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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 기획연재] 녹색 마을 만들려고 똘똘 뭉쳤네

등록 2008-09-05 00:00 수정 2020-05-03 04:25

새 ‘타운센터’를 친환경적으로 짓기 위한 미국 포톨라밸리 주민과 시청의 노력

▣ 포톨라밸리(미국)=글·사진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3부 세계의 에너지 절감 현장 /

7월14일 오후 포클레인 소리로 시끄러운 곳에 차가 멈춰섰다. 울창한 나무 사이, 흙먼지 속에 보이는 컨테이너 가건물이 ‘임시 청사’라 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시장입니다.” 컨테이너에 들어서자 헐렁한 티셔츠 차림의 매리엔 모이스 더윈이 손을 내밀었다. 이 곳이 시청 청사와 시민회관, 도서관 등이 입주할 타운센터 전체를 ‘녹색 건물’(Green Building)로 짓고 있는 포톨라밸리(Portola Valley)다.

포톨라밸리는 캘리포니아 샌마테오 카운티에 속한 인구 4천 명의 작은 도시다. 평균연령 47.5살, 92.9%가 백인, 대학원 이상 학위 소지자가 50%, 가구당 평균소득이 1억8천만원인 부촌이기도 하다. 가까이에 있는 스탠퍼드대학 졸업자가 많이 살고 있으며 은퇴한 뒤 지역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지내는 이들도 많다.

나무판, 시멘트, 못 하나에도 아이디어

지난 2006년 초, 시에서는 지진 피해를 입어 붕괴 위험이 있던 학교를 없애고 그 자리에 포톨라밸리의 새로운 시민 공간인 타운센터를 짓기로 했다. 계획의 핵심은 이 모든 시설을 ‘초록’으로 짓자는 것이었다. “이곳 주민들은 40년 전부터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린타운 건립은 주민들의 뜻에 따른 거지요.” 포톨라밸리는 2006년 9월 미국 중앙정부도 비준하지 않은 ‘교토의정서’를 준수하겠다고 먼저 선언한 곳이기도 하다. 교토의정서에 따르면 미국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2012년까지 1990년 대비 7% 감축해야 한다.

녹색 타운센터를 짓기 위해 우선 철거된 학교 건물에 쓰인 목재와 못 등 건축자재의 90%를 새 건물에 재활용했다. 나머지 목재는 지속 가능한 산림경영 활동을 통해 생산돼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의 인증을 받은 나무만 사용했다. 도서관과 시민회관의 지붕에는 태양광 발전판을 설치해 타운센터에서 쓰는 전기를 직접 생산할 예정이다. 더윈 시장은 “공사가 끝나고 1~2년 뒤부터는 지붕에서 생산되는 태양에너지의 일부를 전력회사에 팔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지역은 지진대에 위치해 있어 모든 건물을 단층으로 짓는다. “1층이지만 천장이 높고 벽의 위쪽은 전부 창문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천장에는 큰 팬이 달려 있고요. 채광과 환기가 탁월한 구조죠. 지금도 밖에는 더운데 이 안은 시원하잖아요.” 공사장 곳곳을 함께 둘러보던 현장 소장의 말이다. 이렇듯 건물 내부는 낮 시간에 전등을 켜지 않아도 환하고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시원하게 설계했다.

건물 전체에 쓴 콘크리트도 인근 발전소에서 나온 쓰레기를 섞어 만든 ‘플라이애시 시멘트’다. 이 시멘트는 일반 시멘트보다 제작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50% 줄여주는데다, 강도는 200% 높다. 일반 시멘트보다 굳는 데 시간이 더 걸리는데, 시멘트 특성상 그럴수록 강도는 높아진다고 한다.

“녹색 건물을 만드는 데 규칙은 없습니다.” 더윈 시장이 말했다. “전부 아니면 아무것도 안한다(all or nothing)는 식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 건강한 환경, 더 에너지 효율적인 공간을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조금씩이라도 생각하고 실천해나가는 게 핵심이죠.”

이 때문에 주민들의 ‘자연 사랑’ 아이디어를 시는 소중하게 받아들였다. 시청 현관 바닥이 굳기 전, 다양한 나뭇잎을 찍어 화석처럼 문양을 만든 것이 한 예다. 시민들은 아이디어만 모은 것이 아니다. 녹색 타운센터 건립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모금 활동으로 이어졌다. 타운센터 건립에 드는 총 185억원의 예산 중 155억원이 주민 모금으로 채워졌다.

건축자재 재활용과 설계 단계의 아이디어 덕분에 녹색 건물을 짓는 데 드는 비용은 ‘녹색이 아닌’ 건물을 지을 때보다 5% 정도만 더 들었을 뿐이다. 아직은 비싼 태양광 발전시설과 플라이애시 시멘트, FSC 인증 나무 등을 구입했는데도 말이다. 결국 건물을 친환경적으로 짓겠다는 ‘의지’가 문제인 셈이다.

이렇게 해서 시청과 함께 매년 6만 명이 방문해 책을 읽을 도서관과 150여 가지의 야외활동이 펼쳐질 운동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올해 말 공사가 끝나면 이곳은 미국 최초의 ‘그린 타운센터’가 될 것이다.

기후변화 연구하는 70대 자원봉사자

공사장을 나와 찾아간 곳은 인근의 ‘재스퍼 리지 생태보호지’였다. 이곳은 2003년 과학전문지 에 발표된 ‘글로벌 체인지 프로젝트’ 실험으로 알려진 곳이다. 당시 미국 스탠퍼드대학 환경생물학자 폴 애칠러스와 그 동료들은 이 지역을 3년간 관찰한 뒤 이산화탄소 배출이 식물의 생장에 해를 끼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식물들에게 필요한 물질인 이산화탄소가 공기 중에 늘어나면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식물의 생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존의 믿음을 깨뜨렸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비슷한 실험이 11년째 되풀이되고 있다. 15년 전에 은퇴해 지금은 스탠퍼드대학의 자원봉사 연구자로 있는 70대의 빌 고메즈는 “재스퍼 리지 지역에 32개의 장치를 설치해 기후변화에서 나타날 수 있는 ‘4가지 요인’을 조절해가며 온난화가 농업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관찰하고 있다”며 “지속적인 실험을 통해 기후변화가 50년 뒤 캘리포니아 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4가지 요인이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 △온도 상승 △강우량 증가 △화석연료 사용의 부산물로 증가할 질소침전물을 뜻한다. 4가지 요인은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들인데 이산화탄소와 다른 요소가 합쳐지면 오히려 식물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연구 결과는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현재 이 실험에는 정부와 각종 기금에서 매년 60만달러가 지원되고 있다.

재스퍼 리지 생태보호지 안에는 스탠퍼드대학의 ‘선필드 스테이션’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 연구자들과 학생들이 각종 학문·교육 활동을 할 수 있도록 2002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샌마테오 카운티 녹색 건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태양광 발전으로 모든 에너지를 생산해 사용하고 주변의 습지를 보호하고 물을 아끼기 위한 시설도 갖췄다. 설계 자체에서 에너지 효율을 생각한 이 건물은 포톨라밸리 녹색 타운센터의 모델이 됐다.

선필드 스테이션의 앞마당에서는 고등학생들과 스탠퍼드대 교수가 함께하는 자연 수업이 한창이었다. 방학을 맞아 곤충을 관찰하는 수업을 신청해 이곳을 찾은 고등학생들의 표정은 밝았다. 지역 주민과 시 당국, 그리고 대학이 치밀하게 연계해 만들어가는 ‘녹색 마을’의 실험은 그렇게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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