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9월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1인시위에 나선 유정임(왼쪽)씨와 여흥구씨. 여흥구 제공
179명이 사망한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1년9개월이 지났다. 유가족들의 고통은 여전하고 진상규명도 제자리걸음인데, 지역에선 공항을 다시 가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보도를 통해 반복되고 있다. 한겨레21은 유가족의 구술을 토대로 한 참사 희생자의 기록을 이어간다. 이번호는 참사로 딸 여채영씨, 사위 김슬기씨, 손녀 김다솜씨, 손자 김세현씨까지 네 가족을 잃은 여흥구씨의 구술이다. _편집자
아내가 올해 70이에요. 딸이 칠순 잔치 멋지게 해준다고 했는데. 결국 안 해주고 갔어. 약속도 안 지키고 갔어. 그 대신 한 1년 전에 딸이 핸드백을 사줬어요. 비싼 거로. 아내한테 조금이라도 젊을 때 들고 다니라고. 그냥 이것저것 다 생각나요.
딸이 참사 당시 46살이었어요. 손녀가 15살, 손자가 14살, 사위는 48살. 딸이 애들 데리고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이에요. 우리 딸이 철두철미한데, 그때 애들이 방학을 아직 안 했단 말이야. 손녀는 졸업하는 학년이라 학교에 조금 안 가도 돼. 손녀가 사춘기가 와서 엄마 말도 잘 안 듣고 하니까 애 마음도 달랠 겸 다녀온 거지.
딸이 거기서 아내하고 연락하고 사진 보내고 그랬더라고. 손녀도 카톡으로 지금 뭐 한다고 설명해주고 사진 보내주고. 엄마가 타이 민속 옷도 입고 무지하게 행복한 모습이라고.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습니까.
사고가 난 날에는 늦게까지 침대에 누워 있는데 아내가 깨우더라고. 무안공항에서 사고 났다고. 처음에 막 손녀한테 전화했는데 통화가 안 되니까. 신호는 가는데 불통이 돼서. 아내 친구한테서 티브이(TV) 한번 보라고 전화 오고 난리도 아니었어. 그날이 애들 돌아오기로 한 날이니까 방도 좀 치워놓고 했거든.
티브이 보니까 타이에서 오는 비행기야. 그래서 막 공항에도 전화하는데 전화가 안 돼. 바로 공항으로 갔지. 소방서 다니는 아들한테 전화하니까 아들이 바로 왔어.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뭐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겠어.
우리는 네 식구나 되니까 한 번에 수습이 안 돼서 사위가 먼저 나오고 다 찾는 데 한 일주일 걸렸지. 우리 아들하고 사돈댁 아가씨가 우리는 못 들어오게 하고 저희끼리 다 했어. 특히 주검 수습은 들어가보지도 못하게 하고 저희끼리 다 했어요.
많이 훼손은 안 됐다고 했는데 안 되었겠어요? 뻔하지. 우리 위안시키려고 그랬겠지. 소방서 다니는 막내아들이 지금 트라우마가 많아요. 자기 누나랑 조카들을 다 봤으니까. 워낙 든든한 놈이라 우리한테 티는 안 내지만.
자녀는 2남1녀, 큰애가 이란성 쌍둥이예요. 장녀가 25분 차이로 먼저 나왔죠. 그 시절만 해도 쌍둥이 키우기가 힘들었어요. 지금같이 육아용품이 뭐야. 기저귀 빨아서 쓰고. 그래도 걔네가 말썽을 안 피웠으니까 다행이지. 어렸을 때부터 애들이 싸우거나 하는 게 없었어요.
우리 딸은 부모를 한 번도 성가시게 안 했어요. 학교 다니면서도 준비물이나 숙제를 다 제때 챙겨요. 혼자 알아서 할 일을 잘해요. 또 아내가 딸한테 책을 엄청 많이 사줬어요. 우리 애들이 다 책을 많이 읽었어. 의대 다닐 때도 항상 장학금 받고 다니고, 광주시에서 주는 장학금도 받았어요. 우리 딸이라서가 아니라 진짜 야물딱져.
