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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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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환대하는 대화법

등록 2025-12-11 21:51 수정 2025-12-18 13:58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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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청재킷에 통이 넓은 바지를 입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곳에서는 날씨가 추워도 통 좁은 바지를 입는 사람이 한 명도 없거든요!”

최근 한 송년 모임에서 사단법인 무의의 홍윤희 이사장이 자신을 소개하며 이렇게 입을 뗐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나를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의 옷 스타일을 묘사한 것이다. 당장에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어렴풋이 그려졌다.

나는 시각장애인이다. 많은 사람이 시각장애인의 삶을 스마트폰도 못 쓰고 길도 잘 못 다니는 ‘기능적 불능’ 상태로 상상한다. 실상은 기능적 불능보다는 ‘맥락의 결핍’ 상태에 가깝다. 오늘 직장 동료가 어떤 착장을 했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 최근 가로수에 어떤 장식이 매달렸는지 같은 부수적 정보가 내게는 늘 부족하다.

시청자로 전락하는 사람들

그런 의미에서 홍윤희님의 배려는 신선했고 즉각적 효과가 있었다. 첫째, 자연스럽게 ‘티키타카’를 이어갈 대화의 출발점이 생겼다. 둘째, 다른 참석자들도 내 존재를 인지하게 됐다. 셋째, 장애가 패션이라는 가벼운 주제와 연결되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인 모임에서 으레 연출되는 어색함이 사라졌다. 일종의 ‘금기어 깨기’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연말연시에는 사람들과의 느슨한 만남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 만남이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겐 ‘부담’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극단적 사례가 바로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이다.

최근 변강석 강남대 교수는 ‘구어 중심 의사소통 상황에서 농인의 시청자화에 관한 자문화기술지’라는 논문에서 농인이 일상적으로 겪는 대화 소외 현상을 정교하고도 통렬하게 드러냈다. 그는 이 현상에 ‘시청자화’(Overhearerhood)라는 이름을 붙였다. 농인이 마치 텔레비전 화면을 보듯 대화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주변화되는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농인은 수어통역이 제공되는 자리에서조차 자주 시청자화를 겪는다. 이미 통역사가 존재하는 상황 자체가 구조적으로 수어를 구어보다 열등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변 교수의 관찰처럼 때로는 장애인으로 구성된 모임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실은 내가 속한 노동조합에서도 창립 후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이 문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뒤풀이 자리에서 반복적으로 청각장애인 조합원이 소외되면서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다. 장애인 인권을 최우선으로 삼는 노동조합에서 장애로 인한 차별이 웬 말인가? 당시 조합은 부랴부랴 문자통역 전문 단체와 업무협약을 해서 통역을 늘리도록 조처했지만, 조합 전반에 청각장애인 조합원의 참여를 아예 기본값으로 두는 문화가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더 걸렸다.

동등한 참여를 위한 작은 환대

의사소통에 내재한 권력적 속성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으면 어떤 모임이든 의도와 다르게 순식간에 차별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것을 예방하려면 명시적 개입이 필요하다. 시각장애인이 있는 모임에서는 시각 정보를 친절하게 안내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청각장애인이 있을 때는 공식 회의와 뒤풀이까지 통역사를 배치하거나,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 앞에 태블릿피시를 펼쳐놓고 받아쓰기 기능을 켜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완벽한 소통까지는 불가능하더라도 그런 조치는 참여자 전체에게 “우리는 이곳에 있는 모두를 동등한 참여자로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장애인 차별은 거창한 악의가 아니라, 사소한 맥락의 배제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익숙한 방식만 고집하면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소외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작은 언어 규범의 변화만으로도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다. 연말 모임, 낯선 규범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그 수고로움이 더 많은 사람을 환대하는 문을 활짝 열어주기를 기대한다.

 

김헌용 신명중 교사·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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