 무산될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7월 주요8개국(G8)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데 이어 9월엔 러시아 순방까지 계획된 마당이어서 정부 관계자들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형국이다. 말 많던 이라크 쿠르드 지역 유전 개발도 최근 참여 업체들이 자금 조달이라는 새로운 암초를 만나면서 사실상 중단됐다.
에너지 자주개발 조급증
8·15 경축사에 담긴 목표들에 대해 수많은 문제가 제기되는 원인에 대해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는 ‘철학의 부재’를 꼽는다. 실제 저탄소 녹생성장 비전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청와대 관계자는 “아무리 일자리를 늘리려고 해도 잘되는 기업일수록 자동화가 돼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것이 현재의 구조”라며 “어떻게든 성장 경로를 찾으려는 몸부림이 담긴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이런 정부 쪽 설명에 대해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대운하 건설 과정에 배출되는 막대한 이산화탄소는 무시한 채 배를 이용하면 육상으로 갈 때보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게 이명박 정부 쪽 사람들”이라며 “녹색철학도 없이 비정부기구(NGO)에서 쓰던 용어들을 활용했지만 결국 MB식 녹색성장은 ‘빚 좋은 개살구’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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