딸이 맏이니까 사회생활을 가장 먼저 했어요. 동생들도 다 알아서 챙겨주고, 우리도 챙겨주고, 시부모님한테도 잘하고. 딸이 든든하긴 했지만 남들한테 자랑은 안 했지. 그냥 티를 안 냈어요. 우리 아내도 그렇고. 그런 자랑을 하면 축하하는 게 아니라 속으로는 좀 그렇잖아요. 마음은 제일 사랑하고 그랬지만, 남들한테는 우리 딸이 어쩌네 이런 얘기는 안 했어.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 이제 정말 잘나갈 때인데 마음이 아프네. 사위는 이제 막 교수도 됐고, 딸 또래들이 사회에서 꽃을 피울 때잖아요. 이제는 다 필요 없지만…. 명이 길게 태어나야지.

여흥구씨 딸 여채영씨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여흥구 제공
지금 집이 손자 애들 다니던 학교 옆이라서 아내가 굉장히 힘들어해요. 애들 어릴 때부터 키우고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고 그랬으니까. 아내가 힘들어하니까 아들이 먼저 이사하라고 막 난리야.
딸하고 엄마하고는 친구더구먼, 친구. 친구하고 똑같더구먼. 애들 혼자서 키우기 힘드니까 우리가 손주도 키워주고. 딸 집이랑 우리 집이랑 걸어서 20분 정도 걸려서 반찬도 갖다 주고 빨래도 해주고. 손주들 키우는 정이 또 있잖아요.
아내는 참사 이후에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어요. 지금도 약을 먹어도 잠을 못 자요. 자식이 죽었는데 잊히지 않아. 그런데 어쩔 거야. 이제 어떻게든 받아들이고 해야지 어떡해. 나도 난데 애 엄마를 무지하게 걱정했어요. 아내가 엉뚱한 생각 할까봐 항상 불안해요. 그래서 내가 셸터만 오고 남은 시간은 집에 있었지. 요즘 잔잔해졌구나 하면 아내가 울고 있으니까 마음이 안 놓이지. 저는 집에서 눈물 나올 일 있으면 그냥 화장실을 가요. 아내한테 그런 모습 안 보이려 노력하죠. 내가 흐트러지면 안 되니까.
손주들은 너무 예쁘지. 아무리 미운 짓도 예뻐. 딸이 손주한테 뭐라고 하면 내가 그렇게 못하게 하고. 뭔 짓을 해도 이쁘니까. 손주들은 재롱을 피우잖아. 갈수록 손주들 생각이 많이 나요. 우리 손주들만 한 애들 보면 생각나고, 티브이에 나와도 생각나고. 그래서 일부러 채널을 돌려서 그런 건 잘 안 봐요. 제 아내도 그걸 못 보고.
또 참사 때 비행기 안에서 대체 어땠을까 생각하면 그날 잠 못 자버리죠. 차 타고 어디 가다가도 그 생각이 나면 멈춰서 한참 눈물을 흘렸다가 가. 착륙했을 때는 다 살았다, 그 생각 했을 텐데. 아빠 엄마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을 거 아니에요. 하여튼 그 생각 하면 그날 밤에 잠을 못 자. 어제도 셸터에서 자면서 새벽 두 시 반에 그 장면이 생각나는 거야. 그길로 잠 못 잤지, 뭐. 생각을 안 하려 해도 딱 생각나요. 예뻤던 모습만 기억하고 사고 난 과정을 기억에서 지워야 하는데, 그것이 안 지워지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잔해물 재조사가 이뤄진 2026년 2월12일, 여흥구씨가 잔해물을 확인하러 무안국제공항 쪽으로 향하고 있다. 유가족협의회 제공
내가 참사를 당해보니까 정부에서는 무조건 감추려고 하더구먼. 알다시피 우리 유족들 힘으로 여기까지 왔지 정부에서 알아서 해준 게 없잖아요. 힘들어도 안 빠지고 일 있으면 다 가요. 내가 셸터 안 지키면 누가 지킬 거야. 그나마 우리가 직장은 안 다니니까 우리가 해야지. 내가 애들한테 해줄 게 아무것도 없는데 여기 오는 거랑 진상규명밖에 없지. 셸터가 불편하지 않으냐고 하지만 여기 편하려고 온 건 아니잖아요. 지금은 내가 할 일이니까 불편하게 생각 안 해요.
내가 보상을 많이 받는다고 해도 돈이 필요가 있어, 뭐가 필요 있어? 오직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아야, 그래야 떠난 가족들한테 할 말이 있지. 이대로는 안 돼. 그래서 우리가 여기를 지키고 있는 거예요. 여기에라도 없으면 정부가 우리한테 신경이나 쓰겠어요. 그냥 개항해버리는 거지. 예도 안 지키고.
