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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최 절기가 맞지 않는다

등록 2008-08-21 15:00 수정 2020-05-02 19:25

절기를 무시하고 계속되는 폭염과 폭우… 서울에서 드러나는 아열대 기후의 징후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1부 불타는 아마존 /

8월12일 새벽 3시, 서울 노원구와 동대문구에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더니 급기야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로 변했다. 이날 이들 지역에는 단 서너 시간 만에 최고 120mm가 넘는 게릴라성 호우가 내렸다. 반면 같은 날 동대문구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서대문구에는 하루 내내 단 3mm의 비가 오는 데 그쳤다. 같은 서울에서도 극과 극의 강수 형태가 나타난 것이다.

최저기온 상승, 열대야가 늘어난다

서울 등 중부지방의 집중호우는 다음날 새벽에도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시간당 30mm 이상 또는 하루 80mm 이상의 비가 내리거나 연 강수량의 10%에 해당하는 비가 하루에 내릴 때 집중호우가 쏟아졌다고 말한다.

최근 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 잦아지고 있는 국지성 호우에 대해 동남아시아와 같은 아열대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스콜과 유사하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아직 겨울철 기온이 낮아 아열대 기후에 진입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열대 기후의 ‘징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여름철 집중호우는 북태평양 지역에서 오는 고온다습한 공기가 다시 가열되면서 불안정해진 대기에 의해 발생한다. 기상청 관계자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대기 온도가 높아지면서 여름철 강수의 형태가 국지성 집중호우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구 온난화가 한반도의 날씨에 미친 영향은 7월 기상자료를 분석해보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기상청은 “전국 60개 지점에서 관측한 기상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달 전국 평균 기온이 26.0도로 평년보다 1.5도 높았고 강수일수도 평균 14.5일로 0.7일 많았다”고 밝혔다. 평균 최고기온은 30.3도로 평년에 비해 1.5도 높았고, 특히 평균 최저기온이 22.8도로 1.7도 상승해 1973년 이후 세 번째로 높았다. 서울만 보면, 평균 기온과 평균 최저기온이 각각 25.1도와 22.6도로 평년보다 0.2도와 0.8도 높아졌다.

가장 주목되는 사실은 평균 최저기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는 여름철 밤이나 새벽에도 열기가 식지 않았다는 뜻이다. 통상적으로 말하는 열대야는 여름철 밤 기온이 2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지난 7월 열대야가 발생한 날은 전국 평균 3.4일로, 평균 7.4일을 기록한 1994년과 열대야가 평균 3.8일간 나타난 1978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이처럼 최저기온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기후변화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다. 윤원태 기상청 기후예측과장은 “과거 70~80년대에는 여름철 평균 5일 안팎의 열대야가 발생했는데, 올 7~8월에는 열대야 현상이 굉장히 많이 나타나고 있다”며 “여름철 최저기온이 상승하면서 나타나는 열대야 현상의 증가는 서울뿐 아니라 전국 도시들에서 공통적으로 관측되고 있다”고 말했다.

절기상 가을의 시작이라는 입추가 지났는데도 무더위가 그치지 않는 것도 지구 온난화의 영향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올해 역시 입추였던 8월7일 이후에도 폭염이 계속됐다. 10일에는 영동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전국에 걸쳐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이날 홍천이 기록한 기온은 36.6도였다.

안준관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변화팀장은 “더위가 끝난다는 말복이나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 모두 최근 한반도 기후를 보면 거의 실제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름이 길어지고 폭염이 계속되면서 나타나는 또 다른 현상은 장마까지 길어진다는 것이다. 과거 비가 집중적으로 내렸던 장마기간은 주로 6월 하순에서 7월 하순까지 걸쳐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장마가 끝난 뒤 비가 더 많이 오는 강수 패턴을 보이고 있다. 기온이 상승하면서 대기 중에 열에너지가 증가하고 이것이 수증기를 더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1980년을 기점으로 이같은 경향은 더욱 도드라졌다.

장마 뒤 폭우, 강수강도 증가

과거 강수 패턴을 보면 이같은 결과는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 강릉, 광주, 부산, 전주, 대구 등 우리나라 6대 도시의 여름철(6~8월) 평균 강수량은 1955~79년의 경우 장마철에 비가 집중되면서 7월이 268mm로 가장 많았고, 8월 224mm, 6월 149mm순이었다. 반면 1980~2004년에는 8월 강수량(300㎜)이 많아지고 있다. 7월은 281㎜, 6월은 249㎜를 기록했다. 8월과 7월의 강수량이 순위 바꿈을 한 것이다.

실제로 올해에도 7월 평균 강수량은 230.3mm로 평년 대비 87.4% 수준에 머물렀다. 최근 서울 등 곳곳에 국지성 호우가 빈발하고 있는 것으로 미뤄볼 때, 8월의 강수량이 오히려 7월치를 역전하는 현상은 올해도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유난히 푹푹 찌고 집중호우도 많은 올 여름. 지구 온난화 문제가 짜증과 함께 우리 피부로 다가오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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