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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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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왼손’들

등록 2002-10-16 00:00 수정 2020-05-02 04:23

노동자란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을 뜻한다. “공무원이 노동자냐”라는 어리석은 질문으로 공무원노동조합을 인정치 않으려는 것은 분단상황이 낳은 사상적 반신불수의 반이성적 표현이다.

우리는 ‘졸속행정’이라는 말에 익숙하다. 사회적 의제들에 관해 충분한 토론을 거쳐 정책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선거 대비 선심용이나 임기 내 공적 쌓기용 등 밀어붙이기 정책결정의 결과였다. 조령모개·빨리빨리·임기응변이 특징인 국가행정에 딱 한 가지 예외가 있다. 어둡고 긴 독재정치 때문에 늦어지고 중단된 민주적 제도를 바로 세우는 데는 답답할 만큼 굼뜨다는 점이다. ‘주5일 근무제’가 하나의 예인데, 이번에 행정자치부가 내놓은 ‘공무원조합법(안)’이 또한 그렇다.

피해자이며 미필적 고의의 가해자

도대체 5·16 군사쿠데타 세력이 빼앗은 공무원들의 노동권을 4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온전히 되살려주지 않으려는 까닭은 무엇일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찾을 수 없는 국가귀족들이 지금까지처럼 사익 추구를 수월히 하려는 의지말고는 찾기 어렵다.

공무원들의 노동 3권은 이 땅에 민주공화국이 수립된 1948년에 헌법에 명시되었다. 다시금 강요하지만, 공화국(republic)은 어원이 말해주듯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공(public) 개념, 나아가 공익(public interests) 개념을 전제로 한 사회를 뜻했다. 자유로운 시민들이 공익을 추구하는 사회가 공화국인데, 이러한 공화국에서 공공서비스(public service)에 종사하는 공복(公僕)들인 공무원들이 자유로운 인격체가 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5·16 쿠데타 세력은 상명하복의 군사문화를 공직사회에 강제해 공무원들의 노동 3권을 박탈하고 그들을 사병(私兵)화했다. 이제 갓 태어나 걸음마 단계에 있는 민주공화국의 발전을 저해하고 그 정신을 훼손시킨 것이었다. 그 뒤 40년이 흘렀다. 노태우정권이 한 차례 거부하기도 한 공무원노동권은 문민정부 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부터 창피스러운 권고까지 받아야 했는데, 이제 국민의 정부가 끝나는 시점에 생색내듯 내놓은 게 공무원노동조합법이 아닌 공무원조합법이다. 단체행동권은 물론 단체협약권조차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그나마 앞으로 3년을 유예하겠다고 한다. 그들의 신조가 “행정은 빨리빨리, 민주화는 천천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근대공화국에서 사회정의는 질서에 우선한다. 그것은 봉건적 신분 ‘질서’를 무너뜨린 자유와 평등의 근대공화국 이념의 당연한 표현이다. 사회정의가 이뤄진 사회에선 질서와 안보는 당연히 이뤄지지만 사회정의보다 질서 이데올로기가 강조되는 사회에선 늘 사회정의의 요구가 억압되곤 한다. 예컨대 프랑스의 경찰에게 단체행동권이 허용되는 것은 질서를 지켜야 하는 그들에게서도 사회정의를 요구할 권리를 박탈할 수 없는 근대공화국 이념 때문이다.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단체행동권을 박탈하려는 것은 질서 이데올로기로 사회정의를 억압하려는 전근대적 권위주의의 발상이다.

노동자란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을 뜻한다. “공무원이 노동자냐”라는 어리석은 질문으로 공무원노동조합을 인정치 않으려는 것은 분단상황이 낳은 사상적 반신불수의 반이성적 표현이다. 전근대성과 비합리성이 지배하는 우리의 공직사회가 비리와 부정부패의 온상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고급관료나 국회의원은 중하위직 공무원들을 마음대로 부리는 국가귀족이 되었다. 국가귀족에 예속된 중하위직 공무원들은 구조적으로 국민에 봉사하는 대신 국가귀족에게 충성해야 하는 조건에 놓이게 되었다. 그들은 권위주의적 관료사회에서 비리와 부정부패, 정실 인사와 낙하산 인사 등의 피해자인 동시에 종종 미필적 고의의 가해자가 되어야 했다. 중하위직 공무원들은 누구로부터도 인격체를 가진 인간으로 대접받기 어려웠다. 고위관료와 국회의원들은 그들을 머리도 가슴도 없는 수족 대하듯 했고, 일반 국민은 국민대로 그들을 경멸했다.

공무원조합법에 반대한다

이제 중하위직 공무원들이 오랜 굴종과 경멸의 시기를 뚫고 공무원노동조합을 결성해 당당한 인격체로 나설 태세를 갖췄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말을 빌리면, 전교조 교사들에 이어 이 사회의 중요한 ‘국가의 왼손’들이 ‘국가의 오른손’(국가귀족)을 견제해 균형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행정자치부의 공무원조합법(안)에 반대하고 공무원들의 노동 3권 투쟁에 연대 동참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중하위직 공무원들이 기본적 인권을 되찾고(그들에게 그동안 강요된 굴종과 억압에 견줘볼 때 인권회복 차원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공직사회에 투명성을 확보해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 협잡을 없애고 명실상부한 공복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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