기억버스를 타고 세월호, 이태원 유족들과도 함께했죠. 내가 이 참사를 안 겪었을 때는 그 사람들 마음을 이렇게 몰랐지. 내가 당해보니 다른 유족들 마음이 어땠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요즘도 아직 해결이 안 됐더라고. 오송 지하차도 참사 같은 경우는 오송에서 빨리 지하차도 다시 만들자고 하더라고요. 여기 무안공항도 재개항하자고 하는데, 뭐.
사실 우리가 개항을 못하게 한 건 아니야. 해결돼야 개항하지, 우리가 못하게 한 것은 아니잖아요. 엊그제도 이재명 대통령이 유가족하고 협의하라는데, 아니 우리하고 협의할 일이 아니잖아요. 공을 완전히 우리한테 넘기려고 하면서 우리가 마치 개항을 못하게 하는 것처럼. 그건 아닌데. 문제 해결을 하고 그다음에 우리한테 물어봐야지. 둔덕도 치워야 개항할 것 아니요. 활주로 연장도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진상규명이 되어야 하잖아요. 사고 현장 수습도 제대로 안 됐는데 뭐가 되겠어요. 그걸 먼저 빨리 제대로 하란 말이에요, 내 말은.
진상규명이 당장 내일이라도 되면 우리 유족도 떠나지. 보다시피 우리가 좋아서 여기 있겠어요? 어쩔 수 없이 진상규명 때문에 여기 있는 거지. 어떻게 이 상황에서 개항하라고 하겠소? 우리도 반대한 적 없어요. 또 언론에서는 유족들이 반대한다고 나올 거야.
참사 당시에는 아무 정신이 없었어요. 당시 언론에서 제주항공 보상해서 끝났다는 식으로 하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장례도 열흘 만에 마무리됐고 협의 다 돼서 보상된 줄 알고. 또 방송에서는 제주항공 쪽에서 10만달러짜리 보험 들었으니 보상에는 문제가 없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버리고. 그러니까 지인들도 그렇게 다 끝난 줄 알았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트럭에 스티커를 붙일 때는 우리 참사가 너무 묻혀버리니까 좀 알려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트럭을 몰고 다니면 많이들 와서 물어봐서 이제는 트럭 옆에까지 스티커를 붙였어요. 내용을 읽고 와서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아직도 해결이 안 됐냐고 물어보면 설명해드리죠. 아직도 사람들이 많이 몰라요.
서울에서 피켓 들고 시위했던 거는 이 상황을 정상적으로 돌려서 진상규명을 제대로 해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뛰어다녔지. 우리가 뛰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몇 개월을 가만히 있었는데요. 해결이 안 되니까 거리로 나선 거 아닙니까.
무안이나 서울에 갈 때는 오직 진상규명을 위해서 내가 무슨 일을 못하겠냐, 그런 생각으로 가죠. 죽은 사람도 있는데, 내가 무엇을 못하겠냐 그런 생각으로. 지금은 오직 진상규명만 보고 무서울 것이 없어.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조금 진행된 편이지. 처음에는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사진도 못 찍게 하고 그랬어. 우리 유가족들이 항의 안 했으면 저것(비행기 잔해)도 어디에다 갖다 처분해버릴 사람들이야. 삼풍백화점 때도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에다 싹 갖다 넣었잖아요. 매립해버렸잖아요. 우리 참사도 조종사 과실치사라고 하려 했다니까요. 잘못을 다 조종사 쪽으로 밀어버리고 진상규명이 돼버린 것처럼.
유가족들에게도 진상규명이 필요하지만, 진상규명이 됨으로써 참사가 우리를 마지막으로 끝나야지 이대로 개항해버리면 어떡하냐고. 활주로 연장도 그렇고. 우리가 요구해서 새 쫓는 것도 한 사람, 두 사람이 하다가 열 몇 명으로 늘렸잖아요. 첨단 장비도 들어오고. 로컬라이저도 부서지기 쉽게 여기뿐 아니라 7개 공항 다 개선하고 있잖아요. 빨리 개항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 항공안전법이 완전히 정비되고 안전시설이 온전히 갖춰지고 난 뒤에 개항해야지.
