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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수수 에탄올, 달콤한 독인가

등록 2008-08-22 00:00 수정 2020-05-03 04:25

브라질이 세계 최대로 육성한 바이오연료 산업… 가격경쟁력 있으나 오히려 온실가스 높인다는 비판

▣ 마투그로수(브라질)=글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1부 불타는 아마존 /

클러치에서 조심스레 발을 떼자 ‘골’(Gol)은 천천히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폴크스바겐에서 만든 이 1600cc짜리 소형차는 5단 기어를 넣은 상태에서도 가속페달을 얼마든지 더 밟아달라고 말하는 듯했다. 마투그로수주의 주도 쿠이아바에서 바하두부그리스로 향하는 3시간 내내 골의 엔진은 폭발적인 성능을 자랑했다.

이 자동차의 연료는 옥탄가 113의 순수 에탄올이었다. ‘옥탄가’란 연료의 내폭성을 나타내는 수치다. 휘발유의 등급을 일반과 고급으로 가르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옥탄가다. 일반 휘발유의 옥탄가는 91 이상, 고급은 94 이상이다. 현재 국내 정유사들이 생산하는 일반 휘발유는 옥탄가 91~93 수준이다. 경주용 자동차 연료로 인정받는 최고급 휘발유라 해도 옥탄가는 100을 넘지 않는다.

오일쇼크 계기로 국가가 지원

7월28일 브라질 쿠이아바 공항에서 만난 택시기사 가브리엘 핀투(60)는 “3년 전 플렉스(Flex) 자동차로 바꾼 이후 계속 에탄올을 넣어왔다”며 “휘발유로 달릴 때보다 에탄올을 넣을 때가 훨씬 힘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핀투는 에탄올 가격이 휘발유 가격의 60%를 유지하는 한 다시 휘발유를 넣을 생각이 없다. 플렉스 자동차란 2003년 개발된 이중연료 차량을 말한다. 플렉스 차량을 모는 운전자는 휘발유와 에탄올 모두를 연료로 쓸 수 있다.

브라질 에탄올 산업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사탕수수 줄기에서 주로 설탕을 뽑아냈던 브라질은 이제 설탕 대신 에탄올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사탕수수에서 130억ℓ의 에탄올을 얻어냈던 브라질은 올해에도 200억ℓ 안팎의 에탄올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브라질의 에탄올 생산은 1975년 정부의 ‘에탄올 에너지 국가계획’(Plano Nacional do Alcool·Proalcool)에 따라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육상교통에 주로 의존하던 브라질은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겪으며 대체에너지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브라질 정부는 이때부터 사탕수수 에탄올 생산업체에 정부 지원을 확대했다. 동시에 에탄올 가격보조금, 에탄올 자동차 제조업체들에 대한 감세 혜택 등의 방법으로 에탄올 산업을 키웠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브라질의 에탄올 생산 단가는 리터당 0.19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세계 평균은 0.40달러다. 옥수수에서 에탄올을 뽑아내는 미국은 0.47달러, 유럽은 0.48~0.52달러, 오스트레일리아는 0.32달러로 나타났다. 브라질의 에탄올 산업이 세계적으로도 가격 경쟁력을 갖춘 것이다.

에탄올 시장이 국제유가의 영향을 크게 받는 편이기는 하지만 전망도 대체로 좋다. 전문가들은 기름값이 배럴당 25달러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한 에탄올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배럴당 25달러는 1990년대 수준이다. 브라질 에탄올 산업에 대한 석유 수입국들의 관심과 수요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브라질 정부의 에탄올 산업 장려는 고용 창출과 세금 수입 확대, 농공업 기술 개발, 해외 에너지 의존도 감소, 무역수지 호전 등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바이오에너지의 친환경성에 열광하는 환경론자들은 에탄올이 화석연료에 비해 대기오염을 감소시킬 것이라며 환영했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는 화석연료와 달리 사탕수수는 성장 과정에서 오히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지구 온난화 저지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론과 실제 사이에는 언제나 괴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일단 에탄올을 추출하기 위해 사탕수수를 가공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 취재진이 바하두부그리스를 찾아간 7월29일 에탄올 생산업체 바하알콜이 소유하고 있는 드넓은 사탕수수 재배지 가운데 상당수가 검게 그을린 상태였다. 브라질에서는 사탕수수가 다 자라면 불을 지른다. 브라질 노동법에는 고용 안정을 위해 일정 비율 이상의 사탕수수 재배지는 반드시 노동자들이 손으로 직접 수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4m 안팎의 키 큰 사탕수수를 직접 베어내려면 많은 위험이 따른다. 뱀에게 물리기도 하고, 억센 사탕수수 잎에 살갗이 베일 수도 있다. 작업을 쉽게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잎을 태우고 줄기만 남겨야 한다. 이때 이산화질소와 메탄 등 온실가스가 하늘을 가득 메운다. 작업반장 프란치스코(42)는 “기계로 수확하는 곳은 굳이 불을 지를 필요가 없지만 노동자들이 직접 베어내는 상당수 재배지는 반드시 불을 지른 뒤 작업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탕수수 에탄올의 수요가 늘어가면서 토지 수요도 덩달아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유럽 등이 브라질의 사탕수수 산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주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룰라 대통령, 반격에 나서

올 초 과학잡지 는 “바이오연료의 원료 작물인 옥수수나 사탕수수 등을 재배하기 위해 농민들이 열대우림이나 초원을 개간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오히려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는 당연히 브라질의 아마존 우림이 포함된다. 비슷한 시기에 과학잡지인 에 발표된 논문도 “바이오연료 생산을 위해 산림을 없애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양이 그 땅에서 재배된 식물로 만든 바이오연료가 줄이는 온실가스 양보다 무려 93배나 더 많다”며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했다.

더 나아가 에탄올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브라질의 대두산업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에탄올 원료로 옥수수를 이용하는 미국에서 농민들이 원료 작물인 옥수수 재배에 매달리면서 콩 공급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자 수익을 노린 브라질 농민들이 너도나도 콩 재배에 뛰어들었고, 이는 곧 아마존 우림의 파괴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정부 차원에서 에탄올 산업을 지원하는 브라질은 이같은 주장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과 빈곤국의 에탄올 생산 및 수출을 억제하기 위해 환경적 위험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등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반격의 선봉에 선 사람은 다름 아닌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었다.

지난 4월 네덜란드 등 유럽을 방문한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의 사탕수수 재배는 아마존 우림과는 멀리 떨어진 중부 및 중남부 지역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다”며 “에탄올 생산에 사용되는 경작지는 전체 경작 가능 면적의 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굳이 아마존 우림을 개간하지 않더라도 브라질 중남부와 동부에 개간할 수 있는 땅이 얼마든지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와 함께 그는 지난 30년간 휘발유를 에탄올로 대체하면서 모두 6억4400만t의 온실가스를 줄였다고 강조했다. 물론 경작지 확보를 위해 아마존 우림을 훼손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지만, 철저한 단속 노력을 펴고 있다는 게 브라질 정부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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