현재 이런 식이면 다음에 또 사고가 없으리라는 법이 없잖아요. 내 생각은 그래요. 이번으로 끝나야죠. 앞으로 우리가 이동수단으로 비행기를 더 많이 이용할 텐데 이런 사고가 또 있으면 안 되니까. 이미 우리 가족을 잃은 슬픔은 더는 말할 것도 없지만, 다음 우리 손주 세대가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그렇잖아요. 그동안 미비했던 부분이 완전히 갖춰지고 개항을 해야지. 그래서 지금 유가족이 다 그런 마음이야.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어. 전혀 그 보상을 무시할 수는 없는 문제 아닙니까? 그런데 진상규명이 되면 돈은 거기에 따른 보상으로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고. 대가를 받아야 하지만 돈이 먼저는 아니다 이 말이에요. 진상규명 먼저 되고 나면 그런 것들은 따라오는 거 아니에요.

여흥구씨가 타는 트럭.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스티커를 여씨가 직접 붙였다. 여흥구 제공
딸 시집이 천주교 집안이에요. 그래서 천주교 묘지로 전부 갔거든요. 하늘에서 필요해서 데려갔다고 생각하려고. 거기서도 딸이 의사 할 거야. 아픈 사람들 잘 치료해주고, 사위도 잘 지도해주고. 손자들도 엄청 쾌활하고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거든요. 그냥 다들 여기서처럼, 하늘에서 필요해서 데려갔다고 생각하려고.
지금까지는 그냥 여행길에서 아직 안 돌아왔다, 이렇게 생각했거든. 이제는 받아들이려고요. 다들 여기서 엄청 행복하게 살았거든요. 거기서도 행복하게 살라고. 그것밖에 없어요. 여기 일은 다 잊어버리고 살라고.
제가 애들 태어났을 때도 크게 바라는 게 없었어요. 문제없이 건강하게 커준 게 너무나 고맙지. 우리 행복을 만들어줬고. 진짜로 그 애들 덕분에 행복했어요.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아내랑 둘이 새로 이사 가면 우리도 성당을 좀 다니려고. 그래야 애들 옆으로 갈 것 같아요. 우리도 옆에 갈 자리를 따로 잡아놨어요. 우리 부모님, 형제들 말고 애들 옆으로 가려고. 애들 옆으로 가기 위해서는 진상규명이 돼서 그걸 이루고 가야지.
내 나이가 많으니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내가 죽기 전에 진상규명이 될지를 걱정했는데, 이제는 좀 될 것도 같아요. 예전에는 좀 불안했어요. 진상규명이 아무것도 안 될까봐. 내가 이렇게 빈손으로 가나? 그러면 어떡하지, 애들을 어떻게 보지. 그 생각만 떠오르더라고. 요즘은 조금 희망이 보이고 될 것도 같아요.
나는 진상규명이 100% 확실하게는 안 될 거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왜냐하면 증거가 보존된 게 많이 없어졌잖아요. 몇 프로까지면 만족한다, 이게 아니라 100%까지는 안 될 거다 이거예요. 물론 되면 좋겠지만 몇 프로에다 딱 못을 박아두고 몇 프로만 진상규명이 되면 된다 이건 아니고.
어느 정도는 이뤄놓고 가야 애들한테 아빠가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이것밖에 못했다고 하지. 손주들, 사위한테도.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이것밖에 못했다고. 그래도 이해해주겠죠? 100%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해서 가야겠다, 이 말이야. 그것도 안 되면 애들 옆으로 어떻게 가요.
우리는 몰랐는데 참사 이후에 보니까 우리 딸이 아프리카 같은 곳에 기부를 많이 했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이어서 기부하려고 해요. 딸이 하던 외국 아동 연결 후원도 하려고 마음먹고 있거든.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고. 가족이 없어졌는데 이제 바람이 뭐가 있겠어. 나도 다른 사람들한테 좋은 일 많이 하고 우리 딸도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야지.
애들은 하늘에서도 잘할 거예요. 난 그렇게 믿고 있어요. 설마 우리를 몰라보진 않겠지, 뭐.
정나라·허정·이소아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활동가
*2026년 3월6일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활동가들이 유가족 여흥구씨를 인터뷰하고 기록했다. 이 글은 ‘무안공항 참사 이후를 사는 사람들’ 10회로, 한겨레21 누리집에서 이전 연재물을 볼 수 있다.
https://h21.hani.co.kr/arti/SERIES/3408
*이 구술기록은 2025년 4·16재단 부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재난 피해자 권리회복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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